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 심리적 외상(childhood trauma)으로 어릴 적 채워지지 않은 필수적 욕구는 커서도 우리를 괴롭힌다.
부족하기에 채우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관계 중독에 빠지거나 자신을 학대하고 파괴하는 행동을 한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가까웠다. 약물 남용까지는 아니지만 위험한 스릴을 추구했다. 술, 마리화나, 섹스... 그야말로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평범함 대학 초년생이 아니었다.
홍대, 강남 클럽이 모자라 외국인클럽과 바, 미군 부대를 돌아다니며 못된 짓들만 배웠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서는 ‘평생 연애질만 하다가 죽을 거예요!’라고 윤리 선생님께 대들었던 중학교 시절의 반항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지금이라면 무서워서 생각도 못 할 짓을 그때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자태로 한밤중에 캐나다 클럽 거리를 돌아다니며 술과 마리화나에 취해 눈 파란 친구들과 휘청거렸다.
늑대가 먹잇감을 찾아 헤매듯 그야말로 자기 파괴적 충동의 끝을 달렸다.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이대로 살아서 뭐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술, 마리화나, 섹스로 자신을 학대했다. 그러나 병든 마음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렇게 한 학기 휴학 후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복학했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공허함이 밀려왔고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때쯤이었다. 영문과 외국인 교수님들 중, 벨기에 태생 호주 출신 교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알고 보니 뉴캐슬대학 행동과학 전공이셨고 전직 호주 특전사 및 경찰 출신으로 이민자 집안에서 자라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신 분이셨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학생 중 유달리 극단적 행동 양상을 보이는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셨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 교수님이어서 안심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사랑과 인정이 고파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원하는 데로 엄마의 조건과 기분에 맞추어 살았노라고... 그런데 그 결과 나 자신을 잃었고 몸이 병들어 가고 있다고... 마음이 아프고 우울하다고...
교수님께서 상처받은 내 영혼을 알아차리시고 물으셨다. 지금 하고 싶은 게 있냐고. 그냥 죽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자살을 시도할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힘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한 번 살아보고 난 후에 결정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되물으셨다.
그때, 순간적으로 ‘교수님, 사실은 저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왜 벗어나고 싶은지를 물으셨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말씀드렸다. 엄마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두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라고...
그 길로 교수님은 추천서를 써주셨다. 모대학 산하의 어학당을 운영하시는 OOO원장을 찾아가라고 알려주셨다. 알려주신 데로 그분을 찾아갔더니 유펜(University of Pennsylvania) 교육학 박사 출신이셨다. 그 자리에서 영어인터뷰 및 면접을 보고 인턴 기간 포함 유치부 담당으로 2년 단기채용 제안을 받았고 추후 해외 대학원 유학을 위한 재직증명서 및 추천서를 써주시겠다며 2년 동안 잘해보자고 하셨다. 머물 곳이 없으면 직원 숙소도 제공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유학 보장 취업을 했고 신나게 첫 달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노발대발 난리가 나셨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까짓 학원 선생 만들려고 이렇게 뼈 빠지게 산 줄 알아? 공립학교 선생을 해도 모자랄 판에! 너 꼼짝하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 당장 데리러 갈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당일 비행기로 제주도에서 육지로 날아오셨다. 그렇게 나는 머리끄덩이 붙잡혀 제주도 고향 집으로 끌려가 가택연금을 당했다. (5화 참고)
https://brunch.co.kr/@debbie2000/74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