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탐욕은 더 많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안을 덜 느끼고 싶어서 자란다

by 데브라

탐욕은

욕심 많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안한 사람에게 더 자주 생긴다.


불안은 공백을 싫어한다.
비어 있는 시간을 싫어하고
비어 있는 관계를 싫어하고
비어 있는 미래를 싫어한다.


그래서 마음은
채우는 쪽으로 움직인다.


더 사면 괜찮아질 것 같고
더 벌면 숨이 트일 것 같고
더 모으면 안전해질 것 같다.


그 믿음은
잠깐은 맞다.


문제는
그 ‘잠깐’이 너무 짧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는 순간
마음은 잠시 조용해진다.
하지만 곧
다음 부족함을 만든다.


그래서 채움은
끝이 없다.


더 많은 것을 채우면
비어 있음이 사라질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채울수록 비어 있음은 더 커진다.


채움이
마음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법구경은
탐욕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욕심을 내지 마라”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대신
탐욕이 내 삶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는지
보라고 한다.


탐욕의 특징은 단순하다.


기쁨이 짧고
초조함이 길다.


얻는 순간은 짧고
잃을까 두려운 시간은 길다.


그래서 탐욕은
쾌락이 아니라 긴장을 키운다.


그리고 그 긴장은
삶의 표정까지 바꾼다.


여유가 줄어들고
감사가 줄어들고
사람을 보는 눈이 거칠어지고

나를 대하는 마음도 거칠어진다.


그때 마음은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더 많이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가 ‘더’라고 말하는 지점을
하나만 떠올려본다.


돈일 수도 있고
인정일 수도 있고
성과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더’ 앞에
짧은 문장을 하나 놓는다.


지금,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 불안이 있다.


이 문장은
탐욕을 없애지 않는다.

하지만 탐욕이
나의 정체성이 되는 걸 막는다.


현상이 되면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지금 당장 필요한지.
아니면 비어 있음이 두려워
손을 뻗는 것인지.


탐욕을 다루는 첫걸음은
없애는 게 아니라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속도가 늦춰지면
내가 무엇을 피하고 있었는지 보인다.


대개는
비어 있는 시간.
비어 있는 마음.
설명할 수 없는 불확실성.


그 비어 있음은
적이 아니다.


그 비어 있음이 있어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간다.


그래서 어떤 날엔
채우기 전에
잠깐 비워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 숨이 있다.
지금, 내가 있다.


그 사실이 먼저 서면
‘더’는 삶을 망치는 명령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선택이 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불안해서 그럴 뿐이다.


그리고 불안은
천천히 다뤄야 하는 감정이다.

이전 12화돈이 불안의 이름이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