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미치 Oct 10. 2017

음악은 유럽을 흔들고, 유럽은 나를 흔들고 #11

밴드 스위머스 유럽 투어 일지 #11. 레스터

리버풀에서 출발하면 우리는 런던, 레스터, 런던, 베를린, 런던을 하루 단위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행군의 시작이었다. 그에 앞서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먹는 첫 한식

팀장님과 멤버들은 한국에서 한국식 찬거리들을 챙겨 왔다. 나는 외국에 다닐 때 한식을 딱히 그리워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짐이 많기도 해서 음식까지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다 짐이 많으면 많았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다른 사람들이 고추장, 카레가루, 인스턴트 찌개, 햇반과 컵라면 같은 것을 챙겨 온 것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깔깔 웃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날이 갈수록 눈 앞에 재료가 있는데도 먹지 못하는 한식 때문에 괴로워했다. 런던에서 묵던 숙소가 부엌이 없는 호텔이라 요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리버풀에 가면 반드시 한식을 먹겠노라고 벼르고 별렀다.


마침내 부엌이 있는 리버풀에 온 첫 날, 선웅이가 나서서 한식 맛보기로 인스턴트 된장찌개를 끓여주었다. 메인 요리는 이틀 뒤에 먹을 카레였지만 인스턴트 한식만으로도 감동한 사람들의 첫 영상. 하지만 평강이는 실컷 맛있다고 예찬해놓곤 "물이 제일 맛있네요"라는 망언을 남겼다.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아침

리버풀 사운드 시티 공연이 끝난 다음날 우리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국에서 그렇게까지 심한 폭우가 쏟아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고 했다. 짐도 많고 갈 길도 먼 우리는 일단은 비가 좀 잦아들 때까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아침식사로 모두가 고대했던 카레를 위해 팀장님이 실력 발휘를 하겠다고 나섰다. 나와 민지는 요리에 앞서 추가 재료를 사러 비를 뚫고 길을 나섰다. 하필 은행휴업일이라 근처에 문을 연 상점도 거의 없을 거란 말을 들었지만 다행히 마트는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당근, 감자, 쌀, 콜라 등과 약간의 과일을 사서 다시 비를 뚫고 돌아왔다.



요리는 대성공이었다. 팀장님은 선웅이가 가져온 고추장까지 활용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럽식 고추장 수프 같은 것을 만들어냈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무척 맛있었다. 우리는 대낮부터 내가 간밤에 밤 산책을 나가 사 온 맥주까지 따 마시며 여유롭고 느긋한 식사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웃고 떠들며 식사를 마치곤 각자 방에 가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민지와 침대에 나란히 퍼져선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아무 말이나 드문드문 하는, 학교 다닐 때 매일 같이 함께 시간을 보내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런 시간을 정말 오랜만에 보냈다. 그리운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잠깐 동안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내가 런던에 온 뒤로 우리가 자주 만나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만나던 것보다 더 자주 만났으니까. 오랜만에 만나선 쏟아내듯 조금이라도 더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꽉 채워 시간을 쓰던 급박함 없이, 이제 생활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시간.








고난의 시작

첫 번째 시련은 우리가 런던행 버스 시간을 잘못 알면서 시작되었다. 일정표가 모두에게 공유되어 있긴 했지만 버스 예매도 내가 했고 움직이는 스케줄은 나와 팀장님이 되는대로 챙기고 있었다. 문제는 4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무슨 일인지 내가 4시 30분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누구도 그것을 재차 확인할 생각하지 못한 채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 말만 믿고, 잘못된 시간에 맞춰서.


버스의 진짜 출발 시각을 약 30분쯤 남겨놓고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한 나는 일정표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실수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시간 안에 우리가 우버 택시를 부르고, 짐을 싣고,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랴부랴 런던행 기차를 알아보고 표를 다시 끊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줄줄이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민지는 리버풀에 하루 더 머물 예정이어서 우리는 숙소 열쇠 등 모든 것을 민지에게 맡기고 황급히 작별했다.


이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멤버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너무 여유롭고 좋은 반나절을 보내서 더 그랬던 것도 같다. 별 일도 없이 버스비를 날렸고, 정말 바보 같은 실수 때문이었다. 나는 나대로 자책했고, 팀장님은 팀장님대로 자책하셨다. 내가 챙겼어야 했는데, 다시 확인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택시 안에서 나는 여행하다 보면 꼭 교통편을 한 번쯤은 놓치는 일이 생기게 된다며, 예전에 공항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행기를 놓친 얘기와 파업 때문에 기차가 취소되어 노숙한 얘기를 떠들었다. 아무튼 해결이 됐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멤버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에는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잘못해놓고 내가 무마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할 것 같아서 나도 금방 그만둬 버렸다. 기운 빠지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런던 숙소는 시내에 잡지 말자

애초에 더 빠른 기차 대신 버스를 예매한 것은 버스가 더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인데 결국 버스비는 허공에 띄워 보내고 맨 처음에 고려했던 기차를 타게 된 셈이었다. 기차가 더 빨랐기 때문에 도착 예정 시각은 오히려 약간 더 당겨졌다. 밤 10시를 전후하여 우리는 런던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소호 한복판에 있는 호스텔에 묵을 예정이었다.


