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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Mar 25. 2022

Gym에서 짐을 나르다

우울해본적 있는 승무원

 지난 글에 썼던 친구들과 함께 갔던 워터파크 비키니 사건을 기점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암탉이 알을 품듯 소중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알을 품은 마음은 너무나도 알을 소중히 여겨서 부화시킬 의지를 보이지 않았음이다. 그러던 어느날, 대낮 어떤 유럽행 비행에서 같은 한국인 승무원 Y를 만났다. 사번으로 따지면 나보다 후배지만 한 눈에 립스틱을 칠한 각도만 보더라도 야무진 성격임이 분명한 그녀는 나이는 나보다 몇살 위였다. 언니는 서른한살이었지만 결혼한지 10년차라고 했다. 아니, 대체, 왜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몸을 훑었나보다. 언니는 내 무례한 눈길에 기분나빠하는 대신 진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줬다. "애  때문은 아니고, 애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거야. 결혼은 그냥 일찍 했어." 그나저나 Y는 날렵해보였다. 반팔 셔치 아래로 드러난 팔의 근육과 탄탄한 종아리가 운동 좀 하는 무리에 속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단거리 마라톤에 빠져 전국방방 곳곳 대회를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보던 5위 안에 들어오던 여자 마라토너의 승무원 복장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언니, 운동 좋아해요?" 하고 묻자, 아까 아기 이야기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촉촉한 눈빛을 던지며 "응, 내 생명줄이지" 하고 말했다. 승무원 짬밥 n으로 익힐 수 있는 잡다한 기술 중엔 생면부지의 사람과 한시간 가량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언니의 눈빛에는 내가 더 물어봐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다. "왜요? 운동이 어째서요." 마침 식사 서비스와 마무리가 끝난 시점이어서 콜벨도 화장실을 드나드는 손님들도 없이 한가해질 무렵이었다. 우린 비지니스 클래스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뒷모습을 배경삼아 바라운지 한가운데에 서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른 동료들은 식사를 하느라 갤리에 들어가 있었고 오히려 우리가 얼굴을 비추고 나가 있어주니 고마워하며 한국어로 실컷 떠들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게, 우리 아버지가 우울증을 앓으셨어." 하고 Y는 들을 준비가 된 나를 경주마 삼아 달리듯이 자신의 인생 전반을 훑었던 아버지의 우울증에 대해 속사포처럼 이야기 했다. Y의 유년기는 지금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달리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우울하고 암담했었다. 나이에 비해 꽤나 진지하고 무게감있어 보이는 그녀의 분위기는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어린 자녀를 지키고 양육해줘야 하는 주양육자가 우울증으로 인해서 생사를 넘나들었고 그것을 경험해야 했던 어린 나이의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강인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일찍 결혼해서 독립을 한 것도 돌아보니 그런 이유인것 같다고 스스로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도 우울감와 무력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죽자살자 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자녀를 낳기가 두렵고 싫다고 했다. 십분 이해가 갔다. Y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아버지의 상태에 비하면 스스로 진단해보자면 나는 우울증도 아닌 우울감 정도인것 같았다. 다만 자기연민에 깊이 빠져있고 무기력하며 감사함이 없는 삶 자체는 그녀의 아버지와 닮아있었다. 힘든 시기를 지나 의지적으로 우울의 늪에서 독립해온 Y의 이야기는 나에게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특히나 내 감정 상태가 다른 사람에게 전이될 수 있고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나를 두렵게도, 각성하게도 했다. 당시의 나는 Y의 아버지처럼 자녀가 있거나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섬처럼 떠다니는 것 같은 내 인생에도 부딪히는 수많은 승객들과 주변인들을 생각하면 어쩌면 내 우울감은 파도처럼 그들을 밀어내고 힘들게만 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머릴감다가 눈물이 났다던 킴을 위로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 기억났다.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의 모든 승무원 숙소에는 gym과 수영장이 있었다. 승무원 복지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 곳은 오전에는 한가하고 점심 즈음애서부터 사람이 몰리기 시작해서 저녁에는 트레드밀이나 인기있는 사이클 기구는 기다렸다 써야했다. 밤낮이 바뀐 승무원의 라이프 스타일을 생각하면 일반 직장인들의 아침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우리에겐 저녁 운동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사람이 붐비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오전 7시에서 늦어도 9시에는 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퇴근해서는 두세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옥상의 gym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마주쳐지는 승무원이 가끔 있었는데, 근육의 크기나 다루는 운동기구, 맨몸 운동의 수준을 가늠해볼 때 보통 운동광인 경우가 많았다. 두세번 마주쳐지는 얼굴과는 눈인사에서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소리내 인사하기까지 시작했다. 이사왔냐고, 이미 같은 건물에 2년째 상주하는 나에게 물었다. 자기가 매일 오는 짐에서 처음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양인에 비해 동양 사람들은 체구나 자잘한 이목구비 때문에 더 어리게 보는 경우가 있는데, 짐에서 만난 운동인들은 나를 들어보고 싶다거나 (특히 남자 승무원의 경우 과시욕과 장난기에 그런 농담을 했다.) 운동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안달나 했다. 물론 전면이 거울인 상태에서 운동을 하다보면 거울로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준비 운동으로 pt체조부터 하는 나를 힐끔거리다가 결국엔 들고 있던 바벨을 내려놓고 "May I...?"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자세를 교정해주는게 시작이었다.


