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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y 13. 2019

뒤센 미소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구봉서, 배상룡 같은 걸출한 코미디언들이 전성기를 누렸던 국민 오락프로그램이었다. 바보 같은 캐릭터들이 좌우충돌 벌이는 꽁트가 억지스럽기도 했지만 한 시간 동안 깔깔대며 웃다 보면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복이 온 것 같았다. 웃음은 웃음을 부르는 묘한 속성이 있다. 한 번 터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방송사고로 이어지는 짤 영상들은 보는 이를 다시 웃게 만든다. 학창 시절 특이하게 웃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웃음보가 한 번 터지면 나는 물론 주위의 친구들은 눈물범벅이 되도록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웃다가 숨 넘어간다는 말을 실감하곤 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깔깔거리곤 한다.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웃음에 인색해졌다. 좀처럼 웃지 않는다. 하루에 몇 번 웃었나 그 회수를 세어보면 우리가 웃음에 많이 인색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웃음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지만 정작 그 권한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웃픈 현실'이라고 말한다. 어이없는 현실이나 사건 때문에 자조적인 웃음이 난다는 의미다. 웃음은 이제 체념을 상징하고 있다. 정치가 웃프고,  삶이 웃프다. 삶의 무게 속에서 웃음이 왜곡되어 버렸다.


웃음 치료사라는 직업도 등장하였다. 웃음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의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가벼운 체조 후, 그의 지도에 따라 억지웃음이 시작된다. 수강생들은 머뭇거리며 하나, 둘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조금씩 커지며 퍼져나갔다. 서먹하게 시작된 웃음은 어느새 전염병처럼 마구 번졌다. 얼마 후 사람들은 진정으로 주체하지 못하고 웃음의 바다에 빠졌다. 사실 지켜보는 나로서는 광신도들의 집회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웃는 동안 경계가 허물어졌고 사람들은 웃음과 함께 완전히 무장해제되었다.


웃음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박장대소(拍掌大笑), 미소(微笑), 파안대소(破顔大笑), 희소(喜笑)와 같은 웃음은 약이 된다.

가소(假笑), 냉소(冷笑), 비소(誹笑), 조소(嘲笑), 치소(嗤笑)는 독을 품음 왜곡된 웃음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80개의 근육이 있다. 다른 근육과 달리 얼굴 근육만이 뇌신경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감정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사람 표정을 흉내 내는 로봇 얼굴은 아직까지 그 섬세함을 완벽하게 구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관상을 보고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인간의 심리와 얼굴 표정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웃음 중에서 진정성이 담긴 환한 웃음을 '뒤센의 미소'라고 명명했다. 광대뼈와 눈꼬리 부근에 위치해 표정을 결정짓는 근육을 발견한 프랑스 신경학자 뒤센의 이름에서 따왔다. 뒤센은 전기 자극을 사용하여 진짜 기쁨의 미소와 기쁜 척하는 미소를 구분해냈다.


폴의 종단연구에 따르면 '뒤센 미소'를 가지고 있는 실험군은 '인위적 미소'를 가지고 있는 실험군에 비해 육체적으로 건강했고 생활의 만족도와 평균소득도 더 높았다. 또한 예쁜 외모는 그 사람의 건강이나 결혼생활 혹은 소득 수준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의 연구 결과는 말해주었다. ‘뒤센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삶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가 나오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된다. 이론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뒤센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크게 웃는 거라고 한다.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가 이에 해당한다. 웃음치료사들의 지도를 따라 연습해보는 억지웃음으로도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볼이 올라가면서 '뒤센 미소'를 만들어 우리의 팔자를 바꿔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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