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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치 Jul 10. 2017

음악은 유럽을 흔들고, 유럽은 나를 흔들고 #3

밴드 스위머스 유럽 투어 일지 #3. 버스킹 첫날


뉴캐슬과 텔레그래프

스위머스의 영국 첫 공연 장소는 5월 20일 뉴캐슬로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 밴드 57(오칠)과 함께 할 공연이었다. 뉴캐슬은 런던에서 한참 북쪽으로 올라가야 있는 지역이다. 이동하는 데에만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다. 그래서 우리는 19일에 런던을 출발해서 21일에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공연이 예정되었던 뉴캐슬의 클럽 텔레그래프(The Telegraph)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공연이 취소된 것이다.


락의 본고장이라고들 하는 영국에서 조차도 영세한 라이브 클럽들은 숱하게 주인이 바뀌고, 망하고, 문을 닫는 것 같았다. 텔레그래프는 유서깊은 클럽이라고 들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어딜가나 가장 날것의 음악은 생존이 일이구나. 그 곳에서 공연할 기회를 놓친 것도 딱 그만큼 아쉬웠다. 이 사태를 전달받은 것은 출국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는 19일 전후로 들어왔던 다른 공연장의 제안들을 오래 전에 이미 몇 번 거절한 상태였다. 날짜를 코앞에 두고 이제와서 공연 일정을 새로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뉴캐슬까지의 먼 여정은 무산되었고 런던에서 있을 23일 공연이 첫공연으로 바뀌었다. 그 말은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인 19일부터 23일까지 여유시간 약 나흘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워밍업을 하기로 했다. 사흘은 버스킹에 쓰고, 틈틈이 런던에 적응하고, 하루는 풀셋으로 합주하고 쉬기로. 그렇게 되니 출국을 앞두고 뒤늦게 버스킹 연습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런던에 도착한 첫 날은 이사하고 연습하고 비맞고 내가 쓰러져 잠드는 결말을 맞았다. 그리고 두 번째 아침. 팀장님은 영국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제작자 컨퍼런스에 갔고 우리 셋은 마지막으로 버스킹 합을 맞춰 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 시내에 나가 첫 버스킹을 해보기로.




뒷뜰의 꼬마들

처음에는 실내에서 연습했지만 다른 투숙객들이 신경쓰여서 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예 밖으로 나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차피 숙소 바로 앞이 하크니 역이고 영국에서는 지하철역 내부나 인근에서 버스커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여기는 약간 외곽이라 역에서 버스킹하는 다른 아티스트들도 없었고, 비록 연습이 목적이긴 해도 우리가 또 그렇게 듣기 싫은 소음을 내는 것은 아니니 괜찮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기도 했고.


테니스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보사노바 버전.



이 날, 이 때, 조금 행복했다.

내가 잠든 사이 멤버들이 어느 정도 합을 맞춰놓은 덕에 편곡과 연주가 모두 전날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나는 실컷 자서 컨디션이 좋았고,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날이 맑았고, 좋은 기운을 주는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벽을 마주하고 연습하고 있었는데 우리 뒤쪽으로 사람들이 다가와 연주를 감상하고 박수를 보내며 우리에게 정식 공연 소식을 어떻게 들을 수 있냐고 물었고, 바로 옆 건물에 사는 아이들이 울타리 안에서 놀다가 음악소리에 이끌려 몰려나왔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이 중 '아모라'라는 꼬마가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지 무척 적극적이었다. 우리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서 계속 연주해줄 거냐고 물었다. 그리곤 "내가 관객 하고 싶어요!" 하고 외치며 자리를 비켜 다음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또 한 곡이 끝나자 아이들은 수줍음이 조금 가셨는지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악기들을 만져보고 싶어했다. 우리는 마이크와 기타와 드럼스틱을 넘겨주고 그 시간을 조금 즐겼다. 결국 한 꼬마가 휘두른 평강이의 기타 헤드에 선웅이의 스네어가 맞아 바닥에 떨어지는 결말을 맞았지만.




소호의 악기 거리

밖에서 제대로 연습을 해보니 아무래도 이런 편곡을 일렉기타로 버스킹하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우리는 출발하기 전부터 영국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한 대 사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핑계는 충분했다. 일단 내게는 어쿠스틱 기타를 한 대 새로 장만할 생각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짐을 부칠 때 발생할 비용 때문에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영국에서 싼 기타를 구매하고 실컷 쓰다 돌아올 때 버리고 오는 방법이 더 나아보였다. 이 두가지 근거-혹은 핑계-가 서로 상충한다는 것을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 한 상태로 일단 왔는데, 이날 기분 탓이었는지 핑계가 좋았는지, 우리는 결국 기타를 사기로 결정했다. 버리고 귀국하는 계획은 보류. 



