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뭘 더 하고 싶은데?
- 저길 오를 거에요. 더 높은 곳으로.
그건 왜 하는데?
- 더 높으니까요.
무엇을 위한 건데?
- 글쎄요. 저를 위한 거?
저기 오르고 나면 무엇을 할래?
- 음……. 뭐, 좀 보다가 내려오겠죠.
그걸 원한 거니?
-아뇨. 저기요. 근데 제가 도대체 무엇을 원한 걸까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이 책에는 호랑나비가 될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나온다.
나와 똑 닮은 줄무늬 애벌레……
평범해서 소소한 삶을 행복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모두 저렇게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틀림없이 굉장히 좋은 것이 있을 거야.”
결국 줄무늬 애벌레는 구체적인 목적도 없이 기둥 위로 올라가는 애벌레 무리에 끼어 누군가를 밟고 밀고 짓누르게 된다. 그러다가 노랑 애벌레를 만나게 되어 함께 내려온다. 둘이서 잠깐의 행복을 누리지만 줄무늬 애벌레는
‘분명 저 기둥 위에는 뭔가가 있을거야.’ 라며, 기둥 위를 오르지 못한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패배자, 아니면 적어도 꿈을 이루지 못한 불행한 애벌레일 거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를 두고 떠난다.
다시 줄무늬 애벌레는 서로 밟고 올라서야하는 그 기둥 더미로 가게 되었다. 그 속에서는 이제 친구란 있을 수가 없었다. 기둥 끝에 다 다른 줄무늬 애벌레는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노랑 애벌레를 그리워한다.
그때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는 줄무늬 애벌레 곁으로 가게 되고……,이 둘은 함께 내려온다.
줄무늬 애벌레는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노랑 애벌레가 그랬던 것처럼 고치만들기를 시작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기둥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에게 훨씬 더 가치있는 삶, 희망이었을 것이다.
수능을 망쳐 하고싶었 일을 포기하고 가게 된 교대, 그리고 그곳에서도 맞지 않는 문과 공부에 낙담하고……, 결국 난 교사가 되었다.
'난 조금은 다른 교사가 될거야.'라는 포부와 함께
신규교사 연수 땐 '나도 저 강사가 될 수 있을까? '
업무 담당자 연수를 가게 되면
‘저 사람은 얼마나 저 업무에 대해 잘 알기에 저렇게 전달연수까지 할까?'
‘이 사람 대단한데.' '우와, 저 사람 부럽다.'
라며 누군가를 질투하고, 보이지 않은 추상적인 뭔가에 욕심을 부렸었다. 물론 그런 욕심에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면에서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소홀함이 일절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지금은 내가 원하는 학교에 오게 되었고, 내가 맡은 일에는 타인이 잘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커리어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줄무늬 애벌레처럼, 사소한 일상에서는 행복을 그다지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에 푹 빠져 보고 있는 드라마에서 이런 부분이 나온다.(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난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잘 아는 편이야.”
서울대를 나와 고향으로 내려와 시청 공무원을 하고 있는 장우……. 현실에서나 드라마 속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다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노랑 애벌레를, 그리고 이 장우라는 인물을 좀 닮아 봐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