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자존감을 느끼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첫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이다.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다양한 감정으로 나를 물들였다. 어느 겨울날 한밤중에 불덩이 같은 큰아들을 들춰업고 응급실로 달려가면서 쿵쾅대는 내 엄마의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등에 업혀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얼러 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내 아버지의 속끓음과 어머니의 고단한 한숨소리가 떠올랐다.
우리는 부모성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모든 사람들은 자녀로 태어날 때 자신의 부모를 성장시키기 위한 비장한 미션을 가지고 태어날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과 함께하는 순간마다 자신의 부모 얼굴을 떠올리며 기시감을 느낀다. 마치 아이가 "옛날 생각 안 나세요?"라며 되묻는 듯하다. 자식은 타임머신과 같다. 자식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고 성숙했던 내 부모를 만난다. 또한 성숙해져 가는 자신을 만나고 성숙해질 자식의 미래를 점친다. 윤회는 개인을 넘어 여러 관계 속에 완성되어가는 과정인가 싶다.
# 1. 장인, 장모님과 외식을 마치고 둘째 아들과 아내와 바닷가 산책 중.
엄마와 나란히 앞서 걷는 아들을 보며
"훤칠하게 키가 커서 보기 좋구나"
"어. 그런데 누굴 닮아서 얼굴도 자꾸 키가 커져서 걱정이야 ㅋ"
"그렇다고 오징어 데리고 오면 안 돼"
"아빠는 오징어는 안된다고 하는데, 엄마는 왜 건어물이랑 결혼한 거야?"
"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
*오징어: 아버지 눈에 안 차는 아들의 애인을 지칭하는 왜곡된 표현
어렸을 적 말문도 늦게 트이고 말 수도 적어서 장애가 있나 걱정했던 녀석이 이젠 나와 아내를 골려먹는다. 10년 후면 녀석의 나이가 서른이 된다고 생각하니 십 년 전 열 살 때 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취미로 시작한 수영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초등부 대표로 강원도 학생 수영 선수권 대회에 참가를 앞두고 맹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력과 체력을 기르기 위해 쉴 새 없이 풀을 계속 돌리는 강훈련을 받았다. 눈에 다크서클이 생겼는데도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안 하며 승부욕을 불태웠던 녀석을 보며 당차다고 생각했다. 결국 몸이 상할까 싶어 첫 출전 이후 더 이상 대표선수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아들은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하긴 했지만 선수하지 말고 그냥 수영장에서 재미있게 놀라고 겨우 설득했다. 10년 후에는 그는 얼마나 자라 있을까? 나는 얼마나 성숙한 아비가 돼 있을까?
# 2. 어머니와의 통화
"애비야. 큰애가 홍삼액을 보냈더라"
"그래요?"
'편지에 할머니 이거 드시면 젊고 건강해진대요. PX에서 인기가 많아서 바닥나기 전에 제가 얼른 사뒀다가 보내드리는 거예요.'라는 짧은 편지와 함께 어머니 댁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에 절대적 동의를 하진 않는다. 그러나 가끔 큰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한 살 더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군생활의 영향도 좀 있는 것 같다. 아들의 마음속에 들어간 군복 입은 내 모습이 겹쳐진다. 자기 임무를 스스로 완수해야 하는 규칙에 강제된 생활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했다. 오래전 들었던 아버지의 군생활 모습 역시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다시 미래에 내 아들의 기억을 통해 그의 아들에게 전해지고 나와 아들과 그의 아들은 같은 이야기를 각각의 색으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