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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치 Oct 06. 2017

음악은 유럽을 흔들고, 유럽은 나를 흔들고 #10

밴드 스위머스 유럽 투어 일지 #10. 리버풀 사운드 시티 2017

드디어 사운드 시티의 날이 도래했다. 리버풀의 항구에서 펼쳐지는 락 페스티벌 사운드 시티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특별한 해에 참가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우리가 이름만 들어왔던 뮤지션들과 같은 축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우리와 비슷한 다른 나라의 인디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멋진 한국 팀들과 함께 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좋았다. 스위머스의 첫 해외 페스티벌 무대였다.



사운드 시티 2017 Sound City 2017


우리는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우버를 불러 택시로 공연장까지 갔다. 너무 편해서 울 뻔 했다. 이날 이후로 우리는 기회만 생기면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가격이 결코 싼 것은 아니었지만 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자꾸 한 뼘 씩 과소비를 하게 되었다.


비욘세와 함께 하는 사운드 시티 가는 길.




공연은 3시 20분에 시작이었고 리허설이나 셋업 시간은 따로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1시 30분 전후. 행사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다만 아직은 관객이 무척 적었다.


바로 며칠 전에 리버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체스터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 공연장 테러가 발생한 상태였다. 그러니 공연을 보러 모이는 장소에 전체적인 관객수가 적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맨체스터 테러가 터졌을 때 우리는 런던에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괜찮냐는 연락을 잔뜩 받고 우리도 걱정을 했다. 맨체스터 테러로 인해 리버풀 행사가 취소되는 건 아닌지, 관객들이 올지, 우리도 위험한 건 아닌지. 어떻게 공연장을 테러할 수 있을까. 음악을 들으러 가는 무해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지만 세상엔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이 늘 있으니까.



사운드 시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도 불어났다. 우리는 장내를 한바퀴 둘러보고 파이럿 스테이지(Pirate Stage)에서 먼저 시작되는 모노톤즈의 공연을 보았다. 이 팀을 워낙 좋아하긴 했지만 이 날은 특별히 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낮 1시 45분, 무대 아래에 거의 아무도 없는 휑한 상태로 모노톤즈는 공연을 시작했다. 몇 곡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노톤즈의 퍼포먼스에 이끌리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날 때쯤엔 무대 앞이 가득 차있었다. 전적으로 모노톤즈가 해낸 일이었다. 음악의 힘이었다.   


사운드 시티에서는 음악 공연 말고도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로서는 뭔지 알 수 없는 특이한 예술 행위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이른 오후까지 날이 흐렸다.

 



메인 이벤트 Main Event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사진을 한 장 찍자는 팀장님의 말에 우리는 포즈를 취해보았다. 이 때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우리 밴드가 결성되고 나서 오르는 가장 큰 무대. 완벽하게 해내든 엉망이 되든 스위머스의 이야기에서 이 순간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없는 밴드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많은 이야기의 처음이 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공연은 정신없이 진행됐다. 속상하지만 유럽에서 했던 여덟 번의 공연들에서 우리의 퍼포먼스 순위를 매긴다면 나는 카페 1001, 자카란다, 그리고 사운드 시티에서의 공연을 하위 3개 공연들로 꼽겠다. 물론 사운드 시티에서의 공연은 카페 1001 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후 3시 2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무대에 오르면서 목이 안 풀리고 정신도 얼떨떨하게 덜 깬 상태였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무대 진행 상황에 사운드 체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모니터 레벨과 기타 톤을 잡을 시간도 부족했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어떤지는 순전히 엔지니어 재량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운동 선수들이 연습 때는 수도 없이 신기록을 경신한다고 들었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는 연습 때 냈던 기록의 평균치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셋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경고를 받고 오긴 했지만 막상 몸소 겪으려니 약간 황망한 기분이 들어 마주보고 헛웃음을 짓다가 무대 감독으로 추정되는 분의 "Let's go, let's go!" 하는 신호에 얼렁뚱땅 무대를 시작했다. 그래도 수없이 연습한 무대였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었다.  


