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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국 Oct 09. 2021

선구자이거나 또라이거나.

나의 슬픈 신입사원 역사의 마무리.

본의 아니게 프로이직러가 되었습니다.(5)


약 10년전, 그 때는 그런 종류의 열심히가 더 통하는 문화와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나는 이 곳의 공노비정도 되겠거니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제일 후진 막내자리에서 그 소임을 다했다.

그러니 처음과 달리 물냉파와 비냉파의 호불호는 존중하는 싸가지 있는 아이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외부 교육으로 인해 자리를 비운 하루 사이, 바인더 만질 줄 아는 사람이 없더라며

하루종일 나를 찾다 거의 울었다고 말하던 다른 부서 부장님의 농담을 들으니

바인더에서 존재감을 뽐낸 내 자신이 못내 아쉽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수록 점점 정나미가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벙어리 노릇하는 신입사원 모습에 뿌듯해하려고 말 잘하는 신입을 뽑다니.

이런 비효율이 어디있을까.

차라리 공고에 조직에 순응하고 고분고분하면서 일 잘하는 신입을 원한다고 했으면

처음부터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10년전, 내가 신입사원일 때 힘들었던 것은

막내라면 신입이라면 이런 류의 잡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와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에게 반정도는 강요되었던 소주 한잔이었다.


신입사원은 최대한 눈치를 보는 것이 좋고 튀면 안 되고 5분 정도 일찍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진짜 현실이라는 게 답답했다.

그런 문화들은 근 몇년 사이에 많이 변했고 그 변화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근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변화는 서로 이해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문화로의 발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회사들에서는 매년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의 개성이 강해질수록 그들은 당황했고 제일 먼저 달라져야겠다 그 필요성을 느낀 곳은 신입사원 교육담당이었다고 한다. 한 대기업에선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편한 질의응답 시간이라고 신입사원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신입사원이 ‘임원용 엘리베이터를 출근시간에 이용하면 안되나?’ 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그 중 몇명은 혀를 찼다고 했다.


아니 그럴거면
왜 편하게 질문하라고 한거에요?


그리고 얼마가 지나 90년생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이젠 70년생이 울고 있단다.

X세대 상사여, 당신들은 스무살때나 50이 가까운 지금이나 여전히 소란스럽군요.

격동의 70년대라 그런건가요? 


90년생은 오고 있고
70년대생은 울고 있다니
80년대생은 서럽네요 





여하튼 그렇게 공노비 노릇을 하던 나는 한 프로젝트를 인수인계 받게 되었고 그것은 내 무덤이 되었다. 

기존에 팀장급 1명, 대리2명, 사원1명이 투입되어 운영되던 그 프로젝트는 과장 1명과 나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인수인계를 받고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과장1명은 일주일짜리 휴가를 갔고 입사한지 10개월된 신입사원인 나는 과장 1명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이슈에 대해 책임을 지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 막 빗자루질을 끝내고 흙을 고르고 만져야 하는 이에게 내가 올때까지 청자 5개를 만들어놓으라 엄포를 놓고 자리를 비운 도공 1명을 대신해 겨우겨우 1개를 만들어내밀자 볼 것도 없다며 던져 깨트려 버리는 그들 앞에서 난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난 가끔, 아니 자주 내가 정말 애매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집단에선 유달리 튀는 일이었는데 몇년 뒤 돌이켜보면 큰 일에 속하지도 않는 일들에 치여 정 맞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점점 지쳐 돌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난 둘중 하나였다. 우리 세대의 선구자이거나 또라이거나. 

무엇이든지간에 그 둘 모두 외롭고 정 맞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드센 팔자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이다.  

나의 사회생활은 늘 그러했고 그 첫 단계인 신입시절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난 이제 다시 묻고 싶다.

그때 그 분들, 지금 웃고 계신가요 울고 계신가요?

아니, 자리들은 보전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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