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잊는 일이 아니라, 반복해서 나를 찌르지 않는 일이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데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같은 모양으로 남는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을 의심한다.
“왜 나는 아직도 아프지.”
“왜 나는 이렇게 약하지.”
“왜 나는 잊지 못하지.”
하지만 상처는
의지로 잊히지 않는다.
상처는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반응으로 남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을 떠올릴 때
숨이 얕아지고
가슴이 조여오고
말이 막히는 것.
그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치유는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빨리 털어내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처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인정하라고 한다.
상처는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다루는 대상이다.
그리고 다룬다는 건
상처를 키우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상처가 깊어질 때는
대개 사건 때문이 아니라
반복 때문이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고
그 말을 다시 듣고
그 표정을 다시 보고
내가 나에게 다시 판결을 내릴 때.
“나는 바보였어.”
“나는 당해도 싸.”
“나는 결국 혼자야.”
그 판결들이
상처를 다시 벌린다.
그래서 치유의 첫걸음은
좋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판결을 멈추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가 가진 상처 하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상처 위에
짧은 문장을 하나 올려본다.
지금, 상처가 있다.
지금, 아픔이 있다.
이 문장은
상처를 미화하지 않는다.
상처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상처와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거리가 생기면
상처는 ‘나’가 되지 못한다.
나는 상처를 가진 사람이지
상처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사실을 알면
나는 상처를 품을 수 있다.
품는다는 건
참는 게 아니다.
억누르는 것도 아니다.
품는다는 건
상처가 올라올 때마다
나를 더 다치게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상처가 올라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지금 나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가.
대개 상처는
‘보호’를 필요로 한다.
안전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상처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상처가 있는 채로
살아지는 방향을 고른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간다.
그 왕복이
나를 지금으로 데려온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더 이상
같은 생각으로
나를 반복해서 찌르지 않겠다.
그 결심이
상처를 천천히
치유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