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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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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원형은 완벽하지 않다.


모든 원형은 완벽하지 않다.
우주에서만 완벽해.



이 이야기는 중학교 때 나를 가르쳐 주셨던 과학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한 얘기에서부터 시작된다




1. 둥글게 그려진 모양이나 형태.
2.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

▲출처_표준국어대사전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원을 좋아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 보자면, 내가 완벽한 원을 그렸을 때를 제일 좋아했다. 완성된 원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뿌듯했다. 몇 번을 지우고, 다시 그린 후에야 만날 수 있었던 형태이기에. 그러다보니 한번에 원형을 잘 그리는 친구들을 미술 시간마다 종종 부러워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우주에 대한 과목 수업 중에 과학 선생님께서 원에 대해 해 주셨던 얘기가 있다.



'사실 모든 원형은 완벽하지 않아.'



중학교 3학년 때의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이제까지 내가 보았던, 잘 그려지고 예쁜 원들은 모두 무엇이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기와 중력이 존재하지 우주에서도 완벽한 원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는 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 과학 시간이었던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가서 여쭤 보았다.



"선생님, 우주에서는 완벽한 원형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아주 잠깐 고민하시더니, 내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아무런 외부적 요소가 없는 우주에서는 완벽한 원형일 수 있을 것 같아."



중학생 때 들었던 이 말은 그저 '아, 완벽한 원형은 없구나.'에서 그쳤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된 후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려야 할 일이 생겼다. 하얀 종이 위에 나는 어김없이 동그라미를 그렸고 어김없이 완벽한 원형, 아니 완벽에 가까운 원형을 그리기 위해 지우개질에 박차를 가했다. 그저 '잘' 그리려고만 했다.


그림을 모두 그린 후 교수님께서는 그림에 대한 평가가 아닌, 그림에 그려진 '요소'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중요한 건 누가 더 잘 그리냐가 아닌, 무엇을 그렸는 지가 중요해지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잘 그리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원이 삐뚤빼뚤한 원형과 같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괜히 내가 웃겼다. 나는 뭐 때문에 완벽에 가까운 원을 그리기 위해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했을까. 왜 나는 아직도 반복적인 지우개질을 놓지 못했을까.


사실상 나는 완벽한 원에서 '완벽'의 의미도 아직 몸소 이해하지 못했다. '완벽'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왜그리도 완벽에 가까운 동그라미를 위해 애썼을까. 이는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마음에 들때까지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을 반복하던 나의 모습. 뒤늦게야 다시 인식하게 된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놓아주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동그라미는 참 닮았다.



어릴적의 나만 해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완벽해 보였다. 우습게도 나는 완벽한 사람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할 줄 알았다. 조금 더 자란 후에 마주하니 완벽한 사람들에게도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함을 실감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그라미와 사람은 참 닮았다. 완벽하게 그리면 될 줄 알았지만, 아무리 완벽과 비슷하게 그린다고 해도 '완벽한 동그라미'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무언가 허무해지기도 했다. 나 역시 매 과제물마다 완벽하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완전한 완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에게 직접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평가로 이루어진 점수는 늘 매번 아쉬웠다. 내가 애썼던 것엘 비해서는 아쉬움이 남는 점수였다. 내가 이런 고민을 말할 때마다 늘 엄마가 내게 해 주시는 얘기가 있다.



그래도, 그만큼 해서 이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보다 덜 노력했으면 그 정도 점수보다 덜 받았을 거잖아.



맞는 말씀이었다. 내가 이 정도 만큼 했기 때문에 이 만큼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낮은 점수가 아니었다. 내가 받은 점수는 편하게 받을 수 있는 점수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지금에야 다시 얘기해 보면 '이만큼의 노력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잠깐 허무해질 뻔했지만, 다행히 허무함 속에 빠지지 않았다. 자칫하면 조금씩하고 있던 물장구를 넘어 파도에 휩쓸릴 뻔했지만, 다행히 약간의 외부적 요소에 물장구를 멈출 수 있었다.


아, 우주가 아닌 지구에는 이런 외부적 요소들로 인해 완벽할 수 없구나. 우주에는 무언가를 전달할 때 전송 수단이 되는 매질 즉, 공기가 없기에 서로간의 소리를 전할 수 없다. 충격 역시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엇이 잘못된 지 조차 알 수 없다. 외부적 요소로 인한 깨우침이 없기에. 나는 엄마의 말이라는 외부적인 요소를 통해 나의 오래된 물장구를 멈출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우주에 있는 상태처럼 아무런 외부적인 요소가 없었더라면, 나의 물장구는 멈추지 않은 채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사람이 동그라미처럼 완벽할 수 없는 이유는,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그른 부분을 곧게 다듬어 나가며 자라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렇기에 완벽하다는 것은 사실 외부적인 요소 그 어떠한 것도 수용 혹은 참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렇다고 또 완벽해지지 않아야지, 라는 의미보다는 '동그라미 같은 사람'을 추구하며 조금씩 다듬고 다듬어져야지, 라고. 단 한 명의 존재인 내가 동그래지기 위해.


그래, 조금 더 동그래자. 그런 의미에서 마침 설 연휴가 아직 조금 남았으니 동그랑땡을 조금 더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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