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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Jun 09. 2019

결국,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서평]'회복 탄력성', 김주환, 위즈덤하우스

우리의 삶은 늘 크고 작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도전과 어려움을
끊임없이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전자회로에 곳곳에 심어져 있는 저항 소자들은 고유의 저항값으로 전류를 변화시켜 설계된 특성과 기능을 구현하는데 일조한다. 우리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 각자의 자리에 저항 소자처럼 심어져 있다. 개개인을 통해 구현하려는 조물주의 계획은 각 사람의 저항값에 따라 다른 이들과 하모니를 이루며 세상을 만들어 간다. 회로 속 저항들은 전류가 한계치를 넘거나 수명을 다하면 타버린다. 탄력적으로 수행해오던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회복탄력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책의 첫 줄을 읽으며 M. 스캇 펙이 쓴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찬 고통이라는 공감에서 논의는 시작된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것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있기에 가능했다. 회복탄력성이 없었다면 문명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며 지구는 온통 패배자들로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행복감을 유지하는 것은 공동체적 의무라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회복탄력성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해에 앞서 저자가 요구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자. 그가 말하는 모순적 세상은 염세적 허무주의로 보기보다는 긍정적 이해를 동반한 ‘내려놓음’에 가깝다. 세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고 집착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근력을 키우도록 훈련이 필요하다. 탄력성은 바닥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탄력지수가 높아진다. 용수철은 최대한 수축될수록 팽창력이 극에 달한다는 이야기이다. 책에 등장하는 이상묵 교수를 비롯해 역경을 극복한 여러 사례의 이면에는 고난의 시간이 깔려있다.

      

그 시간이 누구에게는 독이 되고 누구에게는 복이 된다. 다니앨 캐니만 교수의 대장내시경 실험을 통해 살펴보면 회복탄력성은 ‘기억하는 자아’ 문제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자아다. 이러한 사실은 카우아이 섬의 종단연구에서도 발견된다. 불우한 성장 환경 속에서도 일부 아이들은 꿋꿋하게 제대로 성장하였는데, 이들에게 발견된 공통적 특징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받아주었던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경험과 상관없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의 노력과 훈련으로 회복탄력성은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자기조절능력 = 감정조절력 + 충동통제력 + 원인분석력
대인관계능력 = 소통능력 + 공감능력 + 자아확장력
긍정성 = 자아낙관성 + 생활만족도 + 감사하기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결함이나 약점을 인정하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다. 회복탄력성 지수를 구성하는 세 가지 지수를 위와 같이 수식화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회복탄력성은 우리의 뇌를 긍정적인 뇌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행복을 뇌에 새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머리로 배우는 명시적 지식과 몸으로 익히는 암묵적 지식이 그것들이다. 명시적 지식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습득하는 지식이며 암묵적 지식은 습관과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체화된 지식을 말한다. 우리는 명시적 지식 습득을 위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암묵적 지식 없이 우리는 진정한 성장과 내면의 행복을 얻기 어렵다. 회복탄력성은 습관의 체화를 통해 길러진다. 뒤센 미소를 일례로 들 수 있다. 연구결과를 보면 뒤센 미소 집단이 삶의 만족도도 높고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얼굴 근육은 뇌의 감정상태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반대로 습관을 통해서 환한 긍정적 미소를 짓게 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연구는 증명하고 있다.


자기조절능력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인 자기조절능력은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다. 고난이 닥쳤을 때, 부정적 감정을 통제(감정조절 능력)하고 충동적 반응을 억제(충동 억제력)해 상황에 대처(원인 분석력)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과 관련이 깊다. 가드너에 따르면 인간의 능력은 여덟 가지 개별 지능으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특히 감정조절 능력과 관련이 밀접한 자기이해지능이 중요하다. 결국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식해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며 리더십과 설득력으로 나타난다. 감정적 조절 능력과 관련해서는 기능적 고정성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물의 주어진 의미에 고정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유연한 능력을 말한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사람은 ‘결핍 동기’와 ‘성장동기’로 움직인다. 충동 통제력은 결핍 동기보다 성장동기와 더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동 통제력이 높게 나타나지만 건강하다 할 수 없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는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잘하지만, 공부에 대한 흥미도, 동기, 자신감 등은 최하위 수준이다. 자율성이 억압된 탓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으려면 자율성을 키워줘야 한다. 자율성에 기반한 충동 통제력이야말로 아이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회복탄력성의 근간이 된다.


