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가 우울증 때문이라는 것이 잊혀질 때까지 내 몸과 맞섰다. 그 첫 싸움의 관문은 항상 운동복을 챙겨입는 것이었고 가장 예쁘고 좋은 것으로 골라서 마련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방이나 내 방에서 짐까지의 거리는 비행으로 열시간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운동복을 반만 입고 거실이나 호텔룸에서 운동을 하곤 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나 패션티비나 재해 관련된 뉴스들을 보며 티비에 나오는 일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일을 별것처럼 해내고 있었다. 룸서비스가 오면 얼른 땀을 닦고 환기를 시키고 옷을 걸쳤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 이틀 숨어서 하는 운동은 제법 효과가 있었나보다.
어느날 여러명의 케냐 출신 승무원들과 같이 비행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직 신입일때 한국인 선배가 그랬었다. 특정 국가 동료들을 주의하라며, 대가 세고 한국인 중 속앓이형 성격과 유독 안맞는 무리들이 있다며....그 중의 한 국가가 케냐였다. 당시 아직 회색빛이 거둬지기 전의 나인지라 그런 사소한 주의조차 신경이 쓰였다. 기대 복도를 옆으로 걸어야할만큼 앞뒤 엠보가 엄청난 그들은 가히 에어백수준의 몸으로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자기 소개를 했다. 보통 이름만 말하고 끝일수도 있는데 그날 비행은 이륙 딜레이가 하도 길었고 같은 국가 출신의 승무원들이 둘 이상있을 경우 늘 있는 폭주하는 수다가 시작됐다. 인심좋게도 유일한 아시아인인 나를 그녀들이 거둬주듯 가운데 두고 대화의 물꼬를 시작했다. 밥은 먹었냐는 질문으로 하이에나들에 둘러쌓인 느낌이 싹 가셨다. "뭐 먹었어?" 피식거리며 하는 질문에는 뼈가 있었다. 내가 왜? 하자, 나를 빙 둘러보며 하는 말, "한국애가 뭐 먹고 우리같이 엉덩이가 커졌나해서!" 하고 웃었다. 유색인종이 자신의 피부색을 가지고 농담하면 그건 웃어도 되는 농담이다. 자신의 몸을 가지고 하는 농담도 마찬가지다. 운동하는구나, 하고 칭찬하며 자신들의 ATM클럽에 초대한다고 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를 보며 박수를 치며 알려준 그 ATM. 케냐 승무원들은 서로의 엉덩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African Trade Mark!!"하며 고개가 뒤로 꺾이게 웃었다. 그렇게 내 운동은 심약하던 내가, 편견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던 특정 국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쾌거를 이루게 해주었다. ATM 기계만 보면 그녀들이 생각난다. 오늘 잊은 스쿼트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