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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Mar 24. 2022

Rejected TakeOff(RTO)이륙중단

기체 결함

비행 용어 중에 Rejected TakeOff (RTO)라는 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이륙이 중단되었을 때 쓰는 용어다. 비행 이륙 전까지 필요한 모든 안전, 서비스 상의 준비를 마치고 런웨이까지 나갔는데 미처 몰랐던 장애가 발견되어 다시 회항하는 경우다. 그건 기체 결함일수도 있고 당시의 날씨 문제일수도 있다. 난데없는 승객의 난동이나 누군가의 급박한 의료적 도움이 필요해진 경우도 이유가 될수 있다. 비행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는데 돌아와야 하는 경우 말 그대로 승무원의 입장에선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행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RTO를 원하지 않지만 주변의 동료가 지인이 겪었다고 하면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위로해주게 된다. 그러나 이륙중단을 해야 할만한 이유들은 앞서 적은 것들처럼 중대한 일들이 대부분이기에 실제로는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운행 중에 사건이 터지면 상공 3만 피트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우리 승무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승무원은 파일럿도 포함한다) 남들보다 이른 취업과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해서 이제 훨훨 날아보자 싶었던 때, 내 인생에도 RTO가,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의 첫 이륙중단이 있었다.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대장놀이가 시작된건 비행을 한지 겨우 6개월이 된 무렵이었다. 승무원의 일이, 완성도와 기술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다. 처음엔 승객이 콜벨을 누르면 좌석을 찾지 못해 모가지 잘린 닭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햇병아리가 6개월이 되자 조금 컸던 것 같다. 나처럼 배우는데 느린 사람도 6개월간 쉬지 않고 이착륙을 경험하니, 드디어 카트 하나당 들어있는 식사 트레이의 갯수를 계산하고 음료 카트의 모든 주류를 줄줄 욀 수 있게 되었다 내 심장은 이미 전세계 사람들이 타던 회사의 이코노미 클래스를 지배하게 된 지휘대장이 되어 있었다. 매 비행에는 도착지를 향한 설렘과 더불어 이미 지긋지긋해진 손님들의 불만접수에 이골이 나 있었다. 내 나이 겨우 20대 중반에 이미 직업정신의 순수함을 잃고 (애초에 없었으니 잃었다고 하기도 그렇다) 세상에 찌든 티를 속으로도 밖으로도 은근히 내비치기 시작했다.


 사건은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의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발생했다. 전세계 승무원들이 다루기 어려워하는 문제는 실제로는 정말 별것 아닌 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메뉴 초이스에 따른 사과와 불만 해결이다. "손님,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소고기 메뉴가 다 떨어졌습니다...." 한글로 쓰니 영어버젼보다는 더 죄송한 느낌이 나지만 실제로 당시의 나는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의 부적절한 비율 배합에 속으로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부디 눈 앞의 손님이 결혼반지만큼 자신의 소고기 메뉴를 아끼는 사람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생각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괜찮아, 됐어 하며 빼버리거나 결혼반지를 집에 두고 다니는 이유는 다르지만 일단 소고기를 대체할 다른 메뉴를 추천하는 승무원의 눈가가 약간 촉촉하게 젖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입에 들어갔다 도로 나올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대립했을 때 생겼다. 대립,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단어로 적절하지 않지만 당시의 나는 그 단어 자체였다. (영어 이름을 bump head나 최소 한국인이라도 알아보고 피할 수 있게 Daelip으로 지었어야 했는데 그 정도 기지를 발휘하기에 나는 너무 나 자신에 대해 무지했다.) 그리고 그날은 내 정확한 작명이 늦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다.


