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수록 아프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의 형태로 자라기도 한다

by 데브라

집착은

대개 사랑처럼 시작된다.


놓치고 싶지 않고
잃고 싶지 않고
무너지지 않았으면 해서
더 단단히 잡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단단히 잡을수록
마음은 더 아프다.


사람을 붙잡을수록
사람은 멀어지고,
결과를 붙잡을수록
불안은 커지고,
내가 원하는 장면을 붙잡을수록
현재는 더 얇아진다.


집착은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상을 통해 안전해지고 싶은 마음일 때가 많다.


그래서 집착은
사랑의 얼굴을 하고 와도
결국 두려움으로 움직인다.


두려움은
상대를 소유하고 싶게 만들고
결과를 통제하고 싶게 만들고
미래를 확정하고 싶게 만든다.


확정할 수 없는 것을
확정하려 할수록
마음은 더 긴장한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방향은
“아무것도 갖지 마라”가 아니다.
“정도(情) 없이 살아라”도 아니다.


다만
붙잡음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보라고 한다.


나는 무엇을 잃을까 두려운가.

나는 무엇이 사라지면 무너질 것 같은가.


그 질문이 선명해지면
집착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집착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불안정함에서 자란다.


그래서 집착을 다루는 첫걸음은
대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붙잡는 손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가 요즘 유독 붙잡는 것 하나를 떠올려본다.


사람일 수도 있고
성과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평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붙잡음 앞에
짧은 문장을 하나 놓는다.


지금,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 두려움이 있다.


이 문장은
집착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집착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집착과 나 사이에
얇은 거리를 만든다.


거리가 생기면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더 꽉 잡을지.
조금 느슨하게 할지.
확인하려는 마음을 멈출지.
한 번 숨을 왕복시킬지.


놓는다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다.


놓는다는 건
통제하려는 마음을
조금 덜 믿는 일이다.


세상은 원래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사람도, 결과도, 시간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은 이상하게
조금 가벼워진다.


붙잡음이 줄어들면

사랑은 더 커진다.


사랑이 커진다는 건
상대를 더 소유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더 존중하는 것이다.


결과를 더 움켜쥐는 게 아니라
과정을 더 살피는 것이다.


집착은
나를 살리기 위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집착은
나를 더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대상을 놓기보다
붙잡는 손의 힘을
조금만 풀어본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그 사실이 먼저 서면
나는 붙잡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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