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2020년 6월 그 이후.
남편은 결혼 후 2번의 상주 역할을 해야 했다.
집에서 하나뿐인 귀한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시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남편은 50이 되기 전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게 되었다.
(남편 바로 위에 형이 있었다고 하는데 7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일로 시어머니는 매우 큰 실의에 빠져 계시다 남편을 낳고 회복하셔서 더욱 각별한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시부모님이 살던 곳에서 장례를 치렀기에
우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짐을 챙겨 출발하기에 바빴고
마지막 순간에 옆에 계셨던 것은 시아버지였기에 장례 과정에서 결정할 것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입관식과 발인할 때 그리고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
남편이 제일 많이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화장장으로 관이 들어가는 마지막까지 관을 붙잡고 있다 놓치던 그 안타까운 손은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한번 겪어봐서인지 이번엔 시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시다 돌아가셔서인지
남편은 시아버지를 장례식장으로 이송하기 전
단둘이 병실에 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참 민망하고 이상하게도 단 한 순간도 울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남편과 내가 지난 시간 너무 많이 고생해서 그렇다고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마지막은 조금 달랐다.
우리가 모두 결정하고 처리해야 했기에 직접 겪으며 배우게 되었다.
진짜 어른들만 알던 것, 문상하는 방법조차 잘 몰랐던 내가 상주의 A to Z를 알게 된 것이다.
특히 그때는 몰랐지만,시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돌아가시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가시는 시간에 따라 장례 일정이 속된 말로 빡세지냐 아니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입관식은 돌아가신 다음 날 진행되는데
그러니까 우리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장례식 첫날(입관식이 진행되기 전)은 돌아가신 게 아니기 때문에 절도 2번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오전, 낮시간대에 고인이 돌아가시거나 늦은 밤이 아닌 오후에 돌아가신다면 당일 빈소를 차리고 다음 날 입관식을 진행하면 되지만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돌아가시게 되면 다음 날 빈소를 차리고 잠시 후 입관식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죽는 것 또한 자식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도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리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 입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근처 불교용품점에 새벽같이 운전을 하고 가서 관에 같이 넣을 노잣돈을 구해왔다.
다섯 묶음을 사는 나에게 불교용품점 여사장님을 그렇게 많이 사냐고 놀라며
돈을 많이 가져가면 나눠쓴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눠 쓰실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입관식이 다 끝나고 나니 남편은 이야기 했다.
아버지 주위에 돈밖에 보이질 않았다고 ㅋㅋ 한 겹으로 모자라 두 세 겹 돈에 싸여 계셨다고 ㅋㅋㅋ(웃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가족 봉안묘 안에도 미니어처로 된 돈을 넣어 드렸다.
시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것으로 넣어드렸다.
아마 같이 지내지 않았으면 제대로 좋아하는 걸 못 넣어드렸을 것이다.
삼도천 건너시는 길, 넉넉하게 가실 수 있어 다행이고 또 좋아하는 걸 받으셔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시아버지께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남편도 인정)
시아버지도 나도 서로가 처음이었기에 우린 서로에게 서툴고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아버지를 위해 꽃을 사던 내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건 알아주길.
그 꽃이 당신의 슬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는 걸 그곳에서나마 알아주길 생각해본다.
사실 이 글을 쓰겠다 결정적으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킹덤의 주인공 이창(주지훈 분)이 외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시즌1의 4화에서 주지훈(이창役)은 이렇게 외친다.
난 다르다
난 이들을 버리고 간 이들과도 다르고
해원 조씨와도 다르다
난 절대로 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대사를 듣고 한겨울의 내가 떠올랐다. 당황스럽고 버거운 이 상황에서도 다르고 싶었던
뭔가 잘 이겨내고 잘 해내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난 다르다고 기를 쓰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란듯이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글을 쓰며 생각했다.
내가 하던 생각은 다르고 싶다 처절하게 외치던 주지훈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저 싫은 소리를 조금도 듣기 싫어서 시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남편에게 조금은 떳떳하고 싶었고
돌아가신 후에 들을법한 불편한 말들 혹은 선을 넘는 행동들에 대해 원천봉쇄.
씨앗 조차 허락하지 않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꼰대들의 뒷담화거리가 되기 싫다는 가혹한 완벽주의
조금의 흠결도 원치 않는다는 택도 없는 이기심은 결국 나의 부모님, 내 아들까지 고생시키게 만들었고 늘 그렇듯 남 좋은 일만 만든 채 상처뿐인 영광만이 남았다.
나는 지난 6월 이후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다만, 감정이 소모되는 멜로 드라마나 영화는 아직 보질 못한다.
앞서 말한 킹덤, 내부자들, 범죄도시 같이 어두우면서도 가끔은 웃을 수 있고 또 유혈이 낭자한 범죄 스릴러 영화는 네다섯번은 반복해서 보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