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시아버지가 한 달 정도 사시던 곳에 가서 정리하고 오시겠다며
그렇게 자리를 비우시니 사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2주 만에 시작된 전화 폭탄의 이유는 끼니는 입맛에 맞지만
본인 딸의 일처리가 빠릿빠릿하지 못 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버님, 내 맘에 딱 맞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속으로 차오르는 말을 삼키고 난 또 참으로 빠릿빠릿하게
시아버님이 서울에 오신 이틀 뒤 진료 후 예정된 CT까지 지체 없이 찍을 수 있게끔 일정을 다시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차피 할 거 뭐 그렇게 스트레스 받았나 싶고
그렇게 시간에 맞춰 예약이 된 것도 신기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렇다.
처음 내가 경험한 것을 글로 써야겠다 결심하고 이것을 써 내려가면서 어떤 정보의 전달과 함께
당시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검색하며 알 수 있는 보호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자식의 관점에서 본인의 부모님을 병간호하며 쓴 것들이 많았다. 경험에서 비롯된 병에 관한 정보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실제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올해 2월부터 대리처방에 관한 법률이 강화돼서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불편하고 장기간 동일 병명에 대한 같은 처방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리처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중증질환으로 고생 중인 고령의 환자들은 이런 요건에 부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리처방 수령이 가능자한 사람은 구비서류를 준비하면 대리처방을 받을 수 있는데
환자 보호자가 직계존비속인 경우 신분증과 가족관계 증명서 1통만 가지고 가면 되지만
내가 갈 경우 나의 신분증, 남편의 가족관계 증명서, 나의 가족관계 증명서 각각 1통씩이 필요하다.
가족관계 증명서는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테지만 기혼자의 경우 가족관계 증명서에 기재되는 사람은
나의 부모, 배우자, 나의 자녀가 된다.
즉, 시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서류상으로 확인받으려면 남편과 나의 배우자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1가지와
남편과 시아버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1가지를 함께 준비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가면 가족관계 증명서 1장이면 될 일이 나를 거쳐서 가려면 준비해야 할 서류는 2장, 3장이 된다는 것이고
그깟 서류 한 장 더 가져가는 것이 뭐가 힘드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 서류 한 장 떼는 것이 참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은 내가 부딪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감정선 역시 100% 공감할 수 없었다.
사실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며느리가 시부모와 함께 지내는 경우를
블로그나 다른 sns에 업로드한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가끔 암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카페에서 50대 며느리가 글을 경우를 제외하고.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며느리 or 사위)은
배우자 집안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어떤 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 불문율 같은 것이 분명 존대한다.
항암을 결정할 당시부터 깨달았던 분명한 사실이며 기혼자라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만약 공감하지 못하는 기혼자에게는 이 부분만은 머리로라도 알고 꼭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시부모님 혹은 장인어른, 장모님은 남의 부모님이 아닌 남의 부모님이다.
그래서 어렵다.
특히, 부부만 상의해서 끝인 일이면 모를까 상대방의 혈육이 함께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
적정선을 지키지 못할 경우 부부가 동시에 욕을 먹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항암에 대해 결정할 때도 그랬다.
모든 이들이 나에게 남편과 그의 남매들이 결정하는 것에 대해 일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기도해서 나는 말을 아꼈다.
다만 그때 내가 남편에게 했던 얘기는 딱 한 가지였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든, 항암을 하든 하지 않든 마지막 순간 우린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결정에 대해서 후회할지언정 모시고 있는 동안 우리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는 말자'라는 것이었다.
사실, 사람 사이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에게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
특히나 며느리라는 단어가 시누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예민한 단어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자칫 내가 오해를 사게 되진 않을지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단순히 며느리라서 시누이라서 그런 거라
구분 지을 수도 없고 구분 지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글을 쓰면 쓸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중간에 진전이 없어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다 덮어버린 적이 몇 날이다.