내가 알아본 기타샵은 소호에 있었다. 시내 한복판이다보니 약간 큰 상점이 혼자 있는 건가 생각하고 갔는데, 놀랍게도 이 거리 전체가 악기점 거리였다. 마치 한국의 낙원상가 같은 곳이었다. 기타, 드럼, 색소폰, 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까지 온갖 악기들을 구비하고 파는 상점들이 줄줄이 있었다. 매장 수로 따지면 낙원상가가 훨씬 큰 규모의 밀집지였지만 매장들이 건물 하나에 몰려 있는 대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한 구역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광경도 진풍경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악기점이 붐비고 있었다. 런던이 워낙 버스커들의 도시이다보니 역시 어쿠스틱 기타가 가장 인기가 좋아 보였다.



나의 소유물이 될 기타였지만 구매는 전문가에게 맡기는게 나을 것 같아서 평강이를 시켜서 연주해보게 했다. 실컷 소리 들어보다가 결국 내가 고른 것은 제일 예쁜 기타였지만... 얇디 얇은 소프트 케이스에 새 기타를 담아서 둘러 매고, 좀 좋은 픽업을 한국에서보다 싼 값에 사고, 덤으로 피크를 잔뜩 얻어서 우리는 악기점을 나왔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 결국 예산을 상당히 넘어서는 악기를 사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팀장님과 만나기로 한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첫 버스킹


우리의 첫 버스킹 장소는 내셔널 갤러리 앞이었다. 트라팔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영국의 국립 미술관 바로 앞 정중앙. 이곳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고, 사람들이 멈춰서서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길거리 퍼포먼스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앞쪽에서는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왼쪽에는 스코틀랜드 민요같은 것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그 사이에는 공중부양하는 요다가, 오른쪽에는 마임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더 아래쪽은 행사를 위한 상설무대가 설치되고 있었고, 그 근처에는 영국의 유명한 음악들을 커버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리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 음악은 가늘게 뻗어나갔다. 그 곳에 있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국의 언어로, 누구도 들어본 적 없을 스위머스의 노래가.


(어느 위치에서 버스킹을 할지 고민하느라 한참 방황했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힐끗 보고 지나쳐갔고, 어떤 이들은 잠시 멈춰 귀기울이다가 동전을 던지고 갔고, 어떤 이들은 사진을 찍고 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의 한 시간짜리 셋리스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려다 멈춰선 그들은, 더러는 앉아서, 더러는 서서, 우리가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까지 그 곳에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명한명 붙잡고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장비를 정리하는 사이에 그들은 사라졌다.


음악은 그런 건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간을 잠깐 붙잡아 어떤 공간을 공유하게 하는. 그렇게 붙잡힌 시간은 노래가 끝날 때 함께 풀려나고, 마음이 모였던 공간은 흩어지고, 사람들은 다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떠난다. 그리고 노래는 언젠가 다시 또 시작된다.








새 기타와 친해지는 시간. 결국 버리고 오는 계획은 전면 철회되었고 이 기타는 비행기 같이 타고 한국으로 함께 왔다.



버스킹을 마치고 하크니로 돌아와 잠깐 쉬었다. 타지에서의 첫 연주이기도 했고, 스위머스의 짧은 역사상 첫 버스킹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자 무척 고단했다. 별로 긴장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가 했더니 1시간짜리 셋리스트로 공연한 것도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처음이 많은 시간이었네. 게다가 악기들을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이 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숙소에 돌아와 약간 늘어져 있다가, 저녁이 다가오니 멤버들끼리 영국에서의 첫 회식을 하기로 했다. 팀장님은 피곤하다며 숙소에 남았다. 우리는 선웅이가 노래를 부르던 피시 앤 칩스를 먹으러 갔다. 하크니 센트럴 역에 처음 도착한 날 눈여겨 봐두었던 식당이 있었다. "Fish & Chips"라는 작은 네온사인이 달린 그 곳은 동네 주택가에 있는 아담한 피시 앤 칩스 전문점이었고, 가족끼리 운영하는 곳 같았다. 분주하게 배달까지 다니는 것을 보니 꽤 제대로 요리하는 집 같기도 했다. 이때는 잘 몰랐지만 이후에 다른 곳에서 피시 앤 칩스를 몇 번 더 먹었는데 이 곳만큼 맛을 내는 곳이 없었다. 알았으면 하크니에 묵는 동안 한번 쯤 더 갔을텐데.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회식을 시작했지만 이날 우리는 서로에게 앞으로 각자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에 대해 싫은 소리들을 주고 받았다. 긴 여정을 시작하는 날이었고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눈 대화였다. 대화 끝에 내게 들었던 감정과 생각들은 선웅이나 평강이가 느낀 것들과 아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우리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기를 바란 사람도,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셋 모두가 갖고 있었을, 이 투어를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은 충분히 공유되었던 것 같다.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 그리고 밴드 멤버들. 다른 사람들과 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정량의 상처를 주고받는다. 단지 그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데에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얼마나 소요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필요한만큼 충분한가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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