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3일
1년 만이다….
작년 이맘때쯤 일기를 쓰고 딱 1년 만이다. 이유는 코로나가 터지고 청소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주 아파트 융자 관계로 번역일만 해서는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마음으로는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번역일이나 간간이 하고 신선놀음을 하고 싶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으니… 작년 5월 말부터 내가 사는 호주 Joss Facility Management라는 대형 시설관리 업체에 고용이 돼 정부기관 청소일을 해오고 있다. 1년도 안된 오늘 통장에 팔만 불 가까이 모였다. 코로나 덕분에 관공서 방역 청소를 평일 시간당 43불을 받고 해온 덕이다. 역시 호주는 노동복지국이다. 오 해피 데이~~!!
기본적으로 호주에서의 급여는 월급이 아닌 주급이며 종종 2주 간격으로 정산된 급여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새벽이나 밤, 또는 주말과 공휴일에 일을 하면 1.5배를 준다. 예를 들어 시간당 20불일 경우 주말에 일을 하면 1.5배인 30불을 시간당 급여로 받을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에 일을 하면 기존 페이의 2배를 주었었다.) 연금도 최소 9%에서 최대 17%까지 백 프로 고용주 부담이고 일을 하다가 상해를 입어 담당 매니저에게 보고를 하면 (담당 주치의로부터 받은 의료증명서 제출 필수!) 가벼운 업무(light duties)만을 격일로 하는데 기존에 받던 급여가 계속 나온다. 정말 심한 상해일 경우는 몇천만 원에서 몇억까지 보상금으로 주기도 한다. 주로 제철/탄광 등 산업재해로 인한 보상금인 경우가 많고 그 외 군인, 소방관, 경찰관, 응급의료원 등등 전문직이나 사고 위험에 다발적으로 노출된 직군들이 상해 보상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호주는 고위험군에서 일을 하는 소방, 경찰, 응급의료, 군인 공무원들의 급여 또한 우리나라와 다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쥐꼬리만 한) 기본 본봉에 목숨 수당이라고 부르는 위험수당을 추가로 급여받지만, 호주의 경우 기본 본봉이 원초적으로 높고 세다. 그 위에 이런저런 추가 수당들이 합쳐져서 넉넉한 급여를 받고 세금도 많이 내며 그에 따른 복지 혜택도 많이 받으며 산다. 그래서 호주 사람들은 기본 급여가 높은 직군에서 일을 하면 위험이 크다는 인식을 자동적으로 한다. 정신적, 신체적 위험 모두 말이다. 위험하기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에 국가차원에서 급여복지를 탄탄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박봉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우리나라 군, 경찰 공무원의 급여체계를 참으로 야위어 보이게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의 더 나아질 급여복지를 희망하며 청소일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조금 적어보려 한다.
지난 십여 년간 호주에서 난민촌 애들 가르쳤던 일, 카페 사업했던 일, 부동산 일, 중간중간에 알바로 했던 캐셔 일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이 아주 심한 직업들이었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했던가! 너무 힘들었던 일들이었고 스트레스로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 통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내린 결론, 긴 코로나 기간 동안 통번역 일과 공부를 하면서 반드시 보수가 좋은 단순노동을 하리라!
계획대로 보수가 좋은 단순 육체노동을 찾았고 (이 또한 7,8년 알고 지냈던 호주 현지인의 소개로 찾았다.) 석 달의 심사과정을 통해 유니폼을 받고 사원증 같은 아이디를 받았다. 심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회사에서 지정해준 체력검사센터(사실 Rehab이라고 재활센터)에서 청력검사를 포함한 체력 검사를 했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재활센터와 헬스장을 합쳐놓은 곳이었고 트레이너분이 스쿼트, 런지, 웨이트 등등 운동을 시키고 초시계로 시간을 재며 빈 박스에 무거운 물체를 500그램씩 중량 시키면서 최대한 들을 수 있는 무게, 최대한 밀 수 있는 무게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모든 기록은 주어진 양식에 트레이너분이 손으로 써내려갔고 나는 하단에 이름과 서명을 했다. 참고로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관계가 될 서류는 컴퓨터 타자가 아닌 반드시 손으로(hand-writing)쓰고 서명한다. 도용불가원칙, 그리고 Copy(복사)가 된 서류일 경우, 원본과 동일하다는 JP(Justice of the Peace, 일종의 공증사같은 분)의 싸인을 받아야 인정해준다.) 동시에 트레이너 분이 일을 할 때 Manual Handling하는 법, 즉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있을 경우 드는 방법, 체중을 이동시키는 법, 항상 두 발이 땅에 닿은 채 반복적 노동을 하는 법 등등을 가르쳐 주었다. 후에 이 자료들이 상해를 입거나 다쳤을 경우 근거자료로 쓰인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높이 있는 물건 가지려다 다쳤는데 알고 보니 의자에 올라가거나 책상에 올라가서 떨어져 다친 경우 상해 보상에서 제외된다. 두 발은 반드시 땅에 닿아야 하는 게 노동 원칙인데 그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어이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동 원칙을 지키지 않는 노동자의 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노동 관련 법규가 생각보다 아주 세세하게 짜여 있다. (심지어 체력검사 담당 트레이너가 법정에선 증인이라는... 살벌한 현실ㅠ) 그래야만 돈만 바라보고 거짓으로 보상금만 받아내려는 사람을 걸러낼 수 있고 정직하게 일한 자가 다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노동 강령 및 법규가 일종의 필터링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석 달의 심사과정을 지나 용역일을 하게 되었고 첫 6개월은 몸이 적응하느라 고되긴 했지만 단순노동이어서 머리와 마음이 가벼웠다. 야호! 아니다 다를까. 새벽 일찍 청소일을 다녀오고 나면 마치 헬스장 가서 운동을 한 것처럼 근육통과 함께 땀이 쭉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주어진 시간에 맞춰 쓸고 닦고만 하면 끝이다. 아침 아홉 시면 출근하는 관공서 직원들을 보며 나는 퇴근을 하는 그 기분~~~ 다들 굿모닝! 하고 인사할 때 나는 바이! 해브 어 굿 데이! 를 외치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한숨 쉬고 점심때쯤 일어나 나의 천직이자 최애인 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오랜 전우이자 삶의 동반자 캡슐커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