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이 시작이다

바뀌는 건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대하는 방식이다

by 데브라

우리는 자주

마음을 바꾸고 싶어 한다.


불안을 없애고 싶고
분노를 줄이고 싶고
비교를 멈추고 싶다.


그런데 마음은
명령으로 잘 바뀌지 않는다.


마음은 파도처럼 올라왔다 내려간다.
파도를 없애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파도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건
마음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힘이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길은
대체로 이 방향이다.


마음을 통제하기보다
먼저 알아차리라고.


왜냐하면
알아차림이 없으면
나는 자동으로 산다.


자동으로 말하고
자동으로 화를 내고
자동으로 비교하고
자동으로 자책한다.


그리고 자동의 끝에서
“왜 나는 또 이럴까”라고 후회한다.


알아차림은
그 자동을 끊는 첫 틈이다.


틈이 생기면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지금 이 반응을 계속할지.
한 번 멈출지.
조금 다르게 말할지.


알아차림이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다.
설명할 수 있는 지혜도 아니다.


그저
‘지금’을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 나는 불안한가.
지금 나는 조급한가.
지금 나는 방어적인가.
지금 나는 내 편이 아닌가.


이 확인이 생기면
삶은 조금 덜 부서진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감정과 한 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 올라올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불안해.”
“나는 화가 났어.”


그 문장은 솔직하지만
너무 가깝다.


그때 이렇게 한 번만 바꿔본다.


지금, 불안이 있다.
지금, 분노가 있다.


이 문장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거리가 생기면
감정은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한다.


나는 감정을
‘겪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감정이
‘나’가 되지 않게 된다.


알아차림의 효과는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회복으로 나타난다.


말이 조금 늦어진다.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결론이 조금 느려진다.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
관계가 덜 상하고
자책이 덜 깊어지고
하루가 덜 소모된다.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삶은 더 단순해진다.


해야 할 일이 줄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덜 덧붙이기 때문이다.


불안에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고
분노에 판결을 덧붙이지 않고
비교에 자기혐오를 덧붙이지 않는다.


덧붙임이 줄어들면
삶은 가벼워진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순간
나는 자동으로 살지 않고
의식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알아차림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방향은
오늘도
다시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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