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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비 Apr 30. 2023

미국에서 집밥 먹는 일상_일곱 번째

금요일

아침 일곱 시 반


출근 준비하는 남편과 함께 일어나 남편의 도시락과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예전에는 주로 덮밥이나 볶음밥과 함께 샐러드를 싸주곤 했는데 요즘에는 간편한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자주 만들어 준다.


종종 브런치로 먹거나 남편의 도시락으로 싸주는 참깨 베이글 샌드위치


남편은 아침 식사로 빵과 과일을 먹고 출근길에 나선다.

주방을 정리하고 여전히 졸린 기운에 침대로 들어가 아침 성경묵상을 시작한다.


한창 집중하려 애를 쓰는 중에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딸아 통화하자"


아빠였다.


아빠와는 평소 자주 통화를 나누곤 하는데, 요즘에는 통 전화를 못 드리고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드렸다. 곧 수화기 너머로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남편 그리고 뱃속 '이레'의 안부를 물으시는 아빠.

잘 지낸다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 세례를 이어가신다. 출산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산후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관심과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는 아빠.


그동안 나와 남편은 둘이서 산후조리와 아기를 돌보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방이 없는 스튜디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엄마 또는 시어머님께서 오신다면 불편하실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이런 우리의 계획을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께 말씀드린 후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빠는 둘이서 산후조리를 하고 아기를 돌보는 것이 절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셨다. 옆에서 아빠의 말을 거드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지난주에는 시어머님께서 장문의 우려 섞인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셨는데 이번 주에는 우리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흥분 섞인 목소리를 높이신다. 비용은 걱정 말고 한인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라며 시어머님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사실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산후도우미 고용이 부담스러운 것은 맞다. 더군다나 나와 남편은 민폐 끼치는 것을 못 견뎌하는 터라 양가 부모님들로 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는 것조차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우리는 패기 넘치게 둘이서 이왕 한번 해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남편도 2주 정도는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다며 자신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나와 남편은 자신만만 천하태평인데

어찌 된 일인지 양가 부모님들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살짝 겁이 났다.


아빠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미국에서 두 번의 출산을 경험한 지인분께 전화를 걸었다.약 한 시간에 달하는 통화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일단 최소 2주는 산후도우미 분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것.


회음부 통증 때문에 한동안 소파에 앉기도 힘들었다는 지인,

출산의 여파가 그 정도인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도넛 방석'이란 것도 생전 처음 알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는 나에겐 완전히 생소한 세계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온라인상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정보 수집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산후조리'라는 테마가 금요일의 오전과 오후를 가득 채웠다.



어느덧 저녁을 향해 가는 하루.


출산에 대한 여러 생각으로 유달리 허기가 지는 오늘이다.


막 퇴근하여 돌아온 남편과 먹는 부대찌개.


양을 너무 많이 잡았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오늘도 거의 다 먹은 우리.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들려준 후, 우리는 산후조리에 대한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오늘도 늦은 밤까지 식탁에 앉아 집중하여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남편. 

일하는 줄 알았던 남편의 인터넷 창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했다.


내가 걱정하면 덩달아 걱정하며 그것의 해결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남편.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쉽게 불안감을 느끼는 나와 남편.


하지만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알아보고 준비하면 되는 것 아닐까?


뭐든 완벽하게 대비하려 하는 욕심은 내려놓기로 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시간이 좀 있어요."


애써 태연하게 말을 붙인다.  


가뜩이나 연구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그 외에 다른 스트레스까지 얹어주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그동안 우리가 굉장히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출산준비에 있어서 대단한 진보다.

막 출산을 마친 시기는 인생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남들에게 폐 끼치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불편해했던 우리. 심지어는 부모님의 손길마저도 말이다.


새롭게 알게 되었다.

도움을 받는 것조차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출산을 계기로 나와 남편은 우리의 '민폐공포증'조금은 극복하게 될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그렇게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삶에 더 자연스레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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