장거리 이동 끝에 새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닭장처럼 빽빽한 방들, 비좁은 침대, 탁한 공기, 바닥에는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호스텔이었다. 인터넷에서 후기를 잘 보고 선택한 숙소였는데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냐면 사진 찍을 생각조차 못 했다.


나는 그 호스텔 예약을 2박 3일로 안 하고 1박 2일로 해놓는 실수를 또 저질러 놓은 상태였다. 하크니 숙소를 예약할 때도 하루 모자라게 예약했다가 다행히 연장할 수 있어서 살았는데, 같은 실수를 여기저기에 해 놓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1 day 2 nights의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실수는 추후에 얼스 코트 인근의 다른 숙소 예약에서 또 드러난다.


아무튼 이것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우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상황이 되었다. 숙소가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정말 하루 더 묵을 것인지에 대해 대책회의를 했다. 레스터에서 돌아오면 어차피 밤 11시가 훌쩍 넘는 시각이었다. 다음날 베를린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새벽 5시에 길을 나서야 했다.


결국 우리는 개트윅 공항 노숙을 결정했다. 하루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나는 그날 밤 좁고 찜찜한 침대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채 팔짱을 끼고 미라처럼 누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천장에서 개미가 떨어질까 봐 걱정됐다.


이것이 우리의 강행군 기간에 닥친 첫 번째 시련이었다. 버스 놓치고 충격적인 숙소에서 머물고 공항에서 노숙하게 된 것. 이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큰 사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다. 아, 물론 중간 중간 좋은 일이 없지는 않았다. 




레스터 행 To Leicester

버스를 한 번 놓쳐본 우리는 이런 일을 다시는 만들지 않기 위해 여유시간을 아주 길게 길게 잡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레스터로 가는 버스는 오후 1시에 출발했는데, 우리는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오전 11시쯤 도착해 인근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오전부터 맥주를 마셨다. 어차피 그 호스텔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불만은 전혀 없었다. 일찍 일어나 베를린까지 가져갈 짐들만 챙기고 나머지 큰 짐들은 그 숙소의 짐가방 창고(Luggage Room)에 맡겼다. 앞으로 3일 간 짐들이 무사히 있어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줄이고도 여전히 짐은 많았다.


전날 리버풀에서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리버풀 방향으로 절반 가량 길을 되돌아가려니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버스도 놓친 것, 호스텔을 포기하고 레스터로 바로 가는 것이 나았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 우리는 약간 기운이 빠진 채로 레스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공연장인 더 셰드(The Shed)를 만났다.




더 셰드 The Shed


더 셰드는 우리가 여태까지 보았던 어떤 공연장보다 깨끗했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모든 악기가 하우스에 갖춰져 있었고, 우리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리허설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니터가 그렇게 잘 되어 있는 공연장은 한국에서도 몇 개 보지 못했다. 놀랍게도 소리가 바닥에서부터 울려 나왔는데, 알고 보니 모니터 스피커를 무대 바닥 아래로 깔아 숨겨버린 것이었다. 클럽을 운영하는 엘리자베스는 처음에는 모니터를 천장에 매달려고 했지만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하던 차에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무대 공사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멋졌다. 공간에 대한 고민, 무대에 서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 들려지는 음악 소리에 대한 고민을 하는 클럽 주인이었다.


엘리자벳은 우리와 연락을 주고받던 최초의 순간부터 완벽한 호스트였다. 그는 우리의 음악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며 메일을 보내왔고, 우리 음악에 어울리는 팀들을 서포팅 액트로 세우기 위해 로컬 커뮤니티 등에 게시글을 올리며 함께 무대에 설 뮤지션들을 선별했다. 덕분에 나는 셰드에서 함께 공연했던 팀들의 음악을 이번 투어 어느 공연장에서 본 팀들보다 더 좋아할 수 있었다. 취향이 비슷한 팀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셰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이 이미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아시스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수시로 나오는 다른 클럽들과는 전혀 다른 풍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정말 여러 면에서 이 클럽과 운영진들에게 감동받았고 레스터의 로컬 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더 셰드는 스위머스를 헤드라이너로 세웠지만 우리가 기차 시간 때문에 마지막 순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흔쾌히 세 번째 팀으로 순서를 당겨주었다. 그런 배려까지 모든 것이 좋았고 고마웠다.



인터뷰 Swiimers | getintheshed | ep.II

매니저 중 한 명인 스캇은 더 셰드가 일부 공연팀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우리 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약 20분 동안 우리는 야외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셀프캠으로 이것저것 촬영을 해서 가져다 주기도 했다. 편집된 완성본이 우리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 셰드의 페이스북 계정에 떴다. 이상하게도 한국어로 말하는 부분에 한국어 자막이 달려있는데, 스캇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한 거라고 했다. 거의 다 틀렸고 귀엽다.



