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병원과 유럽의 병원
한국과 유럽은 그 거리만큼이나 각자의 문화가 다르다. 문화가 다른만큼 유럽의 병원시스템 역시 한국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처음 유럽의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알게 된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유럽의 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가 그 다름을 증명한다.
먼저 내가 근무하는 유럽의 병원에는 환자복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뭘 입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본 대부분의 환자들은 본인이 집에서 입던 옷을 입는다. 잠옷이나 편한 운동복을 입기도 하고, 종종 긴 나이트가운을 걸치기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환자의 가족들이 방문해 옷을 세탁해 가져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본인이 늘 입던 옷을 병원에서도 입는 건 장점도 단점도 있는데, 먼저 환자가 옷을 갈아입고 싶을 때에는 간호사에게 환자복을 요청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또, 조금이나마 환자에게 친숙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많은 환자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나 루돌프가 그려진 옷을 입기도 하고, 또 환자복이 아닌 집에서 늘 입던 파자마를 입고 잠에 들며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방문객도 환자도 모두 사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환자를 한눈에 알아보기가 어렵다. 또, 가끔 가족들이 멀리 살거나 사정이 있어 도움을 받기 어려운 경우 물론 병원에서 옷을 세탁해주기는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옷을 깨끗이 유지하기가 어렵다.
또, 한국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동 복도에 붙은 이달의 식단표를 골똘히 바라보는 것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한식 그리고 병원식의 특성상 쟁반에 밥, 국, 반찬이 나오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보통 당뇨식이, 저염식이등과 같은 특수식단 혹은 밥 대신 누룽지, 김치 많이, 밥 적게 등의 선택이 가능한 병원들도 있다.) 식단표가 짜여 나오면 모든 환자들이 같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의 병원에서는 양식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병원에 처음 입원하게 되면 병원식 메뉴판을 준다. 메뉴판에는 아침-점심-저녁-간식의 순서로 주문을 할 수 있는 음식들의 목록이 적혀있는데, 처음 메뉴판을 보고는 병원이 아닌 호텔 룸서비스가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배식하기 전에 식당 스태프가 일일이 모든 환자들의 방을 방문해 오늘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원하는 것을 언제든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유럽의 환자들은 아침으로는 시리얼이나 토스트 혹은 오트밀과 함께 커피나 홍차를 마시고, 점심과 저녁으로는 스테이크, 감자튀김, 샌드위치, 스파게티 등을 먹는다. 간식 역시 언제든 제한 없이 요청할 수 있는데, 쿠키나 과일 혹은 아이스크림을 주로 먹는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없는 건, 간병인이다. 간병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고 가정했을 때 가족 옆을 지키며 화장실에 가는 것을 돕기도 하고, 물을 떠다 주거나 필요한 것들을 매점에서 사다 주는 등 말 그대로 '간병'을 돕는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말한다. 물론 가족 중 한 명이 환자의 곁에서 모든 일들을 돌봐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장 혹은 어린 자녀들이 있어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인 사무소에 연락해 환자 곁에 상주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데,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 또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24시간을 환자 옆에서 먹고 자며 환자를 보살피기 때문에 장기로 입원을 하는 경우 병원비에 더해 간병비까지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에는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의 환자도 혼자서 감당해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럽 현지에서는 많은 경우 4명, 적게는 2명의 환자를 내가 혼자서 케어하기 때문에 환자의 사소한 부탁들까지도 간호사인 내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 또, 간호사뿐 아니라 HCA(Health Care Assistant, 병동보조원) 역시 환자를 보살피기 때문에 환자가 샤워를 하는 것을 돕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옆을 부축하며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환자의 옆에서 늘 상주하는 간병인이 필요하지 않고, 병원 인력만으로도 환자를 충분히 도울 수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세 가지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덜 좋아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반대로 유럽에서는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을 비교해 기록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