  토론토에는 인도 출신 캐나다인이 승객의 90퍼센트이다. 열줄에 한명 정도 백인이나 다른 인종이 섞여있어서 순간 델리행 비행인가 착각할수도 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10년 살아도 집에서 쌀밥을 지어먹듯이 인도 사람들도 모국의 음식문화를 그대로 고집한다. 매 토론토 비행마다 나는 그것이 10시간의 비행에서도 고집할만한 것인지를 회의섞인 질문을 하곤 했다. 참고로 인도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대부분이거나 닭고기를 먹는다. 회사에선 당시 토론토행 이코노미 클래스에 두가지의 메뉴가 제공되었는데 하필 그 비율이란 것이 양고기 요기 70퍼센트와 닭고기 30퍼센트였다.


 처음 갤리에서 부사무장에게 메뉴 할당량에 관한 정보를 받았을 때 우리 이코노미 클래스 전담 승무원 여덟명은 먼저 비보를 전한채 자신 역시 창백한 얼굴로 얼어버린 부사무장을 노려보았고 이내 상공에 떠버린채 죽음을 맞이할 팀의 비극을 받아들였다. 우린 각자 손에 들린 (서비스할 때 승무원 참고용으로 쓰일) 메뉴를 들고 양고기 옆에 70, 닭고기 옆에 (작게) 30이란 숫자를 꾹꾹 눌러적으며 각자 장례식을 조용히 치를 준비를 했다.


 슬픈 예감은 직진해서 나를 관통했다. 나는 내 구역을 시작하자마자 치킨을 모조리 털리고 말았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이코노미 클래스 승무원들은 식사 서비스가 시작된지 불과 20여분만에 이곳 저곳에서 각자 카트를 끌다 멈춰서서 서로의 이름을 처절하게 부르며 한 개만 달라고 애원했다. 몇몇 눈치빠르고 이륙 직후부터 식사할 준비에 테이블까지 펴고 있던 승객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저 멀리서부터 고개를 바짝 들고 헤드폰을 목에 건 채로 우리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나는 크게 소리쳐 말하고 싶었다. "오늘 치킨 없습니다. 양고기도 괜찮아유 죄송하지만 내려서 드세요." 차마 할 수 없었던 그 외침을 속으로 삼키며 나와 우리 동료들은 갤리로 후퇴했다. 총기반입이 되지 않아 망정이지 이미 화가 난 몇몇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닭고기를 선택할 수 없었음에 입으로 장전된 분노를 쏘아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비행은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손이 떨린다.


 나와 우리 크루들은 잠시 회의 및 서로의 남은 치킨을 빼앗을 심보로 서비스 중 갤리로 후퇴하는 이례적인 일을 벌였다. 나와 대부분의 크루들은 비행한지 일년 남짓된 것에 비해 그 중에 이코노미 클래스 고인물이었던 (어떤 이유로 그때까지 승진을 못했는진 그의 다음 대사에서 예측할 수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 4년차(4년이면 당시 회사에선 비지니스 지나서 빠르면 일등석까지 올라갈 수 있는 시기다) 레바논 출신의 남자 승무원이 한명 있었다. 능글맞고 재치있는 유머로 유명한 그 나라 사람답게 또 경력자로서 그만의 여유까지 부리며 또 여자 승무원들 사이에서 나름 남자다움을 과시하며 그는 우릴 다독였다.


