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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Sep 04. 2024

28. 공포의 주삿바늘

통증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유럽 현지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것들이 있다. (물론 아주 주관적인 경험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당뇨, 고혈압 환자가 수도 없이 많았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혈당검사를 하고 또 소금이 적게 들어간 저염식단을 식당에 요청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하루 일과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유럽 현지에서는 당뇨 혹은 고혈압이 있는 환자가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수라고 느껴진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에서는 흔치 않지만 유럽 현지에서는 흔한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경험한 것은 바로 "Needle phobia"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주사 공포증"이다. 한국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환자들을 보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명도 주사공포증이 있다는 말을 내게 해준 환자 혹은 보호자는 없었다. 물론 주사제가 필요해 내가 주사를 놓을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 혹은 긴장을 하며 심호흡을 두어 번 들이쉬고 또 내쉬는 환자들은 종종 본 적이 있지만, 맹세코 단 한 명의 환자도 본인이 주사 공포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유럽 현지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제법 많은 수의 환자들이 본인은 주사 공포증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체격이 작거나 크거나와 관계없이 꽤나 많은 환자들이 강력하게 어필을 하고는 한다. 사실 처음으로 어떤 환자가 주사 공포증이 있다는 말을 인계받았을 때에 문득 "주사공포증이 있으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관련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시니어 널스에게 주사 공포증이 있는 환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간호가 무엇이 있는 지를 물었다. 그러자 시니어 널스는, "보통 마취크림을 사용하고는 해, 그래도 진정이 안되면 담당의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라고 이야기해 주며 마취크림의 사용법 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취크림은 주사를 놓기 전에 미리 주사를 놓을 부위에 발라두고, 감각이 둔해지면 그때 그 부위를 잘 닦은 후에 주사를 놓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감각이 무뎌져 통증도 덜 느낄 수 있을 테니 주사를 맞기가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근무를 하는 동안 사용하는 마취크림은 보통 처치를 위해 몸속으로 관을 연결해 몇 날 며칠을 달고 지내야 하는 경우, 혹은 보통의 혈관주사보다 훨씬 더 두꺼운 특수한 바늘을 사용해 특별한 처치를 하는 경우 등에 사용했었지 단순히 주삿바늘 때문에 마취크림을 사용하는 것은 자주 보지 못한지라 생소했다.


그러다 문득, 한 환자가 떠올랐다. 그 환자 40대 남성이었는데, 폐에 문제가 생겨 폐 속에 찬 물을 빼내야 하는 환자였다. 이런 경우에 폐로 관을 집어넣어 물을 빼내는 시술을 받는데, 제법 큰 바늘이 폐까지 들어가므로 마취크림을 사용한 후 관을 삽입한다. 그런데 이 환자는 시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마취크림으로는 통증이 조절이 될 것 같지 않으니 미리 진통제를 써달라고 했다. 담당의와 상의 후 먹는 알약으로 된 진통제를 주려고 하자 주사제가 나을 것 같다고 하여 담당의와 다시 한번 상의 후 주사제를 준비해 가져갔더니, 이번에는 주사를 맞는 것이 또 아플 것 같으니 알약으로 된 진통제를 먹고 나서 주사 진통제를 맞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알약 진통제, 주사 진통제, 마취크림을 모두 사용하고도 처치를 받은 환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 환자 이외에는 특별히 다른 케이스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화적인 차이가 환자가 느끼는 통증에 따라서도 어떻게 인식하고 또 대처하는지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주사는 아픈 것이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 환자들은 대체로 통증이나 주사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어차피 맞아야 하는 주사라면 빨리 맞고 해치워버리고자 생각한다면, 유럽 현지의 환자들은 통증에 대해 대체로 더 민감하고, 본인이 어떻게 느끼는 지를 자주 어필하는 양상으로 대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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