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 사랑하기

by 웃는샘 이혜정


당신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돼요.

그러니 당장 고치세요!

서운해하지 말아요. 저도 사실 고칠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늘 노력 중이에요.

다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살잖아요. 아닌가요?


네? 만약에 그렇게 기대하는 대로 못 고치면 어떻게 되냐고요?

싫어할 거냐고요? 나를요?


음……. 모르겠어요. 실망하게 되고, 불안할 것 같긴 해요. 결국 싫어하게 되겠죠. 내가 나를요. 정말 무서운 일이네요. 그런 일이 안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뭐라고요? 조건들을 몽땅 버리라고요? 그냥, 사랑하라고요?

그냥 나니까, 그냥 너니까 사랑하라고요?

음……. 노력은 해볼게요. 근데 정말 이상적인 얘기네요.






몇몇의 막장 드라마를 보면, 조건이 변한 상대를 이전과 다르게 대하는 못돼먹은 역할들이 나온다.

상대가 가난해졌다고, 뚱뚱하거나 못생겨졌다고, 직업을 잃었다고, 사랑이 변했다 하면서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보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어머, 정말 못됐다.’, ‘인성이 뭐 저래?’라며 괜히 그 배우까지 싫어하겠다고 난리다.

‘어머! 저 사람 조건 보고 좋아한 거야? 그럼 안되지. 음, 너무 현실적이고 계산적이야. 안돼! 안돼!’


오늘 저녁 신랑이 좋아하는 스팸을, 그것도 직접 구워서 따로 예쁜 접시에 담아주기까지 했다.


“왜 그래? 무섭게. 스팸을 직접 구워주다니. 애들아! 너네 엄마 오늘 왜 그러시니?”

“당신이 어제 애들하고 열심히 축구했잖아. 그 뚱뚱한 몸으로 뛴다고 얼마나 힘들었겠어?”

“역시, 그러면 그렇지. 혜정이 넌 내가 애들한테 좀 잘해야 이렇게 살갑게 해 주더라.”

“여보! 원래 사랑은 조건적이야. 몰랐어?”


바로 며칠 전, 조건을 따지며 사랑을 하던 드라마 주인공을 보며 욕을 욕을 했었는데, 대놓고 나는 ‘조건적 사랑’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랑은 당연히 조건적이어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적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지? 신이면 모를까.’

며칠 상간, 한입으로 다른 말을 내뱉은 내가 조금은 창피하게 느껴졌지만, 그게 현실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뻔뻔한 웃음으로 모른 체했다.



문득, 작년에 읽었던 책에서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글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책장으로 가서 다시 찾아 빼내어 읽어 보았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나로 살아가는 기쁨’이다.

주인공 아니타는 4년간의 암투병을 하다, 임사체험을 하게 되고, 그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기쁨을 찾게 되며 그 과정에서의 감동을 고스란히 글로 풀어놓았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자신을 덜 판단하게 되며, 결국 상대를 덜 판단하게 된다고 말한다. ‘판단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나만의 기준과 조건을 내세워 옳고 그름을 분별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란 말과도 같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남들보다 잘 못 놀아서 주눅 든 적이 있다. 키가 작다고 스스로를 밉게 생각하거나, 남들보다 겁이 많아 위축된 적도 있었다. 여행 경험이 나보다 더 많다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돈을 많이 버는 주변인들에 샘낸 적도 많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나는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난 더 부지런하지 않지?

‘왜 난 쟤들처럼 돈을 못 벌지?’

‘왜 난 글을 잘 쓰지 못할까? 다들 작가가 되는데.’

늘 나는 나를 재어보고 판단했다. 상대가 원할 것 같은, 사회가 원할 것 같은 나를 기준으로 세워놓고,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난 내 주변인들을 내가 생각했던 조건들에 비추어 판단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또는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 더 인색한 법이다. 신랑을 내 기준으로 고치려고, 내 아이를 내 기준으로 키우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남는 건 행복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고치거나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 반대의 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두려움과 불안이 커졌다.

‘나는 날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 몰라 책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1. 당신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축하해줄 수 있는가?

2. 그런 일로 위협을 느낀다거나 자칫 내 상황이 바뀔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진 않는가?

3.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서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자유를 주고 있는가? 그리고 상대가 정말 행복해하는 일을 적극 지지하는가?

4. 둘 중 한쪽이 때로 더 줄 수도 있고 더 받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서로 주고받음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는가?

나는 네 가지 모두 ‘No’였다. 슬픈 얘기지만 난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고, 내 신랑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예쁜 옷을 입었을 때, “나 예쁘네.”

교사 연구대회에서 입상했을 때, “나 잘하네.”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할 때, “나 잘 키웠네.”

신랑이 잘해줄 때, “나 시집 잘 갔네.”

그날 계획이 잘 지켜졌을 때, “나 잘 살고 있네.”


이렇게 늘 조건에 비추어 날 판단하는 습관을 버려야겠다.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나 때문에 피곤한 내 가족을 위해.


오늘 밤 난,

아무도 모르게

그저 좋은 나로,

그저 사랑스러운 나로,

그저 예쁜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맛볼 준비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 혼자우뚝 서기]나만 좋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