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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는샘 이혜정 Sep 17. 2021

[웃는샘의 그림일기] 딴 짓 해도 돼

웃는샘의 그림일기 _딴짓해도 돼




너, 지금 뭐해?

이노무자식!

열심히 하라고 기껏 책상 사줬더니,

딴짓을 해?     

뭐?

나도……, 해보라고?

딴짓을?

엄청 재밌다고?





수업시간이 되면, 내 눈은 매의 눈이 된다. 반 아이들 30명이 가까이 되었을 때에도, 나는 저 끝에 앉아 있는 아이가 필기를 제대로 하는지, 문제를 집중하며 푸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십여 년간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는지, 딴짓을 하는지 확인하는 감시자였다. 


 수학익힘책을 걷어 채점을 하는데, 유독 한 아이 책 곳곳에 낙서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아주 점잖게 물어보았다.


 “00아, 이거 뭐니?”


나도 참 웃긴 게, 알면서 물어보는 건 뭔가? 낙서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오은영박사님이 말씀하셨다. 절대 아는 건 묻지 말라고. 아이의 거짓말을 부르는 행동이라고. ^^)  


나는 힘껏 다정하게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얼어 있었다. 그리고 죄 지은 것 마냥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다음엔 책에 낙서하지 마. 알겠지?”


나는 쿨하게 지도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그날을 뿌듯하게 보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티비를 켰는데, 기안84라는 웹툰 작가의 일상이 나왔다. 그의 짐 속에 그림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정말 낙서만 했어요. 교과서에, 벽에, 바닥에. 그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 그림이 좋았나 봐요.”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낙서를 했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저녁식사를 다하고 부엌정리를 했다. 힘든 몸을 이끌고 거실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요놈들 뭐 하는 거지? 왜 이리 조용해?’


아이의 동태를 알고자, 내 눈은 또 감시모드로 변했다. 


아이 방문을 슬쩍 열어보니, 이 두 망아지들 모두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한놈은 코딩을, 한놈은 영상보며 만들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또 아주 점잖게 물었다.


“너희 할 거 다 했니?”


아이들은 꽤 오래 나와 살았기 때문에 내가 언제 고함을 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당당히 말한다.


  “그럼요. 다했어요.”


나는 괜히 그 딴짓을 막기 위해 심통을 부렸다.


  “학교 숙제는?”

  “피아노는 쳤어?”

  “일기는 요즘 예쁘게 쓰니?”     


 어떻게든 저 딴짓을 막아보려고 나는 쿨 내 풍기며 저렇게 질문만 해댔다.     

      


 

교육 자료를 찾아보다가 ‘스티브잡스’에 대해 검색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 히피문화에 빠져 한동안 여행만 다녔고, 마약에, 대학중퇴에, 한마디로 우리가 말하는 쓸 데없는 짓을 성인이 되어서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의 위인전은 세계 각 도서관마다 꽂혀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페이퍼빌드’ 유튜버를 보면서도,

‘저 사람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저 종이접기만 했을까? 만약 내 아이가 하루종일 저렇게 종이만 접는다면 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응원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라.’, ‘앞으로는 크리에이터(창작자)의 시대이다.’, ‘그러니까 시키는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으면서도, 정작 내 행동은 아이들이 딴짓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고리타분한 어른이었다. 꼭 콩쥐 감시하는 팥쥐 엄마 같았다.


딴짓은 하고 있는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말한다. 한마디로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나에게는 딴짓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봐요, 이혜정씨! 왜 딴짓해요? 당신은 교사로서 아이들만 가르치면 되고, 엄마로서 아이 키우는 일만 하면 돼요. 자기 일만 하면 되지, 왜 그러시죠?”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그냥……, 재밌어서요. 이게 좋아서요. 그리고 이 딴짓에서 제 꿈을 또 찾았거든요.”     



딴짓은, 즐거움, 삶의 활력이 된다. 그 딴짓 속에 우리의 꿈이 숨어 있기도 한다.

그것을 방해한다고 안 할 것도 아니고, 시킨다고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딴짓은 딴짓일 뿐이니까, 제3자는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애들아!

딴짓해! 

이제 해도 돼!

우리 같이 딴짓 좀 해보자!

각자에게 해되는 일만 아니면 

그깟 딴짓거리! 

맘껏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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