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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y 02. 2019

불안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예민하고 고집 센 꼬마신사

하얀 타이즈에 주름 잡인 반바지, 와이셔츠를 입고 앙증맞은 넥타이를 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해에 정장 같은 단체복을 입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내가 그 옷을 좋아했다고 회고하셨다. 어느 날인가 비 오는 날, 어머니 손을 잡고 나선 등굣길에 흙탕물이 튀어 하얀 타이즈와 옷들이 얼룩이 졌다. 꼬마신사는 닦아도 남아 있는 얼룩을 쳐다보며 곧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설득이 되지 않는 나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가서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혀 첫 수업시간에 거의 맞춰 학교에 당도했다. 예민하고 고집이 센 어린 아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말씀하셨다.(그 날을 난 기억하지 못한다.)


불안증

조금 철들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리했다. 간혹 충격적 뉴스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면서 내가 이 곳에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상은 어두운 세력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사악한 계획은 선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지탱되는 것일까. 원인이야 어떻든 나의 불안증은 나이가 들면서 좀 더 현실적이 되었다. 마치 멀쩡한 사람이 굳이 불안을 만들어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병적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마음 한편에 숙제를 안고 사는 느낌이었다.


마음 감추기

재수학원에서 전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했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그것을 근거로 상담사가 한 사람 한 사람 짧은 면담을 진행했다. 좋은 성적을 위해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과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상담사와 마주 앉았다. 몇 마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는 불필요하게 웃지 말라며 웃음 뒤에 마음을 감추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감추고 있는 것을 들킨 느낌이었으니까.

대학에 들어가 첫 수업 전에 영어 새벽반 학원을 다녔다. 그 선생님은 영어는 물론 영어 외적인 지혜를 많이 가르쳐 주셨다. 내게는 갇혀있지 말라는 조언을 종종 하셨다. 처음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진 않았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난제

대학 때 자주 가는 당구장이 있었다. 당구장에는 죽돌이(단골손님)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곳도 그랬다. 보통은 150점 내외였고, 조금 친다고 하면 300, 400점 정도가 고만고만한 동호인들의 실력이었다. 말 수 없이 혼자 큐를 놀리는 그의 실력은 예술을 넘어 경지에 이른 사람 같았다. 그의 실력은 천 점을 훨씬 넘을 거라고 누군가가 속닥거렸다. 그는 왼쪽 엄지 한 마디가 없었다. 나머지 손가락으로 큐걸이 주먹을 만들어 쥐었다. 당구 때문에 인생이 피폐해져 두 번 다시 당구를 치지 않으려 손가락을 잘랐는데 다시 저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믿지 않았지만 그의 실력을 봐서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것이 기질적이든 후천적으로 얻은 것이든 잘 고쳐지지 못하는 속 사람이 있다. 손가락이든 그 이상의 것을 잘라낸다고 해도 말이다. 사람의 변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면, 나는 바뀌지 않거나 대단히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원자로 속 연료봉

불안정한 물질은 안정된 상태로 가려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뿜어낸다. 나의 단점들은 불안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점들의 뿌리도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나에게 불안증은 잘 간수되어야 할 원자로 속의 연료봉과 같다. 인생의 쓰나미나 지진을 대비해 원자로가 깨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주어야 할 친구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오랜 친구인 그를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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