제일 아래에 있는 내 사진을 제외하곤 사진작가 마크 멜란더(Marc Melander) 씨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들이다. 마지막 사진은 민지가 찍은 사진.



이 무대를 위해 몇 달을 몸과 마음 모두 고생하며 달려왔다. 무대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지만. 우리 음악을 누가 알겠나 싶은 의구심과 관객 한 명 앞에서 연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올라섰는데 무대 앞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틈에 낯익은 한국인 뮤지션들도 있었다. 대낮의 밝은 객석을 보며 야외에서 공연하는 것은 작년 그린 플러그드 페스티벌 이후 처음이었다. 두번째여도 적응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좋았다.


날이 흐리고 쌀쌀해서 걱정했는데 우리가 무대에 올라설 즈음 해가 났다. 그리고 지척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어쩐지 나른하고 초현실적인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낯설고 고마운 관객들이 있었고 나는 이 무대가 우리에게 조금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늘 조금씩 과분한 무대를 완전히 채우기 위해 분투해가며 그 다음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커버곡 없이, 한국어 가사만 빽빽한 우리 노래들로 셋리스트를 꽉 채워서 공연하고 내려왔다. 노래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인데 뜻이 통하지 않는 노래로도 괜찮을까 오래 고민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음악은 사실 어떤 문자나 말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찾아온 것이니까.

망상 (Shalla)




백스테이지 Back Stage


공연이 끝난 뒤 내려왔을 때 우리의 백스테이지로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스탭을 통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전해주며, 괜찮다면 직접 만나 사진을 더 찍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가 마크였다. 그는 리버풀에서 밴드들 뿐 아니라 다양한 사진들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였다.


그가 내게 했던 말들 중에 나를 정말 가슴뛰게 만드는 말들이 있었다. 우리 음악에서 어떤 파장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보컬이기도 한 호프 산도발(Hope Sandoval)이 있는 밴드 매지 스타(Mazzy Star)가 떠올랐다고도 했고, 우리가 한국에 분명히 구름처럼 많은 팬들을 갖고 있을텐데 이곳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그 말에 깔깔 웃었다. 한국에도 구름처럼 많은 팬은 없다.


우리는 그가 찍어준 많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중 하나에 서명을 해서 그에게 돌려주었고, 팀장님은 그와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곤 나중에 그로부터 우리의 고화질 공연 사진들을 받고 기뻐했다.

 

또 한 명은 런던에서 왔다고 한, 10대~20대 초반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한 백인 청년이었다. 그는 나에게 속사포처럼 "너희의 무대를 보기 위해 오늘 왔다, 유튜브로 너희 음악을 백번도 넘게 들었다,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서 백스테이지에 찾아왔다,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수줍고 빠르게 쏟아내곤 "그럼 안녕," 이란 말과 함께 펜스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얼떨떨하기도 하고, 그가 귀엽기도 하고, 놀랍기도, 고맙고 좋기도 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이후 페스티벌 장내를 돌아다니며 한국인 유학생들을 비롯해 상당수의 사람들로부터 공연을 잘 보았다는 인사를 받았지만 이렇게 두 사람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 음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음악을 조금 더 열심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공연후기 Reviews

한국에 돌아오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 우리 공연에 대한 후기 몇 개를 발견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평을 얻었다. 좀 독특한 색깔의 음악을 한다는 것이 좋은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다른 한국팀들도 다양한 찬사를 받았다.



Liverpool Sound City 2017 review, pictures, what we learnt plus 17 best acts of this year’s festival ( http://www.getintothis.co.uk/2017/05/liverpool-sound-city-2017-review-pictures-learnt-plus-17-best-acts-years-festival/ )


Liverpool Sound City 2017 – Highlights ( http://www.thevpme.com/2017/06/07/liverpool-sound-city-2017-highlights/ )



Photo Time!