 "귀염둥이들아 (안믿기겠지만 그는 동료들을 주로 그렇게 불렀다.) 걱정말아, 우리 못죽일거야 위험한 물건들은 공항 들어올 때 다 압수 했어." 그 말에 등이 뻣뻣하게 굳으며 긴장되었던 나와 다른 승무원들은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우린 살아남기 위해서 갤리에 다음칸 승객들을 위해 계산해서 부사무장이 오븐에 숨겨놓은 몇개의 치킨 캐서롤을 호시탐탐 노렸다. 심지어 어떤 크루는 자기 손님이 vip라는 거짓말을 해서 두개 남은 치킨 중 하나를 빼돌려서 잽싸게 캐빈으로 사라졌다. 부사무장이 사실 확인차 승객 리스트를 펴보았을 때 이미 늦었었다. 부사무장이 중세시대의 후추처럼 값비싸게 거래되는 그 치킨을 도로 가지러 나갔지만 그 가짜 vip이자 치킨 없인 죽음을 달라고 해서 담당 승무원으로 하여금 용서할 수 없는 짓을 감행케 한 승객은 와작와작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린 서로를 노려보며 급하게 다시 식사 서비스를 재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치킨을 왜 내가 가져가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논하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솟는 것은 우리 뿐이 아닌지라 콜벨은 흡사 피파 월드컵의 부부젤라처럼 울려대고 있었다. 나는 기장에게 전화해서 급하게 양계장에 들려달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예의 그 레바니스 크루는 그런 우리의 이기성을 보다못해 말했다. "사랑둥이들~ 이러면 안돼지, 자 강아지 눈 해봐 애들아 그래 치킨 대신 슬픈 눈을 준비해서 가. 그리고 우리 너무 멀리왔어. 치킨 가지러 뉴욕으로 회항할 수 없어" 그 말에 웃느라 다시 한번 찜찔방에서 입 안의 얼음을 깨듯 시원하게 목마름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구역으로 무거운 카트를 밀고 나아갔다.


