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도 7시 반, 이미 잠이 깬지는 한참 됐지만 이불속에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전날 다녀온 곳의 시차로 따지면 저녁 먹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배는 무척 고팠다. 마지막 식사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급하게 입에 욱여넣은 연어 베이글이었다.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보니 열댓 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열 시간 넘게 잤는데도 누적된 피로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방 안에 딸린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너무 멀다고 생각하고 소변을 참으며 침대 끝까지 기어서 발치의 티브이에 손을 뻗었다. 그 티비는 전에 이 방에 살던 한국인 승무원이 방을 양도하며 같이 주고 간 티비였다. 리모컨엔 배터리가 다해 쓸 수 없었고 20세기엔 보기 드문 다이얼식 티브이였지만 두바이에선 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언니에게도 이 방의 전 주인이 유물처럼 넘겨주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채널은 90여 개였지만 대부분 아랍어, 힌디, 우루두로 나왔고 영어 채널은 다섯 개 정도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아랍어로 더빙된 동물의 왕국과 아리랑 티브이였다. 손가락을 끝까지 뻗어서 겨우 채널을 맞추고 다시 엎드려 숨을 고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승무원 숙소의 전화벨 소리는 앙칼지고 크다. 회사에서 스탠바이 할 때 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도 전화가 오지만 두바이는 여전히 개발 중인 도시였기 때문에 승무원 숙소 중에는 전화가 안 되는 지역도 더러 있었고 집에 있는지 확인차 집으로 전화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고 유선전화끼리는 한 달 동안 일정 사용이 무료였기 때문에 승무원들끼리 전화할 때도 숙소 전화를 썼다. 물론 나에게 그 통화 대상은 킴 아니면 아사미였다. 킴은 비행 가있고 아사미인가 하고 전화를 받았다. "쑤민!!" 반가운 목소리였다. 아흐마드였다. 두바이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동료이자 교육받는 내내 큰오빠처럼 공부를 시켜줬던 아흐마드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전 카타르 승무원이었다. 그는 카타르를 가기 전엔 말레이시아 항공에서도 일했었다. 이미 두 개의 항공사를 거쳐 우리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비행 교육이나 실무에 능했다. 게다가 신실한 무슬림 가정에서 나고 자랐고 인품이 좋아 항상 주변엔 친구들이 많았다. 나 같은 초짜들을 거둬 먹이는 일도 자주 했고 나랑 아사미랑은 교육받은 반 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셋이 자주 붙어 다녀서 아시아 마피아란 별명이 있었다. 아흐마드는 일어났냐고 물어보며 내가 오프이길래 혹시 오늘 애들이랑 워터파크 가지 않겠냐고 했다. 여기서 애들이란 같이 교육을 받았던 동료들인데 회사 직무 성격 상도 그렇고 다국적 회사다 보니 동료의 개념보단 친구가 더 어울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워터파크라니 애들도 아니고, 하고 내가 운을 떼자 아흐마드는 "아틀란티스인데?" 하고 간 보며 운을 뗐다. 아틀란티스는 당시에 두바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워터파크다. 아흐마드는 새롭고 즐거운 일을 물어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먹이는 어미새와 같았다. 그는 호기심과 재치, 성실함이라는 즐거움의 세 가지 속성을 다 가진 인물이었다. 내 우울감은 그가 전화를 하는 날이면 내 흐린 날씨에 반짝 해가 뜨듯 쾌청해지곤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한 의심과 숙취 같은 피로에 절어서 졸린 척 대답했다. "비싸잖아, 거기 한 300 디람 하지 않나?" 300 디람이면 한화로 약 10만 원 돈이었고 킴과 다달이 월급의 70퍼센트를 적금으로 붓고 있던 나에게는 큰 액수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되었다. 그러자 아흐마드는 기다렸단 듯이 대답했다. "승무원 할인 중이야, 얼마게" 나는 얼만데, 하며 그래도 안 간다고 입을 떼려는데 "30 디람" 아흐마드가 웃음과 함께 뱉은 액수에 나는 침대에서 스프링복처럼 뛰어올랐다. "몇 시에 어디로 가?" 아흐마드는 웃으면서 헤드쿼터에서 10시에 보기로 했다며 이따 보자고 했다.
