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러하듯이

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by 마침내

누구에게나 큰일을 겪으면

크든 작든 트라우마가 생기는 법이다.

나는 시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생긴 트라우마가 있는데

바로 종소리와 병원 지하주차장이다.




남편의 가장 특출난 능력은 아주 빨리 깊은 잠이 드는 것이다.

신혼 초에는 그런 남편을 보고

장난치는 거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어 코를 고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반면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한 편이다.

일단 기질상 예민한 편이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환경이 바뀌면 그 영향을 쉽게 받기 때문이다.


집 안에 환자가 있고 그 환자와 종일 함께 한다는 건

단순히 삼시 세끼 밥을 챙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화장실이 따로 있는 안방을 쓰고 계시고

안방 문을 닫으면 공간은 분리가 되지만

나는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안방에서 작은 소리가 나면 후다닥 달려가기에 바빴다.


남편은 듣지 못하는 그 소리를 난 대체 어떻게 듣는 건지

남편은 내내 신기해했다.

대체 저 작은 소리가 어떻게 들리냐는 물음에

하루는 기가 막히고 화도 나서 남편 머리를 한 대 쥐어박기도 했다.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내가 보이지 않냐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하며.

(이제 와 생각하니 묵묵히 그 짜증을 받아준 남편도 참 고생이 많았다.)




그랬더니 하루는 다*소에서 이런 종을 사 왔다.

KakaoTalk_20201005_010330409.jpg 트라우마의 원인인 종이 이것되시겠다.

그리고 시아버지께 아프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이 종을 누르시라고 그러면 바로 오겠다고 말씀드리니

처음엔 그저 기특해만 하셨는데

충수염 수술 후 저것이 내 전용 호출 벨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호출에 지칠 때쯤엔 못 들은 척할까 고민도 했던 것 같다.




시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알게 된 사실 중에 또 하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라서

몸이 아프면 나중엔 결국 마음도 병들고 마음이 병들면 결국 몸도 병들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매일 자신의 신세가 불쌍하다며 눈물짓는 일이 반복될수록

함께 있는 우리도 지쳐가고 있었다.


퇴원 후 첫 외래 일정이 잡혀 있던 날.

그날은 아마 그 우울감이 극도로 고조된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화기내과 외래를 간 날, 퇴원 후 있었던 일들과

그동안 변화들에 대해 교수님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2~3주에 한번씩 시아버지의 배 둘레를 재도록 했는데

일전에 교수님께 듣기로 췌장 머리 쪽에서 시작한 췌장암은 고통이 매우 크지만

췌장 꼬리 쪽에서 시작한 췌장암은 머리 쪽에서 시작한 암에 비해

고통은 적으나 점점 복수가 차기 시작해 배가 불러올 것이라 이야기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복수가 차는지 유심히 지켜보았고

특히 시아버지는 복막으로 전이된 암이 제대(배꼽) 쪽으로 튀어나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언제든 병의 진행이 급격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일정 기간을 정해 배 둘레를 재기 시작했다.


심하진 않지만,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말씀드렸더니

우선 입원했을 때 찍은 CT와 전반적인 병의 진행 정도

입원 당시 작성된 차트 등을 확인하시고

고향에 내려가 이제 정리를 하는 게 어떠시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2달 치 약을 처방해주시고 2달 뒤에 보자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진료실에 나온 뒤

나는 진료 일정을 예약하고 잠시 1층에 앉아 계시라 말씀드린 후

처방전을 약국에 가져가 2달 치 약을 받았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팁은

혹시 한 달 이상 매일 먹어야 하는 박스 포장의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면

나는 꼭 남자 보호자에게 약을 가지러 가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다.


일단 남녀를 떠나

내 신체 스펙 자체가 작디작은 관계로

(키 154cm, 몸무게 45 넘지 않음)

나라는 사람에게서 가용 가능한 힘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2달 치 약이 진짜 겁나 많았다.

진짜 엄청 많고 엄청 무거웠다.

나는 그때, 구루마라도 가져갔어야 했다.

아니면 약을 먼저 차에 싣고 시아버지를 모시러 가던가.


그러나 나는 왜 그때 그 작은 유도리마저 없었던가.

되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걸 다 들고 시아버지께

이제 집으로 가자며 지하주차장에 차가 있다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이 순간도 내가 잘못한 게 있었으니

난 그날 무조건, 지상 주차장에 주차하던지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더라도 엘리베이터 입구

바로 앞에 주차했었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눈이 어두운 시아버지께서

암으로 인해 전반적인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서

더욱 눈이 어두워지셨고


겨울이라 추울 테니 한기가 빨리 드는 지상주차장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층 어두운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가져간 나의 오버센스는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나에게 오로지 의지하고 있던 시아버지가

지하주차장 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순간

붙들지 못한 큰 실수를 저지르게했다.


안 그래도 며느리에게 섭섭한 오해가 생긴 데다

오늘 만난 교수님이 고향으로 가시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서울에 있어 봐야 뾰족한 수가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혼자 지내란 말로 들으신 시아버지의 설움이

넘어지는 순간의 아픔에서 터져버리셨고


그렇게 시아버지는 지하주차장 넘어진 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우셨다.

그리고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짐과

나에게 매달리다시피 의지해 걷던 시아버지가

주저앉아 우는 모습을 보게 된 내가

그 상황에서 당황스럽기보다

또 어디 뼈라도 부러진 건 아닌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생각에 생각에 더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내가 나 자신이 맞는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마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했겠지만

나는 처음이었음에도

놀라운 것에 더는 놀라지 않고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기에 앞서 그저 해결책을

먼저 찾고 있는 내가 왠지 서글펐다.


수습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환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모든 것을 느끼기에 힘들지만

어느 면에서는 감정적으로 꽤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능숙하면서도 지친

병원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보호자1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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