공연이 끝난 직후에 이 무대를 무사히 끝냈다는 기분에 우리가 얼마나 흥분해 있었는지 그 때 앞두고 있던 공연 홍보를 위해 찍은 영상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빅 베이비 드라이버 트리오, 신해경 씨와 함께 하는 <오늘은 여기가 홍대> 공연을 위한 홍보용 영상으로 해당 공연 주최측 페이지를 통해 이미 발표된 것이다. 무편집본을 공개한다.




모노톤즈 멤버 두 분과 찍힌 이 사진에서 제대로 잘 나온 사람은 차차 밖에 없지만 차차가 사랑이라 이 사진을 사랑한다.




우리 공연 시간에 맞춰 리버풀에 도착한 민지는 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씽씽의 무대를 보곤 한눈에 반해선 좀처럼 하지 않는,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연극과 뮤지컬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이런 멋진 드랙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한 번, 그리고 나 없이 민지 혼자서 한 번 팬심 가득한 표정으로 씽씽 멤버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씽씽의 연주파트 멤버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 이렇게 설 때 가운데에 선 승태 씨가 본인이 가운데에 서면 욕하는 모양 된다고 우려를 표명하다가 그대로 섰다. 미인들.


우리 공연이 시작하기 조금 앞서 맨체스터 지역에서 K-pop Korner 라는 이름의 라디오 쇼를 운영하는 아담 라일리(Adam Riley)를 만났다. 아담은 우리가 출국하기 전에 원격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공연장을 서성이는 나를 그가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했다. 아담은 친화력이 굉장해서 거의 모든 한국팀들과 금새 친해진 것 같았다.




그냥 가긴 아쉽다는 팀장님의 종용으로 몇몇 관객들과 동료 뮤지션들로부터 치어링 클립을 얻었다. 응해주신 관객분들, 도와주신 다이얼라잇, 씽씽, 그리고 특히 번갈아가며 여러 번씩 출연해주신 모노톤즈 멤버분들께 감사한다.



The Festival

무대를 끝내고 나서 긴장이 풀린 뒤부터 광란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민지는 락페에 오니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서서히 미쳐가는 것이 느껴진다고 그게 너무 웃기고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 그 안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사이사이에 점점 흐트러져 가는 셀카를 찍으며, 술을 들이부으며, 카번 스테이지의 한국 팀들의 공연들에 이어 아마존스(The Amazons), 칙칙칙(!!!, (Chk Chk Chk)), 크립스(The Cribs), 화이트 라이즈(White Lies), 그리고 쿡스(The Kooks)를 보았다. 내 몸이 상하면 투어도 망하는 거라며 자기 혼자 나를 관리하던 장선웅이 이 날은 실컷 마시라며 허락 아닌 허락을 했다. 나는 신이 났다.





성추행, 혹은 성추행 미수 사건

이날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축제가 끝나갈 무렵에 굉장히 안 좋은 일을 겪었다. 이 이야기는 쓸까 말까 고민했다. 떠올리는 것도 괴롭고 쓰는 것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일을 겪은 그 당시보다 이 일을 복기하려는 그 이후가 더 고통스러웠다. 쓰려다 지우고를 몇 번 반복하다 쓴다. 더 많은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어떤 종류의 사명감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쿡스를 앞에서 조금만 보다 오겠다고 관객들 틈으로 혼자 섞여 들어갔을 때, 리버풀 출신으로 보이는 두 백인 남자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까 스위머스의 공연을 봤다며 공연을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팬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했고, 그 중 한 명이 포옹을 하자는 제스쳐를 취해서 잠깐 망설이다 응했다. 짧은 포옹 뒤에 그로부터 떨어지려는데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강제로 입을 맞추려고 시도했다. 나는 있는 힘껏 고개를 돌리고 난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온 몸으로 저항했지만 그 남자의 팔 힘이 너무 세어서 빠져나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도 앞쪽 무대의 음악소리 때문에 묻혔고 다른 한 남자가 웃으며 버티고 서선 다른 사람들로의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공포를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몸이 떨린다.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스쳐갔다. 이대로 이 더러운 인간의 입술에 닿는 건가? 이게 성폭력인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한복판에서? 이것도 인종차별인가? 내가 동양인 여자라 만만해보인건가? 아마도 전부 다겠지.