small naughty bus, 나와 아흐마드는 회사 승무원 통근 버스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작은 밴 형태의 하얀색 바탕에 회사 로고가 그려진 버스 엉덩이엔 승무원들의 캐리어를 실을 수 있는 카고가 달려 있었다. 버스들은 공항 바로 옆의 회사 본사(헤드쿼터)에서 두바이 곳곳 30여 군데 승무원 숙소로 우리를 실어 나른다. 일 나가려고 이제 막 화장을 마친 산뜻한 승무원이 내린 자리에 10시간 이상의 긴 비행에서 파김치가 되어 유리창에 머리를 두들겨대며 자는 승무원을 태웠다. 버스 시간표를 보며 비행기 안에서 참고 있던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승무원들이 드문드문 서 있고 집에 가는 길에 찾은 드라이 맡겼던 유니폼을 어깨에 걸치고 뛰어오는 승무원들도 있다. 남자 승무원들은 넥타이를 풀어서 주머니에 넣거나 여자 승무원들은 단단하게 묶었던 머리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느슨하게 한 채로 유니폼 벗을 준비를, 컴컴한 버스 정류장에서 슬슬 하곤 했다. 물론 승무원들 외엔 회사의 다른 부서 직원들조차도 없는 구역이지만 아직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그루밍을 지켜야 했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동료들 가운데 그런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수습 기간이 끝난 연차 1년 이상 중엔 없었다. 회사 숙소는 두바이 전역에 있었고 통근버스가 두바이 거의 모든 곳을 다녔기 때문에 우린 곧잘 대중버스 대신 이용했다. 실제로 당시엔 회사 버스가 지하철과 대중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까지 다녔다. 정류장의 회색으로 색이 보이는 것만 같은 매캐한 담배 연기와 매연을 지나 다시 신선한 에어컨 공기과 말쑥하게 유니폼이든 사복이든 옷을 제대로 갖줘 입은, 업무 시간이거나 오프를 맞아 어디론가 가는 승무원들이 다니는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만나기로 한 로비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니 감격스러울 만큼 반가웠다. 아흐마드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불속의 누에고치로 사느라 아마 다음 해가 될 때까지도 우연히라도 비행이 겹치지 않는다면 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략 모인 이들의 스펙은 이랬다. 스페인에서 온 형제처럼 친한 알폰소, 다니엘, 호세 삼총사. 교육 중에 맺어졌지만 3년간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 중이던 열정적인 남미 커플, 아르헨티나의 미아와 브라질의 호손. 아르헨티나의 신데렐라 같은 디즈니형 미인 레지나, 아흐마드의 전 하우스메이트인 프랑스 출신 멋쟁이 에흐, 폴란드에서 온 능청스러운 유머를 구사하는 제나, 제나의 하우스메이트이자 몰타 출신인 숏커트의 팅커벨 멋쟁이 엔야, 스페인에서 온 키가 크고 큰 미소가 매력적인 에스렐다, 그녀가 지나가면 모두가 돌아보곤 했다. 여기에 아흐마드가 불러서 온 아사미, 나 그리고 아흐마드였다. 이 중에 승무원을 하다 온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고 그중에 아시아인은 우리 셋 뿐이었는데 셋 중에 어리바리하고 수줍음이 많던 나를 친구들은 어린아이처럼 돌봐주곤 했다. 그날도 늦게 나타난 나를 왁자지껄하게 반기며 그들 문화인 볼 키스와 포옹을 돌아가며 해주는데 나는 이미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힘이 다 빠져버렸다. 스페인어를 쓰는 친구들은 새벽에 만나도 기운이 넘쳤고 하루 종일 교육을 받고 온 날도 새벽 2시까지 음악에 와인에 춤을 추며 놀았다. 아사미와 나는 겨우겨우 숙제를 하고 지렁이 같은 몸으로 운동하러 갔다 오며 내일은 스페인 친구들 피 좀 빨아마셔야겠다고 농담하곤 했다.
