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ity or Quality-of-Life

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by 마침내

사실 시아버지는 암이라는 것보다

황반변성으로 인해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것에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충수염 수술 이후 시아버지는 본인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고

그의 우울감은 제곱으로 심해지고 있었지만

우울함의 근본적인 원인은 암이 아닌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눈 때문이었다.




황반변성은 65세 이상의 노령층에서 주로 나타나는 안과 질환으로 실명을 유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질병이다.

시아버지가 황반변성 진단을 받은 것은 약 4~5년 전이고

그 후로 주기적으로 주사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만, 여든을 넘기며 진행된 노화는

급격하게 시력 저하를 일으켰고 암으로 인해

전반적인 몸의 컨디션이 나빠지면서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셨고

첫 병원에서 더는 방법이 없다고 했던

안과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다른 의사를

만나보고 싶다 하셨다.


결국 서울에 어지간히 큰 병원의 안과는 물론

유명하다는 안과까지

안과의사 대여섯 명의 진료를 보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본인의 처지가 서럽다 우시고 나서야

더 이상의 안과 진료는 포기하셨다.


너무나 우울해하는 시아버지를 보다 못해

한 번은 안과 의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췌장암이란 큰 병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질병으로 인해 잘 안 보이던 눈이

더 잘 안 보이게 되는 게 훨씬 크게 우울함을 가져올 수 있는 거냐고.


의사의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럴 수도 있다, 눈은 삶의 질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은 나도 해요.......

나는 난시가 심해 당장 안경이 없으면

채 20cm 앞이 보이질 않는다.

시력이 삶의 질에 영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초딩 1학년 때부터 안경 씀 삶의 질 엄청 떨어짐(ex. 체육 시간에 자칫 실수하면 얼굴 다치는 건 물론 하루종일 삐뚤어진 안경 쓰고 버텨야 해서 귀까지 아픔, 마스크 쓸 때마다 김 서림 짜증남 그거 말고 엄청나게 많음, 그렇다고 렌즈 끼면 눈알이 아픔) 어찌 됐든 다 떠나서 최대한 시아버지와 비슷한 케이스의 환자가 있는지 그런 분들도 이렇게 우울해하는지 질문함 눈은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함


질문으로 얻은 교훈: 교수의 답은 진료시간 끝났으니 나가세요.거나 우문현답이거나 누군가에게는 귀찮게 하는 환자 또는 보호자를 빨리 내보내는 팁이었다.




암이 생겼지만,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려던 시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울함이 극대화되는 결과를 얻었다.


무엇보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지내며

서서히 자리를 넓혀간 암세포때문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충수염 수술을 하셨고 섬망도 겪으셨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항암치료를 포기했던 것일까.


항암치료를 포기함으로써 시아버지는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데 도움을 받으셨을까?

사실 나에겐 그 무엇보다 시어머니의 마지막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4년을 누워서 생활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워.있.다. 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무리 매일 씻어도 움직이지 않는 환자에게서는

특유의 냄새가 떠나지 않는다는 걸 실제로 겪게 되면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시어머니의 눈빛과 표정에서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한 사람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보다 자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다르셨던 것 같다.

그저 어떤 모습으로든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앞을 볼 수 있고 먹을 것을 넘겨 생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에겐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목 아래는 전혀 움직일 수 없고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보고 듣고 목을 움직일 수 있으셨다.

그래서 아들을 데려갈 때마다 아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바쁘셨고

나는 고개를 돌리는 방향을 따라가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반면, 시아버지는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내가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본인의 몸속에 있는 암이 퍼지는 것보다.




지금에서야 어렴풋하게 머리로나마 이해라는 것을 위해

생각에 생각을 더해보니 전쟁을 겪은 39년생 그에겐

그것이 살아있음이 아니었을지.

내가 영화로만 겪은 그 상황을 직접 겪은 그에게

삶의 질, 웰다잉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없는 개념이 아니었을지.

우리는 그런 거창한 개념으로

오히려 그에게 고상한 빠른 죽음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처음으로 시아버지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세대라 구분되는 대게 386의 부모 세대,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생인

시아버지 동년배들은 엄청난 생존력으로

극심한 혼란기에 고속도로를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최소 6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나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며

내 자식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분들에겐

애초부터 일하는 시간은 주 52시간이 아니라 168시간이었으며

회사에서 다치면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 다치게 만든 그 누군가는 없었다.

그저 돈을 주는 감사한 누군가가 있었을 뿐.


요즘 드라마에서 나오는 멋진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지만

내 주위 모든 노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혹은 으레 그럴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위험하다는 것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


사실 그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종종 시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마치 국회의원 홍□표와 대화 하는 것 같다고

반은 농담, 반은 진심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알아차렸어야 했다.

시아버지와 나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최소한 죽을 때 본인의 모습이 어떠했으면 좋겠다고

'잘 놀다 갑니다'라는 문구를 들고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요즘 30대 중 한 명인 내가

You Only Live Once, YOLO를 외치는 요즘 30대인 내가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그를 전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었다면

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 조금은 덜 스트레스 받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저 본인의 몸 상태를 인정하시는 것까지

췌장암은 둘째치고 현재 내가 정말 몸이 좋지 않고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5개월이 걸렸다.


그에게 죽음, 그 앞에 삶의 질.

이런 문제는 어쩌면 큰 의미없는 이야기 였을지도 모른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원초적이지만 밥을 먹는 것에 무리가 없어

덜 스트레스 받았다는 아주 심플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본인의 눈 상태도 인정하시고

마지막으로 살던 곳에서 함께 지내던 분들과 인사나 하고 오시겠다며

한 달 정도 큰 시누 댁에 머무르시겠다며

원래 사시던 곳으로 잠시 내려가신 시아버지 덕분에

우린 정말 오랜만에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 휴가인 건가 라며 킥킥거리던 우리 부부는

2주 만에 시작된 전화 폭탄으로 입방정의 무서움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입은 늘 방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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