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은 글로벌하거나>
우리 회사와 경력, 규모와 직원수가 비슷한 동종업계의 그 회사는 '에이, 회사가 어떻게 그래'라고 생각했던 모든 점을 실현하고 있었다.
국내 영업이란 당연히 술이다!라는 공식이 있는 우리 회사와 달리 그곳은 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랑 그렇게 저녁 시간에 술을 오래, 많이 마셔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였다. 간혹 고객들을 퇴근하고 보긴 하지만 주로 업무 시간에 찾아보고 만나보면 되는 것이지 왜 클라이언트들의 저녁 시간까지 뺏으면서까지 영업을 하는 게 당연하냐는 눈치였다. 기본적으로 빨리 퇴근하고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가치인 문화권이어서 나타나는 현상인 듯했다.
나에겐 A, B, C, D, E라는 업무가 있고 가장 주된 업무는 A인데 나머지 업무들 때문에 A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은 B ~ E를 모두 다른 팀들이 맡고 있어서 A를 하는 사람은 정말 A만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면서 너는 어떻게 혼자서 A~E를 다 하냐며 신기해했다. 아마 나를 대단해하는 눈치이기보다는 딱해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또한 네가 B~E를 제대로 할 능력이 되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B~E는 그들은 팀이 각각 따로 존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한국에선 대충 한 사람이 전문성 없이 다 맡아서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늘 고민해왔던 문제라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 회사는 모든 직원들에게 한 번의 짧은 해외 연수 기회를 주기 때문에 회사 선배님들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었다. 해외에 나가보면 이런 식으로 일하는 회사 우리밖에 없다고. 그런데 정말 직접 보니 어떻게 다들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업무에 이렇게 기준이 없어도 되는 건가? 이렇게 한 사람이 많은 역할을 해도 되는 건가? 술 먹고 죽는 게 영업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전문성이 없어도 괜찮은가? 내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괜찮은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많이 시키지? 그 모든 질문들을 대충 넘어갔었는데, 다른 회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오니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다.
정말 능력 있는 선배님들은 결국 기회가 되면 해외에 있는 기업으로 이직하던데, 한국에 쌓아놓은 기반을 다 버리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