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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r 13. 2019

스마트 세상에서 바보된 날

스마트폰 분실의 기억

덜렁대는 성격 탓에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한두 번 있었다. 집 나간 배우자와 잃어버린 지갑은 잘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맞나 보다. 지갑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지갑에 들어있던 얼마간의 돈보다 아내에게 선물 받은 지갑이 먼저 떠올랐다. 분실한 신분증도 재발급받고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요사이는 지갑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게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런 아찔한 상황을 한 번 겪었다.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버스터미널에 가던 날이었다. 차에서 내려 고맙다는 인사를 마치고 터미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없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어디서 빠뜨렸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주머니에서 빠져 차에 흘린 것 같았다. 나를 태워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는 찰나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공중전화 박스 앞에 섰다. 주머니에 동전 한 개도 없다. 동전을 마련해 다시 전화기 앞에 섰지만 지인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또 난감하다.


그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전화번호의 주인공이 그 친구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회사 전화번호는 알고 있지만, 직접 받지 않는 경우 개인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경우는 요새는 거의 볼 수 없다.


어, OOO전화번호 좀 알려줘.

그 친구 차 얻어 타고 고속터미널에 내렸는데,

휴대폰을 차에 빠뜨린 것 같아.

휴대폰이 없으니 완전 난감이네...


차를 몰고 터미널로부터 멀어지고 있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전하는 동안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지 진동으로 두어 못 들었는지 전화를 안 받았다. 이십 분 정도 지나 통화가 되었다. 몇 번에 걸친 통화시도를 한 후였다.


내 휴대폰이 차에 빠졌나 봐.

한 번 찾아봐주라. 내가 다시 전화할게..


단방향 통신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실제적으로 체험했다. 10분쯤 지나 다시 전화했다.


진동으로 돼있니? 전화를 걸었는데 못 찾았어.

아무래도 차를 세우고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차를 세울 수가 없고,

댈데 있으면 가다가 세우고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다시 십오 분이 지나 통화를 했다.


어 겨우 찾았어. 시트 옆 틈으로 깊이 빠져서

보이지도 않고 진동소리도 안 들려서...

내가 다시 터미널로 갈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모르겠다.

오면서 보니 차가 많던데. 터미널 근처는 항상 밀려서 말이야.


택시 승강장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언제 도착할지 몰라 통화 후 이십 분쯤 지나 지나가는 차량의 물결을 살피며 승강장 앞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다시 이십 분쯤 지나 그의 차를 만날 수 있었다.


....어 고마워. 전화할게!


재촉하는 뒤차의 경적 소리를 뒤로하고 그의 차와 헤어졌다. 근 두 시간 가까이 소란을 피운 끝에 휴대폰을 다시 찾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멈춰있던 시스템이 다시 불이 들어오며 활성화되는 부팅의 안정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못 찾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상상해본다. 우선 승차권부터 번거로움이 시작된다. 스마트폰으로 예약해 저장해 놓은 승차권을 매표소로 가서 설명하고 발권받아야 한다. 귀가 후에는 대리점에 찾아가서 대체폰을 받아서 겨우 전화를 살려놓는다. 새로운 전화기를 개통하고 세팅해야 한다. 마지막 백업 이후 저장된 정보들은 복원을 못할 수도 있다. 대부분 클라우드에 실시간으로 저장되도록 세팅을 바꾼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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