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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y 23. 2019

사랑의 순례자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8

융은 자신을 '무한한 신성의 편린'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내 견해로는, 삶이란 뿌리에서 영양을 공급받는 식물과도 같다. 진정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땅 위에 나타난 부분은 한 여름만을 겨우 지탱한다. 그러고는 시들어 버린다. 스쳐 지나가는 환영처럼, 인생과 문명의 끊임없는 흥망성쇠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절대 허무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영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남는 그 무엇에 대한 느낌을 나는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꽃뿐이고, 꽃은 곧 시든다. 그러나 뿌리는 남아 있다.
- 아직도 가야 할 길 405p


개리는 우리 집 마당을 지킨다. 그의 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눈빛 뒤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고독한 수의사의 말에 따르면 개들은 자신을 가족의 일원, 즉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웃음이 나왔지만 개리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정말 그렇다. 자기가 왜 마당에 묶여 홀로 지내야 하는지 불만인 듯하고 가족끼리 외출이라도 할 때면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짖어댄다. 단지 주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런 대우를 받고 있다고 억울해하는 듯하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신이다. 나는 동물이다. 나는 신과 같은 동물이다. 헛갈린다. '인간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채 물질계에 살고 있는 신'이라는 사실이 지금까지 얻은 나의 결론이다. 개리가 스스로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마당 지킴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듯이 나 또한 물질계에 삶의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 몸은 꽃처럼 시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은 윤회 속에서 뿌리처럼 남아 있다. 이곳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존재의 의미를 담아 꽃을 피운다.


나는 성장을 꿈꾸는 드리머다. 언젠가는 돌아갈 내 영혼의 본향(God source)을 향해 나의 의식과 영혼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꿈꾼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가 되기까지 성장통과 건강한 우울증을 인내한다. 나에게 즐거운 일은 나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우주가 더 큰 우주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지속적인 성장은 조화로운 삶을 통해 만들어진다. 한쪽으로 치우침은 분별없는 미움과 분노를 낳는다. 몸과 마음, 현세의 삶과 내세의 삶도 그와 같다. 조화 속에서 함께 굴러가야 할 두 바퀴와 같다. 몸에 치우치면 육신의 병을 얻고 이상에 몰두하면 정신에 병을 얻는다. 성장을 방해하는 몇 가지 장애가 있다. 성장통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두려움과 다른 이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악함이다.


나는 아버지가 되면서 내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려 한다.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강력한 힘, 사랑이다. 사랑은 애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감성적으로 빠져드는 로맨틱한 기름기가 빠지고 맞닥뜨린 현실을 가꿔가는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 지혜를 내 아이들이 깨달아 알기를 바란다. 사랑은 녹녹치 않은 세상을 신처럼 품격 있게 살아가게 할 수 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내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아직도 익히고 배워야 할 신의 지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길을 따라는 오롯이 걸어가는 순례자의 뒷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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