Swiimers | getintheshed | ep.II https://youtu.be/v-h49UK1tdE



팀장님이 인터뷰 일부를 동시에 촬영하셨는데, 스캇이 우리 팀을 위해 인터뷰를 준비하며 찾아온 한국말과 웨일스어 때문에 박장대소했던 장면들이 담겨있다.





공연 시작 Show Time


앞팀들의 음악이 다 서정적이고 아방가르드 해서 너무 좋았다. 특히 진조(Jinjo)의 멤버 둘은 무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작고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해서 재미있었다. 마지막 곡은 녹화를 해보았다. Holy shit, what is this, 로 시작하는 노래다.

 




스위머스 Swiimers

레스터에서 한 공연을 우리는 가장 사랑한다. 실수가 꽤 있었는데도 그렇다. 잘하기는 베를린에서 더 잘했지만 더 셰드에서의 공연은 정말 특별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무대와 관객 모두가 완벽했다. 관객들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우리도 관객들을 사랑했다. 연주하면서 관객과 교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항상 내가 느끼는 무대의 퀄리티와 객석에서 실제로 느끼는 퀄리티가 조금씩 달랐던 것 같은데, 이날만큼은 완전히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멤버 간 다툼이 있었는데도 모든 일을 잊고 행복해질 만큼, 그 행복을 함께 느끼고 있음을 멤버들과 서로 눈 마주치며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좋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댄 일렉트로와 스위머스

Playing Someone Else's Guitar

망상을 연주하다가 평강이의 기타 줄 하나가 끊어졌다. 망상과 테니스 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두 곡이 이어지는 셋 리스트였기 때문에 평강이는 줄 하나가 없는 채로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해야 했다. 하지만 줄이 끊어져 달랑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프로답게 잘 커버해냈다. 그래도 다음 곡들로 넘어가기 전에 수습을 해야 했다. 투어 중에 한 번은 기타 줄이 끊어지는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기타 줄을 여러 개 챙겨 왔지만 실제로 끊어지니 사실 무대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기타 줄을 가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안 그래도 우리는 런던행 기차가 걸려 있어서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앞에서 연주했던 팀들 중 누군가의 기타를 혹시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누군가가 흔쾌히 기타를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평강이는 로컬 팀의 기타로 남은 무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줄 끊어진 것은 사고였지만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이 되었던 것도 같다. 그날 우리는 다른 뮤지션들로부터 카포도 빌리고 기타도 빌리고. 빌린 기타는 귀여운 기타의 대명사인 댄 일렉트로였다.



평강이가 기타를 바꿔 드는 막간을 이용해 내가 한 말은, 내일 아침 일찍 베를린 행 비행기를 타야 해서 런던으로 바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너무 아쉽다. 레스터는 나를 매료시키는 도시이고 나중에 오게 되면 꼭 여기서 하루 이상 묵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진심이었다. 나는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노래들 Songs


장마, 그리고 Knight Bus. 이 노래는 더 셰드에서 연주한 것이 유일하다. 연습을 해가긴 했지만 편곡이 개운치 않다고 느껴 혹시라도 셋 리스트 곡이 모자라는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쟁여둔 예비 곡이었다. 연주를 할 때도 여전히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다. 연주 영상을 보면 그 느낌이 물씬 베어난다. 영국에 다시 가게 되면 레스터와 더 셰드는 우리가 꼭 다시 찾을 장소다. 더 셰드의 관객들은 이 미숙한 곡을 듣고도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우리가 어떤 기분으로 연주를 하고 있는지가 전달되었던 거라고 믿고 싶었다.


선웅이가 무대에서 관객들의 사진을 찍었다:A Drummer Point of View




레스터를 떠나며 Bye Bye Leicester, See You 

연주가 끝난 뒤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빠뜨리는 것 없이 신속하게 짐을 싸서 빠르게 기차역까지 걸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정되었던 것보다 약간 늦게 끝나서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시켰다. 우리 CD를 사서 싸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이어졌고, 그중 한 젊은이들은 내게 낯선 음반을 건네주며 자신들은 이 지역 출신의 밴드라며 자기들 음악도 들어봐 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로부터 인정과 애정을 얻는 것은 특별히 기쁜 일이다. 나는 팀장님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답례하다가 멤버들이 대신 다 싸준 짐을 챙겨 더 셰드를 나섰다. 엘리자벳과 스캇에게 꼭 다시 만나자는 얘기를 남기며 작별했다.


이 기차가 막차였기 때문에 놓치면 끝장이었다. 나는 팀장님께 우리 리허설이 끝나면 기차역까지 가는 길과 티켓 발권 절차, 플랫폼 등을 직접 답사해주시길 부탁해놨었다. 공연장에서 도보로 10분 정도라고 듣긴 했지만 초행길을 우왕좌왕 헤매다가 대참사를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우리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경로를 마스터하고 티켓까지 발권해 돌아오셨다. 덕분에 우리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아무런 문제 없이 제시간에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차는 한산했다.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역에 도착해 개트윅 공항으로 가는 새벽 기차를 기다리며. 우리 몸은 지쳐있었지만 영혼은 지쳐있지 않았다.



이전 11화 음악은 유럽을 흔들고, 유럽은 나를 흔들고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