수영장에서 탈의를 하고 나타났는데 나는 난생처음 입어본 비키니, 한국에서 두바이 온다고 백화점에서 산 아레나 비키니가 조금 창피해짐을 느꼈다. 그전에 내가 입던 수영복은 수영 배우느라 입던 모노키니였고 서양문화권에선 비키니를 입는다는 말에 사두기만 했던 것을 그날 처음 입었다. 아무리 그래도 무슬림 나라라서 몸을 다 드러내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는데 (실제 여자 무슬림들은 머리를 가리고 래시가드보단 헐렁한 긴팔에 치마바지 형태의 긴 바지 수영복을 입는다) 수영복을 입은 친구들의 모습에 그 배려는 나의 착각이자 실수였음이 느껴졌다. 내 비키니는 그들의 수영복에 비하면 할머니 팬티였다. 티팬티 모양의 수영복에 육감적인 몸을 그대로 내놓은 그들의 모습에 나는, 아니 나와 아사미는 세트로 기가 죽고 말았다. 그래도 아사미는 인명구조요원으로 활동했을 만큼 수영실력도 있고 태닝한 몸에 동양인 여자치곤 다부진 편이었는데 아아, 갓 태어난 아기처럼 새하얀 두부 같은 내 살과 비키니는 처음 만난 낯설은 조화를 그대로 보여줬다. 물놀이 나온 아이처럼 햇볕에 눈 부시게 빛나는 몸으로 친구들 곁에 서니 뭔가 우스웠다. 친구들의 탄탄하고 햇볕에 그을린 몸은 수영복을 입었지만 나는 속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왜인지 내가 더 야해 보이는것이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물 속에 몸을 깊이 담그고 얼굴만 동동 뜬 채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넓고 단단한 어깨와 북슬북슬한 가슴털과 공인 줄 알고 발로 찰 뻔했던 궁둥이들 사이에 치이며 하얀 이를 드러낸 내 사진은 친구들의 페이스북에 각자의 이름이 태그 되어 올라갔다. 나는 그날 온종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돌아와 기진맥진해진 야생에서 살아남은 내 몸뚱이를 침대에 누였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몸을 움직인 덕분에 뜨거운 샤워도, 억지로 켜놓고 자는 티브이의 화이트 노이즈도 필요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그날 체감하고 비교한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아니었다. 20대의 인생은 저렇게 빛나야 했다. 눈에 보이는 그들의 생기, 활력이 나를 잡아당겼다. 몸으로 노느라 몇 마디 못 나누고 헤어지는 게 아쉬웠던 그들은 집으로 가는 대신 바에 들려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중엔 다음날 새벽 일찍 비행이 있는 친구도 있었고 오늘 비행에서 막 돌아와서 워터파크에 온 사람도 있었다. 체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서 운동을 하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키니를 수건으로 말아서 꾹 짜자 수건이 물을 빨아들여서 무거워졌다. 나를 운동시켜서 꾹 짜면 내 안의 슬픔과 회색빛이 이렇게 나올 것만 같았다. 무거워진 수건을처럼 우울함을 빨아들인 갑옷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내가 너희들 사이에서 비키니 못 입겠다고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말하자 듣던 아르헨티나 친구 미아가 그랬다. "왜, 한국에선 여자끼린 다 벗고 물에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 대중탕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말에 웃어졌다. "아니 그건 안 입어서 그렇지, 니 옆에 서니 내가 너무 볼품없어서 그래"하고 볼품없는 몸만큼이나 낮은 자존감으로 셀프 까대기를 시전 하자 미아가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난 볼륨이 있고 넌 깊이가 있는 사람이잖아. 아름다워, 친구" 미아의 의도와는 달린 썩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날로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깊이보단 볼륨을 소망했고, 내 안의 우울함을 짜내고 싶어서 달리고, 근육을 짜고 또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