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마코치 Apr 26. 2019

과거를 보는 눈, 미래를 보는 눈

다른 사람들처럼 두 눈을 뜨고 있지만
바이샤는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이샤의 왼쪽 갈색 눈은 오로지 과거만 보고,
오른쪽 초록색 눈은 미래만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 눈이 과거나 미래만 볼 수 있다면 삶은 어떻게 될까? 불가리아의 소설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브는 그의 단편소설 <눈먼 바이샤>를 통해 이같은 상상을 한다. 소설 속 주인공 소녀 바이샤는 눈을 가졌으나 장님과 다를 바 없다. 한쪽 눈은 과거만 볼 수 있고, 다른 쪽 눈은 오로지 미래만 보인다. 어머니와 이야기 할 때도 한 쪽 눈엔 어린 소녀가 다른 쪽 눈에는 백발의 노파가 보일 뿐이다. 겹쳐보이는 과거와 미래의 환영에 현실 생활은 불가능하다. 걸을 때도 장님처럼 손을 뻗고 조심스럽게 다녀야 한다. 이따금 모서리에 부딪치거나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이런 삶이 고통스러워 한쪽 눈을 상하게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쪽을 택할지가 고민이다. 미래만 보면서 살 것인가. 과거만 볼 것인가. 작가는 이에 대한 결말을 독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두었다.


소설 속 바이샤를 보면 영혼의 눈이 가리워진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이샤는 바로 나 자신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현실을 보지 못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는 조언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살아라. 미래를 너무 계산하지 말고 살아라. 사실 이런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운명처럼 그런 눈을 가지고 태어난 바이샤에게 과거나 미래를 보지말라고 이야기한들 그녀의 눈으로는 현실을 볼 수 없다. 많은 치료자들이 바이샤를 고치지 못했다. 어떤 늙은 치료사의 말처럼 그녀의 눈을 사로잡아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우리의 부정적인 기질이나 특별한 경향성은 운명적인 것일까? 후천적인 것일까?


소설의 뒷마무리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아내와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내 질문으로 금요일 밤에 뜬금없는 토론이 벌어졌다. 나와 아내는 미래의 눈을 남기는 선택을 이야기 했다. 아들은 차라리 두 눈 다 포기하고  철저하게 현실의 장님으로 사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아들은 바이샤의 눈으로는 과거는 별 가치가 없게 되고 미래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노력이 무가치해져서 인생이 재미없어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와 아내는 그래도 미래를 보는 편이 조금 더 낫겠다고 말했다. "생각해봐. 만약에 로또를 한 장 사서 당첨되는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누가 싫어하겠어"라고 현실적인 얄팍한 주장을 폈다.


어떤 결론을 소설의 뒤에 붙이는 게 현명한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달렸다. 아들의 답은 현명하게 느껴진다. 과거와 미래에 붙들려 사는 우리는 현실을 놓칠 때가 많다. 철저하게 장님이 되어 과거와 미래의 환영이 사라진다면 보이지 않는 눈으로 현재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눈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시각 장애인들은 자신의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육안으로 보는 것 보다 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을 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담과 이브의 팩트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