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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Apr 14. 2022

다가가기 편한 사람

우울해본 적 있는 승무원

 호텔에 간혹 있는 3면 거울은 평소에 내가 못보던 내 뒷모습까지 보여준다. 구부정한 등, 목덜미까지 난 잔털과 힐끔 봐야 겨우 보이는 내 옆모습. 거울 속 내 진짜 모습은 내 상상보다 유약하면서도 견고하게 보인다. 운동을 하며 키운 마음의 근육들은 내가 우울감에서 온전히 해방하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더욱 나는 다른 사람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을 대면하는 직업은 우울증이 있을때 나를 힘들게하기도 했지만 극복의 과정에서 나를 도전하게도 했다.


 사람에 대한 긴장은 브리핑룸에서부터 시작되곤 했다. 매 비행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한팀으로 엮이는 구조는 나같은 심약자들에겐 쥐약이었다. 그러나 몸의 근육을 키울때 덤벨 무게를 늘려가듯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데 이만한 장치도 없었다. 비행. 또 비행. 매 비행마다 새로 보는 얼굴들은 나를 매끄럽게 만드는 사포질과도 같았다. 나 자신을 누구라도 들었다놓아도 손에 가시박히지 않을만큼의 사포질은 브리핑마다 계속되었다. 사람들 속에서 자유하기까지 나는 나의 직업적 숙명을 우울감 해방의 훈련의 연속으로 받아들였다.


 브리핑룸에 들어서기 전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전날 같이 비행하는 동료들의 신상이 적힌 종이를 뽑아두고 얼굴과 이름, 국적이나 그날 가는 취항지에 몇번 갔는지까지 세세하게 익혔다. 심지어 사번이 비슷한 동료들끼리는 기억해뒀다가 혹시 둘이 같은 훈련생인지도 잊지않고 물으며 아는체했다. 다가가기 어려워보이는 (겪어보면 대부분 내 편견에 그쳤다.) 동료가 있으면 동료의 국적에 관련된 대화주제를 꺼내서 마음을 녹였다. 상대방 말고 내 마음 말이다. 나 너네 나라 음식 좋아하는거 있어. 지난번에 거기 가봤는데 대박이더라. 이도저도 안먹힐땐, 너 누구누구 알아?하며 같이 일했던 그 나라 출신 다른 동료를 들먹였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모르거나. 셋 중 하나로 좁혀진 옵션의 덫에 걸린 동료는 어느새 마음의 빗장문을 걷고 나와 수다를 떨고있다. 이도 저도 안될땐 우스갯소리면 됐다. 나는 비행을 마칠 쯤엔 제법 웃긴 한국애로 불렸다.


 지나친 일일같지만 그렇게 다른 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연습과 실전은 내가 타인의 거울로부터 자유하게된 첫번째 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것은 좋으나 싫으나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했던 직업적 환경에 있었다. 감사했다. 모든 만남이 귀하고 편견없이 먼저 다가서면 누구라도 좋아할수 있는 '우리'가 될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수년이 지나고 교회에서 몇명이서 모여 서로의 장점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넌 다른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해줘. 승무원이라 그런가, 암튼 처음 봤을때도 먼저 인사했잖아. 그 다음부턴 교회 나와서도 너부터 찾게되더라고."

 그 말을 듣고나니 그간 브리핑룸의 나홀로 싸움에서 드디어 이겼다는 생각에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내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훈련으로 애초에 없던 직업적 소명의식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사람도 낯설어 어려운 대신 '처음이라서' 반갑고, 나랑 성향이나 살아온(?)환경이  달라보여서 거리감이 느껴지더라도 다르기 때문에 재밌다 생각했다. 승무원의 첫번째 의무인 안전을 빼면 품격있고 편안한 관계일텐데, 나는 그 의무감 대신 그런 사람이 되는 연습으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서비스정신은, 직업적 소명의식은 진짜 내 삶에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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