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갖어야 할 마음가짐
지난해엔 대학원에 다니느라 서실에 나가지 못했다. 과제에 치여 살면서 묵향이 그리웠다. 새해부터 다시 붓을 들었다. 느낌이 새로웠다. 나는 입문한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초보이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글씨는 생활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글씨가 예쁘다거나, 힘이 있다거나 괴발괴발하다와 같은 형용어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필체를 통해서 글씨 쓴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필체로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 학문이 '필체분석학'(Graphology) 이다. 글씨를 큼직큼직하게 쓰는 사람은 외향적이고, 작게 쓰는 사람은 내향적인 성향이라고 한다. 'ㅇ'을 어떻게 쓰는지를 통해서도 성격이 드러나는데, 완전히 연결된 'ㅇ'은 내향적인, 연결되지 않은 'ㅇ'은 외향적인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따금 유명인들의 필체를 통해 성격을 분석한 기사를 보곤한다.
2년 전 여름 페북에서 간재의 글씨를 만났다. 굵고 육중한 느낌의 획이 무게감을 주었다. 여백 없이 꽉 채운 다른 듯 같은 두 자의 글씨는 한 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글씨의 주인공 또한 궁금했다. 전우는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시기를 장식한 대표적 학자다.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을 이은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하고 있으며, 간재학파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여 우리 나라 사상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간재는 어려서부터 시문에 출중했다. 12세( 1852년) 때부터 왕희지(王羲之)의 필법을 익혔다. 14세 때 명필 조송운이 쓴 적벽부(赤壁賦)를 모사하였는데 진위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한 때 글씨 쓰기에 열중하였으나, '변변치 못한 재주에 머물 것이 못된다'하여 그만 두었다. 이 후 평생 학문하는 선비의 길을 걸었다. ‘萬劫終歸韓國士 平生趨付孔門人(만겁이 흘러도 끝까지 한국의 선비요, 평생을 기울여 공자의 문인이 되리라)'라는 그의 글에는 기개가 가득하다. 이 시구는 지금도 계화도의 계양사에 전해진다.
작품으로서 붓글씨에 대한 평가 방법은 다른 예술작품과 조금 다르다. 글씨를 쓴 이에 대한 평가가 영향을 미친다. 매국노 이완용은 당대 명필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글씨는 지금도 제값을 못받고 있다. 반대로 역사적으로 좋은 평을 받은 인물들의 유묵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간재가 남긴 붓글씨의 가치를 계산해 본적은 없다. 그는 평생 올곧은 선비로 살았다. 간재는 많은 제자를 길렀다. 학계에 이름이 알려진 제자만해도 40여명에 이른다. 근대 이후 그의 제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스승의 선비정신이 제자들을 통해 발자취를 남겼다.
조기의 주석에 따르면 '효효'(囂囂)는 '자득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맹자(孟子)」<진심(盡心)> 에 나오는 구절이다. “人知之, 亦囂囂; 人不知, 亦囂囂. '남이 알아주더라도 즐거이 편안하며, 남이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또한 즐거이 편안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비가 지녀야할 마음 가짐으로 하신 말씀이다. 간재의 평생의 삶을 요약한 한마디인 듯 하다. 개화기에서 일제치하 격동의 시기를 효효히 살아갔다.
간재 선생의 선비정신을 닮고 싶다. 그의 가르침을 붓끝에 담아 마음에 새겨본다.
오늘도 효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