 내 고객은 닭고기 옵션이 없다고 하자마자 사무장을 불러오라고 했다. 마치 백화점에서 사려고 마음먹은 샤넬 원피스에 올이 나가서 판매를 할 수 없겠다고 하는 직원에게 이 층 매니저 나와보라고 해 하는 식의 매너에 대한 역겨움이 내 안에 몰려왔다. 그동안 내 안에 만날까 두려웠던 문제의 그 사람이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인도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성이 진씨이며 이름이 상인 바로 그 사람은 자기가 심지어 이 항공사의 직원이라고 했다. 직원이 왜 일반승객보다 더 대우받지 못하냐며 붉어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했다. 남쪽으로 날아가던 제비 북극에서 팥빙수 먹는 헛소리를 듣자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단 치킨 밀 초이스를 선택했지만 받지 못한 것이 어째서 다른 손님과 차별당한 것이며 부당하다고 느낄 일인지가 의문이었고 일반 승객이 200만원을 내고 비행기를 탈 때 20만원도 안되는 할인 가격으로 회사의 예우를 받았다면 그것이 설령 종교적인 이유일지라도 (알고보니 그렇지도 않았음) 겨우 한끼 음식에 진심어린 화까지 내가며 애꿎은 승무원을 벌하려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케이터링팀과 음모를 꾸며서 닭고기 대신 양고기를 더 많이 실어서 저 사람 약올려보자고, 기분 나쁘게 해보자고 한 적이 없다. 억울했다. 그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 뒤로 내가 비행을 그만두는 9년간 다른 동료들의 가십거리에서 빙빙 도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저기요, 우리가 지금 당신 치킨 가지러 뉴욕으로 회항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하하하"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비참함이 걸쭉힌 카레처럼 온몸을 뒤덮는 것을 느끼며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영국식 비꼬기 농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당신도 우리 회사 직원이라면서요....!) 손님은 웃지 않고 붉어지다못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다. "사무장 데려와." 어쩜 어느 부선지 몰라도 항공사 직원이라 직함 용어도 그리 정확한지... 눈싸움에 진 나는 "엣썰"하며 후퇴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직원이란 손님은 사무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처음에 사무장을 불러오라 했던 것은 다른 의도에서라기 보단 사무장에게 의견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는 승무원들, 즉 같은 상황을 겪은 동료애 속에서 유쾌하게 빛나던 유머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내 빈정대고 건방진 태도를 문제삼아 사무장에게 메뉴에 대한 것보단 나에 대한 '의견 제시'를 했다. 나는 문제의 비행에 뒤이어 있던 휴가 중에 며칠을 반납해가며 매니저를 만나러 갔다. 매니저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해. 그런 말을 당차게 할 수 있어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라고 말하는데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칭찬인가.. 매니저는 매니저였다. 수백명의 승무원들을 만나며 그런 대단한 대사는 내 머리에서 나올게 못됨을 간파했고 내가 솔직하게 일러대자(!!) 그건 인종에 따라서 유머가 될 수 없다며 앞으로 주의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VR(voyage report:비행 동안 사건 기록일지, 주로 부정적인 사건을 적어 보고함)에 적힌 워딩을 다시 천천히 읽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나는 매니저가 윗니로 입술을 누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답게 결코 웃기다고 말하지 않은채 나에게 승객에게 절대로 해선 안되는 말이며 태도였다고 다시 밑줄 쫙 긋는 소릴 해줬다. 솔직히 짐싸서 한국에 돌아가라고 할 줄 알았던 나는 그녀의 관대함에 눈물이 날 것처럼 고마웠다. 직업윤리와 예의에 대한 기본도 안되있던 나였지만 그 자리에 간 순간부터 나는 이미 배운거나 마찬가지였다. 활주로에서 이륙준비를 마친 6개월차 신입이었던 나는 날기도 전에 기체결함으로 다시 끌려서 정비하러 갔다. 과연 고쳐쓸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판정은 내가 아닌 매니저에게 달려있었고 다행히 내겐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매니저는 별 다른 이야기 없이 맥락도 없이 다른 비행에서 재밌는 일 없었냐고 물었다. 그런 말을 할 정도의 브레인이면 다른 가십거리나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을까 은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민망해하며 없다고, 내가 한 짓에 비해 적은 경고장으로 끝내줘서 고맙다고, 외우고 외운 멘트를 읊었다. 이 대목에서 매니저는 은근 김 샌 표정이었다. 이런 어리버리한 아시안 크루가 그런 말을 할리가 없어. 내가 본 게 맞구나, 하는 표정.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사건 이후에 동료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일부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승무원들은 나를 부끄러워했지만 다수의 비행 경력이 많은 승무원들은 어디서 전해들은 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속이 시원하다고, 자긴 평생을 비행해도 입에도 못담을 말이라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해선 안될 말을 했고 나는 6개월 만에 짤려서 집에 돌아갈 뻔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서비스란 무엇이며, 내가 얼마나 오만한 태도로 직업을 대했는지 고찰하게 되었다. 진짜다. 때론 내가 대우하는 것처럼 같은 대우가 돌아오진 않았고 인종 차별이라는 내 잘못없는 가혹한 매질도 당해야 했지만 굴하지 않고 내 몫을 해내는 노력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다민족주의를 내세운 회사이면서 실제로 승무원 외 다른 부서도 다국적 직원으로 구성된 기업에서 동료간 인종차별은 끔찍한 중죄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끼라 승객보다 더한 인종차별이 있기도 했다)


 매니저를 보기 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친한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 가벼움과 직업인으로서의 대처가 진심으로 부끄러웠고 달라지고 싶었다. 동료들은 사건의 진범인 나로부터 치킨 회항 사건의 오리지널 버전을 들으며 웃기도 했지만 내 진정성과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의 실수를 알아보고는 잘 했다고, 이제 제대로 하면 된다고 토닥여주었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메뉴 초이스 문제는 아마 전세계인이 모두 수박만 먹고 사는 날이 오기 전까진 과거부터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 될 것이다. 이후에 나는 승무원 역할만큼 수없이 많이 승객 역할도 했는데 종종 자기가 선택한 메뉴의 부재에 멱살잡을 기세로 성을 내는 사람을 가끔 아주 가끔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색없이 상냥한 태도로 초지일관하는 전문인들을 보면서 내가 감동을 받곤 했다.        

 

 몇년 뒤 진짜로 땅콩 가지러 회항한 국내항공사 소식을 들으며 내가 거기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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