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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y 07. 2019

삑사리가 왔다

삑사리의 가족여행

어제 삑사리로부터 카톡이 왔다. 삼척에 있는 리조트에 점심 무렵 가족과 함께 도착한단다. 삑사리는 대학 동기다. 우리는 대학에 갓 들어가 당구를 배웠다. 서투른 스트로크 때문에 미스샷(삑사리)을 종종 냈는데 그 친구가 유난히 많이 내기도 했고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그렇게 놀렸다. 삑사리~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삑사리는 프로그래머다. 젊어서부터 중소기업에서 고객사의 주문형 관리 프로그램을 코딩했다. 중간 관리자로서 팀 프로젝트 관리까지 병행하느라 잣은 외국 출장에 휴일 없이 일할 때가 많다.  야근도 많고 출퇴근 길도 멀어서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평일에는 회사 근처에 숙소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으로 퇴근한다. 일주일 뒤 중국으로 한 달 정도 출장 나가기 전에 모처럼 짧은 가족여행을 나선 것이다.


그나마 전화 통화는 몇 번했고 이렇게 만난 건 10년도 넘은 것 같다. 점심을 위해 예약해둔 식당에서 우린 만났다.  얼굴을 보고 나서야 삑사라 아내의 옛 얼굴을 기억해냈다. 오래전에 이 곳에 부부동반으로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뜻밖에도 삑사리의 가족은 많았다. 고등학교 1학년 둘째 딸, 4살짜리 남자아이에 돌이 채 안된 갓난아기가 품에 안겨있었다. "이 꼬맹이들은 누구냐? 늦둥이 봤냐?"라고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연인즉, 그의 아내가 6년 전부터 위탁모 일을 하고 있었다. 위탁모는 버려진 아기가 시설에 들어가기 전 잠시 돌봐주는 임시 보모다. 벌써 4명째 그녀의 품을 거쳐갔다고 했다.


예전에 영아원에서는 돌봄 보모 한 사람이 여러 명의 갓난쟁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것 말고는 더 돌봐줄 여력이 되지 못해 각자 방치되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 느끼고 받아야 할 따스한 교감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 그래서 성격장애나 심리적인 장애가 생기게 된다. 영아원 제도가 없어진 건 그런 이유도 있었나 보다. 영아원 제도가 없어지면서 위탁모가 영아들을 돌본다. 영아가 위탁모에게 맡겨지는 기간은 대략 12개월에서 18개월간이다. 그리고 그사이 입양 절차가 진행이 된다. 일 년여의 기간이지만 위탁모의 돌봄을 통해 아기는 정서적 안정에 절대적으로 도움받는다. 간혹은 해외로 입양이 되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파양이 되어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에게도 시설에도 곤란한 상황이 된다. 위탁모 제도 이후에는 이런 케이스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삑사리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많았다. 주로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이다. 입양하는 가정에서도 한국 영아들을 선호한다. 성장하면서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 다른 국가 입양아들보다 상대적으로 양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 키운 보람이 크다는 이야기다. 아기들 개인적으로 보면 더 나은 성장환경의 기회를 얻었다는 면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나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갓난쟁이의 초롱한 눈을 보면서 마음 한쪽이 아렸다. 그녀가 처음 맡았던 아기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좋은 양부모 슬하에서 사랑받으면 올해로 벌써 8살이 되었다. 아이가 시설에 맡겨지고 입양되려면 호적이 있어야 한다. 또한 어른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올 것에 대비해 정보를 빼곡하게 잘 정리해둔다.


친구 부부는 지난 6년 동안 위탁가정일을 하면서 해외여행은 가보지 못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가는 것도 무리지만 미처 호적이 없는 아이의 경우 여권 문제 때문에 나갈 수도 없었다. 나중에 자식들이 손주를 봐달라고 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이야기를 친구들끼리 종종 한다. 절대 안 봐준다. 데리고 오지 말라고 벌써부터 연막을 치고 있다는 둥 그래도 벌어먹고 살겠다고 좀 봐달라는데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둥 의견이 갈린다. 나이 들어 아이랑 씨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아이 봐줬다가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원망 듣기 십상이다. 탈 없이 잘 봐주고도 생색도 못 낼 일이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긴 하나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보통일이 아니다. 삑사리의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처음 맡아 1년 여를 돌봐주고 미국으로 보낸 아이는 양부모가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도 보내오고 편지를 보내어 유대를 계속 이어주고 있었다. 그런 과거 또한 아이의 기록으로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이의 영상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처음 아이를 떠나보낼 때 가슴을 무겁게 했던 걱정과 안쓰러움을 달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해외 입양아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혼모가 아이 양육을 위해 지원받는 금액은 대략 한 달에 칠만 원 정도다. 그것도 다른 수입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끊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든 상황이고 보면 한심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고령화를 걱정하며 큰 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내놓는 정책이라고는 말장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부모가 돼버린 어린 부부에게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일박이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삑사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각박한 대도시 한 편에서 작은 복을 짓고 있는 친구의 가정에 항상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빌며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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