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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치 Jul 17. 2017

음악은 유럽을 흔들고, 유럽은 나를 흔들고 #4

밴드 스위머스 유럽 투어 일지 #4. 브릭레인 버스킹



쇼디치 브릭레인

쇼디치 지역의 한 거리인 브릭레인은 팀장님이 영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팀장님은 하크니에 이어 이 곳이 영국의 홍대 같은 곳이라고 했지만, 내가 볼 때 홍대는 더는 이런 곳이 아니다. 오히려 망원동이나 성수동 등지를 경리단길과 섞으면 여기와 비슷할까. 망원도 이제는 범-"홍대"지역의 일부로 편입되어 가는 느낌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동네는 아는 사람만 아는, 프랜차이즈 상점들은 들어서지 않은, 오래된 주민들과 젊고 가난한 예술가층이 공존하는 조용한 동네였다. 경리단길은 프랜차이즈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훨씬 북적이고 평균 소비 가격대가 높은 동네니까, 둘을 섞으면 얼추 브릭레인이 그려진다. 감춰진 좁은 길, 북적이는 시장, 저렴하고 다채로운 먹거리, 젊은 사람들의 묘한 활기와 에너지, 팬시함과는 거리가 먼 외곽. 한국은 이런 동네가 알려지면 순식간에 거대 자본이 들어오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지만 영국은 조금 다른 걸까. 아니면 브릭레인이 유난히 잘 보존된 건가. 이 곳은 팀장님이 십여 년 전 영국에 살 때와 크게 바뀌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쇼디치는 하크니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쇼디치 하이 스트릿 역 부근의 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간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브릭레인 거리까지 걸었다. 가는 길은 화려한 그라피티와 알뜰한 벼룩시장이 공존하고 있다. 100파운드도 하지 않는 중고 기타가 한 매대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선웅이와 평강이는 여기 와서 기타를 살 걸 그랬다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나는 브릭레인 입구에서 수박주스를 사 마셨는데 마켓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후회했다. 훨씬 다양한 과일주스들이 훨씬 싼 값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꽤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벼룩시장은 매우 붐볐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리둥절 했는데, 본격적인 브릭레인 마켓 입구로 들어서니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브릭레인 마켓


이 마켓 입구 부근은 세계 스트릿 푸드 박람회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고 정신이 없어서 사진도 거의 찍지 못했다. 아프리카와 멕시칸 푸드부터 연희동의 코리안 디저트까지, 시각과 후각과 가격 삼박자를 맞춰서 사람을 홀리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길거리 음식이다 보니 풍미도 남다르고 가격은 저렴했다. 우리는 버스킹이 끝난 뒤 엉거주춤하게 서서 뭔가를 사 먹었고 홀딱 빠져버렸다. 영국에서 뭔가 맛있고 가격이 억울하지 않은 것을 먹고 싶다면 브릭레인 마켓으로 가는 것이 답이라는 걸 그동안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브릭레인 버스킹



북적이는 초입을 지나 안으로 쑥 들어오면 드디어 팀장님이 좋아하는 브릭레인 메인 스트릿이 나온다. 그 거리는 음식을 파는 매대들로 가득한 마켓 초입보다는 조금 더 여유롭고, 버스커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주를 하고 있다. 매일이 전쟁통 같은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과는 달리 이 곳은 십 년째 매일 출근하는 고정 버스커가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우리가 버스킹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자기는 이 구역에서 매일매일 연주하는 사람이라며 우리가 자리를 빼앗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오늘 딱 하루, 그것도 딱 한 시간만 연주할 건데 자리를 빌려주는 것은 어렵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좋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열두 시부터 한 시까지, 그 거리의 룰에 적법하게 자리를 얻었다. 




브릭레인에서 했던 두 번째 버스킹은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 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머무는 사람들도 시내보다 한층 여유로웠고, 거리를 채우는 음악은 이곳에서 더 잘 어울렸다. 우리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하늘이 탁 트인 벽 앞이었는데,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한 버스커가 그곳 건너편 약간 왼쪽의 다리 아래가 천연 리버브를 제공하는 명당이라며 자리를 옮기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우리가 안착한 곳은 러프 트레이드(Rough Trade, 음반과 음악에 관련된 이런 저런 굿즈들을 파는 매장)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장소였다. 우리가 며칠 뒤 풀 밴드 셋업으로 공연하게 될 장소인 카페1001 (Cafe 1001)의 맞은편이기도 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로컬 뮤지션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비롯해 몇몇은 아예 차도 건너편 팀장님 뒤쪽에 주저앉아서 노래를 한참 듣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무심히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며 노래하고 연주했다. 햇빛은 밝았고 그늘은 서늘했다. 바람이 선선히 불어와 그 위에 노래가 실려가는 것 같았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는 우리가 슬로 다이브나 조이 디비전의 노래를 커버했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지만, 이 곳에서는 놀라운 선곡이라는 환호를 들었다. 어느 나라에 가나 결국 음악이 환영받는 곳은 동류가 있는 곳인 것 같다. 



영국 밴드 Slowdive의 Alison 커버와 우리 노래 Knight Bus. 카메라에서 동영상을 옮기면서 문제가 있었는지 매우 초자연적이고 불편한 영상이 되었다. 다행히도 소리는 끊기지 않아 부족한 대로 옮겨본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뒤 우리가 연주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할 때, 자신을 유튜브 채널 <Cameraman -- The Interview>의 운영자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다가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익숙한 영어 가사로 노래를 할 때에는 아는 노래라 좋았고, 자신이 모르는 한국어 가사로 노래 부를 때에는 노래하는 음색과 분위기에 집중하게 되어 좋았다고 했다. 


영국에 어떻게 왔는지, 공연은 어디서 언제 하는지, 언제까지 있을 건지, 우리 밴드 음악에 대한 것들을 잔뜩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멤버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짐 정리를 하겠다며 빠지고 인터뷰는 내가 혼자 했다. 그는 촬영이 끝난 뒤 영상이 업로드 되면 알려주겠다며 명함을 건넸다. 밀린 영상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 빌려주었던 자리를 되찾아 악기를 설치하기 시작한 버스킹 밴드는 척 보기에도 형제거나 쌍둥이인 젊은 청년 둘과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까지 셋으로 구성된 트리오였다. 우리는 자리를 내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브릭레인에서 약간 벗어나자마자 팀장님은 우리가 버스킹으로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하며 기다렸다는 듯 동전을 세었다. 팀장님이 그렇게까지 기뻐하는 것을 보니 생전 돈 못벌어다 주는 팀인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웃기기도 했다. 이 동전들은 나중에 베를린으로 떠나던 날 개트윅 공항에서 맥주값으로 소비되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6월 초에 하이드 파크에서 버스킹을 한번 더 했어야 했다. 하지만 후반부 일정 변경과 체력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이날 브릭레인에서의 버스킹이 마지막 버스킹이 되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버스킹을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야외에서 단출한 구성으로 연주하는 것은 분명히 나름대로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버스커들은 유명한 노래를 커버하거나 즉흥연주를 했다. 우리처럼 자기 노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들려온 낯선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놀랍고 욕심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음악이 거리의 바람보다 공연장의 엠프들과 귀를 감싸는 헤드폰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음악은 나의 오랜 준비를 입고 태어난다. 나는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준비해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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