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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우뚝 서기]나만 좋으면 돼

by 웃는샘 이혜정
나혼자그냥철학 10.jpg


왜 집에만 있냐고?

내가 삶을 잘 못 즐기는 것 같지?

천만에.

나도 하루하루가 참 즐겁다고.

뭐든,

나만 좋으면 돼.

네 생각대로 판단하지 마!





“혜정아, 너 참 재미없게 산다.”

테이블에 앉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신랑이 이렇게 훅 내뱉고 간다.


“무슨? 난 재밌어서 하는 건데.”

이 말에도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지나간다. 굳이 열 받게 하면서, 뭐 도움을 주는 것도 없으면서 저렇게.

캠핑장에 갔다. 그늘 아래 테이블과 나만의 안락한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난 책을 읽는다.

납작한 돌들을 어디서 주워왔는지, 세 남자는 한쪽에서 비석 치기를 한다.

한참이 지나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캐치볼을 한다고 또 난리법석이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왜 그리 재미없게 놀아요?”

“야! 엄마도 재미있거든.”

나의 대답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자기들끼리 또 고개를 도리도리 한다.


마음먹고 제주 보름 살기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잠자리를 바꾸는 것이 싫어서 보름 동안 한 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15일간 렌탈을 했었다.

그때는 코로나 전이어서, 많은 선생님들은 해외여행으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또는 호주에서 보름살기하지? 아이가 그만할 때 나가보면 영어실력이나 견문이 넓어지고 좋아.”

이런 말씀에 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렇게 또 말했다.

“전 그냥 이게 좋아요.”


사실 나 같은 엄마 만나서 5학년, 3학년이 된 아들들은 해외여행 한번 가 본 적이 없다. 코로나 핑계 대며 저 멀리 안 나갈 수 있는 지금 현실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들 정도이다.

옆 학교에 해외 파견을 여러 번 다녀오신 선생님이 계신다. 해외여행을 좋아하고, 좀 더 세계적인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주변 선생님들은 그 선생님을 아주 부러워했다. 파견을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공유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열띤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는 내가 괜히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때 나온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넓은 세상으로 나가 경험하기’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기’

‘자녀를 해외에서 공부시키기’

……

나는 결코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어 한 적이 없다. 경남을 떠나 살아보고 싶어 한 적도 없다. 내 아이가 만약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한다면 난 최대한 그 허락을 뒤로 미룰 것이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인도에 주재원으로 파견 나가는 동생네를 보고 있으면 우물 속에서 즐기고 있는 내가 조금은 이상해 보이기도 하다. 최대한 편안한 곳에서 한껏 비비며 소통하고 웃으며 지내는 게 나에게는 큰 행복인데. 지금처럼.


난 대한민국의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섬, 거제도의 그저 그런 동네, 아주동의 34평 아파트, 그리고 그곳의 2평 남짓한 내 공간에서 일주일도, 한 달도 잘 보낼 수 있다. 부산에 사시는 부모 곁에서, 편안하게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이 한국에서 그저 지금처럼 살고, 놀고 싶다.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아쉽지 않고, 행복하게.

외롭지 않고, 보람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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