그때 마치 구원처럼 민지가 나타났다. 그리곤 양 팔로 그 개자식과 나 사이를 갈라서 나를 빠져나오게 하곤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에게 큰 소리로 왜 이렇게 안 오고 있었어? 하곤 나를 챙겨 그 자리를 벗어났다. 거기서 그 새끼들에게 화를 내거나 항의를 하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일 같았다. 주변에 관객은 많았지만 음악 소리가 너무나 컸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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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마치 관성이라도 작용한 것처럼 민지를 만난 뒤 그 일을 빠르게 잊어버렸다. 나는 큰 상해를 입지 않은 채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고 친구와 함께 큰 소리로 개같은 인간들을 욕하면서 걸어가려니까 모든 것이 괜찮은 것 같았다. 그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그 당시의 공포와 지금 다시 느끼는 공포의 수위가 너무 높다. 마치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시간이 지나고 찾아온 괴로움이 너무 컸다. 미수에 그친 이 일을 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


팬이라며 접근한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수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내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신이 나지도 않은 채 차갑고 또렷한 맨정신이었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포옹부터 거절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아무일도 없었을까? 아니, 정말 단호하게 포옹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쿡스를 보러 가지 말았어야 했나? 혼자 가지 말았어야 했나?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 일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 같고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배워서, 이성으로 알지만 체화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한국에 있든 유럽에 있든 여자로 존재하는 일은 너무 불편하고 위험하고 고되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성추행의 원인과 책임 소재는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 내가 술을 마셨든, 일정선의 접촉에 응했든, 그 일이 있은 직후에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든, 집에 가서 울었든, 잊어버렸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피해자의 상태나 대응 방식이 일어난 일의 책임 소재가 가해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깎아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없고 작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모든 이야기를 적는다. 나 스스로에게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해.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지금조차 모든 것이 나의 변명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굳이 굳이 눌러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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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길로 짐을 챙겨서 현장을 빠져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민지가 나를 쓰레기들의 손아귀에서 구한 거라고, 우리는 무사히 탈출했다고 기뻐하며 다시 기분을 내곤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며 뛰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그 흉터가 그 날로부터 넉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무릎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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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즐거운 날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겪은 일 때문에 이 날을 트라우마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너무 무겁게 이 날의 기억을 끝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넘어졌다는 소식에 폭소하던 장선웅의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담긴 영상을 첨부한다.


나는 돌다가 넘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고 창피해서 벌떡 일어나 민지와 함께 미친듯이 웃으며 그 자갈밭을 황급히 벗어났는데, 나가는 길에 굿즈 매대를 구경하러 갔다가 문득 옷 주머니에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급히 넘어진 자리로 돌아가 보았더니 내가 넘어진 자국이 난 자리에 지갑이 아주 얌전하고 고스란하게 남아있었다.


지갑을 찾은 나는 오늘 민지가 옆에 있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고 My lucky charm! 을 외쳤다. 그리고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선웅이를 만나 무용담을 전한 것이다. 왜 넘어지냐고 욕이나 얻어먹었지.


그리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팀장님과 평강이는 피곤하다고 훨씬 일찍 돌아가 쉬고 있는 상태였다. 들어가서 평강이도 함께 맥주 한 캔씩 더 마시고 난 뒤 사람들은 잠에 들었다. 나는 잠깐 밖에 나가 음악을 들으며 고요한 거리를 산책하고 돌아왔다. 온갖 일을 다 겪은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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