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듯 충만한 자리
허라는 단어는 ‘텅 비었다’는 뜻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수행자가 이 자리에 닿으면
전혀 다른 감각이 드러납니다.
허는 단순한 공백이 아닙니다.
말과 생각이 개입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바탕입니다.
어떤 감정도 붙지 않고,
어떤 형상도 고정되지 않으며,
어떤 의미조차 붙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오히려
세상 모든 가능성의 씨앗이 담긴
보이지 않는 봄의 흙처럼 느껴집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이라 했고,
‘모든 형상의 바탕’이라고 말했습니다.
도교에서는 무극이라 하여
형상 이전의 무한한 넓이라 했지요.
현대에서는 제로 포인트 필드라 하여
물질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에너지의 장으로 이해합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각은 하나입니다.
허는 “없음”이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모든 것”입니다.
당신 안에서
그 넓음이 스쳐 지나간 순간이 있나요?
그 감각을 가만히 떠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