하지만 계속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느꼈던 막막함과 시행착오를 그 누군가는 겪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막상 시아버지가 서울에 오시고 얼굴을 뵈니 너무 달라지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력이 쇠하셨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전보다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진료 볼 때 물어봐야 할 것들이 이것저것 생겨났고 이틀 뒤 예정된 검사를 받고 진료를 보러 들어간 우리에게
교수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항암을 권유하지 않았던 것은 평균적으로 시아버님의 연세의 노년층에서는 면역력이 낮아서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을지라도 진행속도가 느린 것이 대부분이라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오셨기에 항암치료가 크게 의미 없을 거라 생각해 권유하지 않았던 거라고.
하지만 시아버지는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처음 오셨을 때보다
복막에 전이된 암세포가 훨씬 많아졌고 배가 불러오는 건 단지 복수 때문이 아니라 복막에 퍼지는 암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해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기에 지금이라도 항암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과 함께
집에 가서 항암에 대해 의논해보고 입원 결정을 해달라는 말로 그날의 진료가 마무리되었다.
사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시아버지를 처음엔 호스피스 병동에 모셔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알아볼수록 우리가 처한 현실과는 괴리가 컸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 이용 가능 기간은 법적으로 60일이지만 대부분 호스피스 병동 입원 후 60일 이내 돌아가신다고 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60일 넘게 살아있게 된다면 그 후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사실상 가정에서 보호하는 것이 어렵고 조금이라도 열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 응급실로 쫓아가야 한다.
충수염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도 차례차례 들어오는 환자 두 분이 중증 말기암 환자셨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에 들어가는 자체가 슬픈 일이고 암이라는 큰 병과 싸우다가 말 그대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가는 곳인데 가면서부터 ‘60일이 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해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잔인하다는 생각과 함께 몇 번이나 한숨을 짓게 했다.
결국, 우리는 달리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항암 치료를 1차라도 시도해보기로 하고 시아버지의 입원 날짜를 조율했다.
입원 날짜를 조율하며 그래도 일단 호스피스 병동에 상담을 한 번쯤 가봐야 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에 예약 전화를 했는데 상담도 최대한 빠른 날짜가 3주 정도 뒤였고 일단 상담 후 입원 대기에만 최소 2주 ~최대 4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대체 호스피스 병동에 아다리 맞춰 입원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요.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우선 호스피스 병동은 예약 날짜를 잡아 놓았고 남편은 시아버지의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절차를 진행했다.
당시 설명을 듣기론 일반적으로 췌장암에 쓰는 항암제 종류, 시아버지에게 투여될 항암제 등 낯선 약 이름을 들었지만 사실 그렇게 설명을 들을 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검색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가더라도 동의서에 사인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환자와 보호자이기에 우린 입원과 항암을 결정하고 그 후로는 병원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입원을 하고 그의 쇄골 근처엔 포트가 꽂혀졌다.
그리고 항암은 1차도 아닌 1회에서 큰 부작용으로 인해 중단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혈액 수치 상 안 좋아 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저질환으로 가지고 있던 부정맥이 심해져 새벽 3시경 시아버지의 심박 수는 40대까지 떨어졌고 보호자를 부르는 다급한 전화에 남편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다행히 안정된 것을 보고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담당 의사 선생님은 3차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최종목적은 치료이며 더이상 해줄 것이 없는 환자에게 병상을 내어줄 수 없으니 요양병원을 빨리 알아보고 전원하라 이야기했고 우린 급하게 요양병원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대학병원 퇴원 6일, 요양병원 입원 6일만에 돌아가셨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나는 호스피스 상담 예약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아 연락했다는 담당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고 덤덤하게 어제 돌아가시고 지금 장례 이틀째라고 이야기하자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전화기 너머 그녀에게 도리어 괜찮다고 말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말한 6개월.
병원에서 말한 시간은 참 정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는 말처럼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 받게 되었고
항암제를 투여한 지 3주 만에 시아버지는 길을 떠나셨다.
이렇게 6개월간의 함께 살기는 끝이 났고
한 사람의 인생은 80여 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