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묘한 차이
유럽 현지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매일같이 만나는 동료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무엇보다도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한국인 환자와 유럽인 환자의 차이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먼저, 한국인 환자들은 아무래도 정이 많아서 그런지 병문안 손님들이 가져다준 간식을 챙겨주시는 경우가 많다. 특히 5-60대의 여성 환자분들은 내게 매번 아침은 먹고 출근을 했는지, 잠은 잘 잤는 지를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은 내가 환자분들의 딸이 되어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만큼 따뜻하게 물어봐주신다. 또, 요구르트나 커피 등 간식거리를 주머니에 종종 넣어주시는데 한사코 거절을 하더라도 끝끝내 이동식 카트에 덤과 같은 잔소리와 함께 올려주신다. "아침도 안 챙겨 먹고 일하면 몸상하지. 두유라도 챙겨 먹고 일을 해야 해. 아직 어려서 모른다니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거절하기가 민망해 감사인사를 꾸벅 드리고 간식을 받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면 유럽인 환자들은 음식이나 간식을 나눠주는 경우는 흔치 않고, 보통 퇴원을 하는 경우 초콜릿과 함께 감사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병동 전체에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인 환자들이 한국인 환자들에 비해 쌀쌀맞거나 한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는 가족사진이나 여행지에서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가족들이 방문객으로 올 경우 담당 간호사에게 소개해주기도 한다. 또 한 가지 특징으로는, '스몰톡'을 즐기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TV에서 본 새로운 요리 레시피라던지, 최근의 뉴스 혹은 날씨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유럽에서의 환자-간호사의 관계는 조금 더 유연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자연스레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덕분에 자주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많다.
그리고 두 번째로 느낀 점 역시 음식과 관련이 있는데, 내가 본 제법 많은 수의 한국인 환자들은 병원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입원생활 초반 며칠만 병원밥을 챙겨 먹고는 가족이나 친지가 방문할 경우를 통해 개인반찬을 챙겨 오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공용냉장고는 집에서 가져온 김치, 장아찌 등의 반찬이나 간식들로 늘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았었다.
반면, 유럽현지에서는 밥, 국, 반찬으로 구성된 한식에 비해 큰 접시에 플레이팅 된 양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매번 메뉴를 마음대로 골라 주문할 수 있다. 보통 아침식사 후 점심, 저녁메뉴를 미리 주문하는데 원한다면 점심 혹은 저녁식사가 나온 이후에도 다른 음식을 주문하거나 과자나 과일 등의 간식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음식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많이 보지 못했다. (지난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해 둔 적이 있다. 27. 유럽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 가지: https://brunch.co.kr/@decemberineu/34)
또 하나 한국인 환자를 유럽인 환자와 비교해 볼 때의 차이점은 한국인 환자들은 불편함이나 고통을 대체로 잘 참아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환자 이외에 누구도 함께 느껴줄 수 없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의료진은 환자가 느끼는 통증을 수치화하여 0~10까지의 점수를 매기도록 한다. 그렇게라도 간접적으로 환자의 통증을 짐작할 수 있고, 또 통증의 강도가 어떻게 변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내가 지금껏 본 한국인 환자들은 대개 2점에서 7점으로 통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럽인 환자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에는 4점에서 8점 사이의 점수가 대체로 많았다. 물론 환자의 나이, 질병 및 성별 등에 따라서 통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데 문화적인 요인 역시 그중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