탈 벤 샤하르에 따르면 일하는 것을 고통으로, 참아야 할 괴로움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커다란 성취를 이뤄내지 못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서 커다란 즐거움과 사명감과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다. 보다 많은 연봉이나 보다 높은 직위에 오르기 위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참으면서'하는 사람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예는 없다.


삶은 어디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의 적분이 곧 나의 삶이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두기는 하되, 내딛는 걸음걸음을 즐기다 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칙센미하이가 말하는 몰입 혹은 최적의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성공의 결과'라기보다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다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행복해진다기보다는 행복해져야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자기 조절 능력에 있어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원인 분석력이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외부적인 사건으로 인해서가 아니다. 그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나의 주관적 생각, 즉 내가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의 결과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마틴 셀리그만은 이를 사건 accident-믿음 belief-결과-consequences의 'ABC연결고리'라고 부른다. 흔히 우리는 어떠한 사건(A)이 곧바로 우리의 감정이나 행동이라는 특정한 결과(C)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반드시 우리의 믿음(B)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이 특정한 결과를 가져오려면 우리의 신념체계에 의해 해석되고 매개되어야 한다.


원인 분석능력

스토리텔링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개인성(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냐 아니면 나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 둘째, 영속성(항상 그런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만 어쩌다 그런 것인가), 셋째, 보편성(모든 것, 모든 면이 다 그런 것이냐 아니면 그것만 그러 것인가).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흔히 자신에게 닥치는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어난 일에 대해 한발 물러나 객관화, 타자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인관계능력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소셜미디어의 세상이 되면서 관계와 연결의 중요성은 기술에 힘입어 그 지평이 더욱 넓어졌다. 소통은 메시지 전달 기능과 관계의 기능 등 두 가지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레고리 베이츤은 이것을 '보고적 말하기'와 '관계적 말하기'라 구분 짓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메시지의 관계적 측면에 있어서 여성에 비해 상당히 둔감하다. 메시지의 내용에만 집중하다 보면, 관계에 소홀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감지해내는 공감능력은 뇌의 거울신경 mirror neur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공감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측 전전두엽 MPFC 부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차분히 앉아 자신을 돌이켜보거나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표정이 없다. 얼굴 표정을 만들어 내는 근육이 뇌신경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밝은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공감능력이 상당 부분 향상될 수 있음을 우리는 뒤센 미소의 예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자아확장력

아론과 아론은 사랑을 '자아의 확장'이라고 정의 내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진정한 인간관계는 상대방을 '나'라는 개념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레스텍이 말하는 '뇌는 사회적 실체다'라는 명제는 은유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직설적 표현이었다. 뇌의 성장과 인간관계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시겔에 따르면 유아기 때 엄마와의 상호작용은 아이의 뇌가 구조적으로 성숙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후 1~2년 동안 받는 자극에 의해서 뇌의 시냅스가 형성되고, 이때 뇌의 많은 것이 결정된다. 엄마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과 애정, 대화를 통해 아기의 뇌는 점차 사회적 능력을 갖게 된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두 가지 습관

저자는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습관 두 가지를 제안한다. '감사하기'와'운동하기'이다. 감사하기는 긍정성 향상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감사하기의 강력한 힘은 '감사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만들어냈으며 그 효과는 신경 심장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과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것은 긴장을 푸는 명상이나,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긍정심리학이 지향하는 최선의 마음 상태다.


운동을 하게 되면 뇌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긍정적인 감정이 강화되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며 따라서 원만한 인간관계와 리더십도 길러진다. 뿐만 아니라 업무성취도와 창의성도 높아진다.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길이 바로 규칙적인 운동이다.



우리는 세계 유래 없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단기간에 이뤘다. 속도와 근면함이 바탕이 되는 이른바 추격자 전략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았다. 실패는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있는 도전은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는 도전 없는 사회를 만들었고 성공이 확실한 도전만 하게 되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안전한 선택을 향한 무한 경쟁을 낳는 건강하지 않은 모습을 낳고 있다. 실패하지 않는 계획과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회복탄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행복의 기본 수준 the baseline of happiness을 끌어올려야 한다. 긍정적 정서의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뇌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바로 이 행복의 기본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행복의 기본 수준을 끌어올려야만 긍정적 정서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해지고 결국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보살피는 마음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간다. 내가 인간이 되고 나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일을 여러 가지로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는 것도 모두가 각자 자신의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 사이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사실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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