 머리를 말총처럼 길게 묶은 금발의 여전사였던 그녀 역시 자주 마주치던 승무원이었다. 혹시 남자가 아닐까 싶은 허벅지와 등 근육에 놀라웠지만 한국과 달리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 말하거나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이 금기시되는 서양 문화 때문에 나는 한번도 놀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만 주구장창하다 내려와서 벤치프레스 옆에 주저앉아 물을 한모금 마시고 있었다. 나보다 10센치는 더 키가 큰 그녀가 사이클 선수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다가 순간 멈추곤 내 앞으로 폴짝 뛰어 내려왔다. 후, 하고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더니 운동 한번 배워볼래? 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말 다리 같은 팔을 휙 허공에 저으며 일어나란 시늉을 했다. 겁이 났다. 운 하는게 겁이 나는게 아니라 아침 시간에 운동하던 것을 이제 못하겠다 싶어서. 스쿼트, 덤벨 스쿼트, 벽에 기대는 스쿼트, 와이드 스쿼트, 온갖 스쿼트의 종류를 호텔 조식 뷔페처럼 차려주더니만 이내 런지, 동키 킥스, 데드리프트까지 허벅지가 불 타고 폭발할 것 같은 지경까지 나를 몰아세웠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하체에 좋은 가능성(?)이 있단다. 나의 일일 체육 교사는 저녁에는 승마 교습을 한다며 관심있으면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마지못해 휴대폰에 받아 적으며 속으로는 이제 바로 옆 건물로 운동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그날부터 오전에 우리 건물에선 살금살금 짐 대신 다른 복도 끝의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 비행마다 브리핑 룸에서 대화하다보면, 아니 그 전에 이미 시선을 사로잡는 운동광들이 더러 보이곤 했다. 남자 승무원들은 대개 가슴이나 팔 근육이 셔츠를 잡아 당기고 여자 승무원들은 종아리 근육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브리핑 룸에서는 아이스브레이킹 목적으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대개 그런 운동광으로 추측되는 승무원에겐 딱 한 단어면 안면 트기는 충분했다. "Gym?" 예아스, 라며 번뜩이는 눈빛으로 대게 반응하는 그들은 비행하는 동안 갤리에서 프로틴 쉐이커를 흔들며 다가와 나눠줄까? 하고 친절함을 베풀었다. 나는 주로 그쯤에서 선을 그으며 난 운동을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건강 문제 때문에 겨우 하는 것이라는 제스쳐를 내비쳤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취항지의 호텔 gym에서 만나서 비행만큼 힘든 일일pt를 받고 다음날 비행에 절름발로 나타나거나, 팔을 들때마다 끙끙 앓으며 때아닌 오십견에 시달리는 활주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을 시작하고 석달이 지나지 않아서 어느정도 몸과 정신이 또렷한 각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gym 말고 다른 곳에서도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취항지의 거의 모든 gym과 가까운 바닷가를 달렸다.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는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해변이다. 우람한 나무들은 내가 두팔로 껴안아도 안지 못할만큼 커다랬다. 그리고 그 옆에서 배꼽까지 파인 런닝을 입고 맨손 체조나 요가를 하는 호주 젊은이들 역시 아베크롬비 모델들처럼 각잡힌 몸을 가지고 있었다. 맨발로 본다이 비치를 내달리는 동안 나는 예전처럼 비키니를 입은 내 몸에 수줍어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 맞먹는 외형적인 몸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바란 적도 없었고 그건 이뤄질리도 없는 구조상의 특징이다.) 나도 저들처럼 몸을 지배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일단 해가 쨍쨍한 대낮에 외출을 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고 때가 되면 뭐든 맛있게 먹었다. 더이상 태양이 싫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까지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회색빛 세상이었던 내 인생에서 잊고 있었던 색을 찾아 마음에 모았다. 본다이 비치에서 비키니 바람으로 뛰어다니며 어깨를 따갑게 하는 호주의 뜨거운 햇볕과 발가락에 닿는 모래의 감촉에 감사했다.

 바닷가 뿐이던가, 운동화를 신은 발로 젊음을, 건강을 만끽하는 것으로 우울증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gym이었으로되 끝은 '삶에 대한 감사'였다. 동남아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면 건물로 들어서는 대신 비를 맞으러 나갔고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밟으며 중동에서 사느라 잊었던, 발 밑에서 뽀득거리는 자연의 새 살과의 감촉을 기억해냈다. 브라질의 슈가로프를 등산했고 스탠바이로 불려가느라 미처 운동화를 못챙겼던 베이징 비행에서는 7센치 힐을 신고 만리장성을 올랐다. 비행이 없어서 두바이에서 쉬는 날에도 도시를 길게 감싸는 쥬메이라 해변을 찾아서 달렸고,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외진 곳의 호수를 찾아내서 수영을 하러 다녔다. 마음을 일으켜세우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의 범주가 숙소의 작은 gym에서 취항지의 강과 바다, 산으로 그리고 다시  내가 사는 도시 안으로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더이상 두바이에서도 암막 커튼 뒤로 숨거나 눕지 않게 될 무렵, 한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다른 도전들을 시작했다. 의존성을 버리기. 내가 의지하는 것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새로운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을 사귐에 있어서도 소극적이고 킴과 아사미, 아흐마드 외엔 일절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이 살았었다. 일터에서 승객들을 대할 때도 어딘가모르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임했더니 피로도가 쌓였다. 진심을 다해 친절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내 삶을 기꺼이 나눠주고 옆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속마음과 행동이 정확히 같진 못하더라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대로 투명하게 살아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키니 사건과 마찬가지로 솔직한 거울 앞에 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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