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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Aug 21. 2024

26. 나는 환자가 되기엔 너무 젊어

Too young to go throgh this

병동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새로운 환자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환자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해 인수인계를 받고, 환자를 만나러 가려던 중 간호사 호출벨이 울렸다. 대부분의 경우 특별한 급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호출벨에 최대한 빨리 응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에 하나라도 환자가 넘어졌다거나 혹은 응급한 상황이 갑자기 발생한 경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출벨이 울린 환자의 방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을 열고 "안녕, 좋은 아침. 무슨 일 있어?"라고 묻자 환자는 어정쩡하게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채로 "좋은 아침이야,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을까? 정말 미안해"라고 이야기했었다. 환자는 40대 후반의 여자 환자였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약물들의 작용으로 인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진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언제든 넘어지거나 혹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려 어딘가에 부딪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보통 병원에서는 이러한 환자들은 "낙상 고위험" 환자로 분류하여 특별히 케어하는데, 낙상이란 쉽게 말해 "넘어지는 사고"이다. 아무리 사지가 멀쩡한 젊은 환자더라도 병원에서는 수액을 맞는 중이라 수액 줄이 환자에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도중에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전기 코드가 바닥에 있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낙상이 발생하기 쉽다. 하물며 약물로 인해 졸음이 쏟아지거나, 환자의 나이가 고령이거나 혹은 목발, 지팡이를 사용하는 경우는 더더욱 신경 써 케어를 하는 것이다.


다시 환자 이야기로 돌아가서, 환자는 거동이 자유롭지 않아 간호사들이 괜찮으니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다면 언제든 호출벨을 눌러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고, 침대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화장실까지 걷지 않아도 되도록 이동식 화장실 역시 설치해 둔 상태였다. 환자는 매번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무래도 민망했는지 늘 미안하다는 소리를 연신 해댔다. 환자를 부축하여 간이 화장실로 함께 이동하며 환자에게 "몇 번이고 불러도 좋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뻐"라고 이야기했고 환자는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다. 그렇게 환자를 이동식 변기에 앉히기 전 바지와 속옷을 내려주고, 손에 닿는 거리에 휴지와 호출벨을 준비해 준 후 잠깐 밖에서 기다릴 테니 용변을 마친 후 다시 호출벨을 누르도록 했다. 환자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용변을 마친 후 다시 환자를 도와 환자를 부축해 침대로 이동했다. 환자에게 다시 한번 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호출벨을 눌러달라고 이야기 한 뒤 방문을 나섰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환자는 몇 차례 더 호출벨을 눌렀고, 즉시 환자의 방으로 찾아가 화장실 이용을 도왔다. 오늘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는 남자 간호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같은 여자인 내가 환자에게 조금 더 편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해 동료의 도움을 만류하고 매번 환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지나 퇴근 무렵이 되었고, 환자의 호출벨 소리를 듣고 또다시 환자의 방으로 향했다. 환자는 내게 "오늘은 바쁜 하루였어? 오늘은 나 때문에 많이 바빴지? 미안해"라고 이야기했고, 다시 한번 "아니, 하나도 안 바빠서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였어"라고 농담을 했다. 환자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환자가 되기에는 너무 젊어, 아직 40대인걸"이라고 말했고, 나는 한 번 더 "어? 나처럼 18살 아니었어?"라고 농담을 하며 환자를 도운 후 잘 자라는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그렇게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길 버스에 올라 하루를 돌이켜보는데, 자꾸만 환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환자가 되기엔 너무 젊다는 말은 사실 어느 나잇대의 환자가 하더라도 슬프게 들린다. 병원에서 근무하며 본 수많은 60대, 70대, 8-90대 환자분들 역시 나잇대가 무색할 만큼 건강하고 활동적인 분들을 떠올리면 환자인 나 자신을 환자로 받아들이기에 쉬운 나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오늘 하루종일 도운 환자가 참 용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능력은 명확한 상태이지만 오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화장실 사용에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번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환자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쥐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예전 어느 배우의 솔직한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 22살도, 37살도 그리고 64살도 다 처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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