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문, 파티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바깥은 준비됐어』 중
What if?: 만약 메타버스 게임에 빠진 청소년이 게임 속에서 사랑에 빠진다면? 그 사랑 이면에 감춰진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면?
Why this?: ‘게임 속 사랑’이라는 소재도 재밌고, 스토리도 초등학생 고학년이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전혀 난해하지 않고 너무 재밌다. 짧은 이야기 속에 반전의 반전이 나와서 더 재밌다. 내가 찾고 찾던 청소년 SF 단편의 교본 그 자체다. 몇 번 더 읽어봐야지.
「레벨 99로 강등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안녕하세요?”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레아가 아니었다. 하지만 레아보다도 더 서구적으로 생긴 미녀의 모습이었다. 백마법사라서 그런지 흰 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머리는 금발이었고 눈동자는 에메랄드 색이었다.
“레아...가 아니네...”
선우는 실망감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제 이름은 레아가 맞아요.”
금발의 미녀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놀란 선우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우리 아지트 기억하나요?”
레아와 공유했던 꿈 같았던 추억들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 확실한 실재라고, 확인하고 싶었다.
“저는 선우 씨를 처음 만나요. 실례지만 혹시 백마법사인가요?”
선우는 이제 깨달았다. 동일한 유저가 강등되어 같은 퀘스트에 다시 도전하게 되더라도 동일한 NPC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만 같을 뿐 그녀는 선우가 사랑에 빠진 레아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초기화된 레아겠지. 사실, 레벨 99까지 이르는 백마법사는 전국에 몇 명 되지도 않을 테니 NPC의 이름이 모두 ‘레아’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레벨 100을 달성했을 때 레아가 사라지면서 기억 데이터는 이미 모두 삭제되어 버렸겠지. NPC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을 테니까.
선우는 망설임 없이 퓨처로드를 종료했다. 이름만 같을 뿐 아무런 추억도 공유할 수 없는 레아와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선우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확 늙어버린 것 같았다. 사랑, 이별, 집착, 포기... 마치 몇십 년의 인생을 살아버린 것처럼. 당분간 캡슐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창밖을 보니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방독면 없이도 외출할 수 있는 맑은 날이었다. 주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는 구름을 보니 현실이 더 마법같이 느껴졌다.
선우는 아버지 방을 들여다봤다. 중국 IT 기업과 계약 문제로 한창 바쁜 아버지는 귀가 후에도 정신없이 타이핑을 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창 캡슐에 있을 시간 아니냐?”
선우는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밖에 나가서 좀 걷지 않을래요? 컵라면도 사 먹고요.”
아버지는 버퍼링에 걸린 듯 잠시 동작을 멈췄다가 벌떡 일어섰다.
“당, 당연히 좋지. 컵라면 10개라도 사줄게. 나가자, 선우야, 지금 바로.”
아버지와 함께 컵라면 퀘스트를 깨면 현실에서도 레벨이 좀 오르겠지, 라고 선우는 생각했다.
Why not?: 사실, 원작에 나오는 마지막 ‘요술램프의 소원’ 장면은 너무나 완벽해서 패러디할 필요를 못 느끼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봤다. 여러모로 충격을 받은(?) 선우가 메타버스를 잠깐 쉬고 현실로 돌아온다면,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한다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