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건 벼만 그렇다.
2019년 12월 즈음 중국 한 도시에서 시작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이렇게까지 뒤흔들게 될줄은 몰랐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근무환경까지 바꿔 놓을거라 그 누가 생각했을까.
재택근무라는 말도 안되는 일이 대한민국 회사들에게도 실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특성이라고 해야할지, 장점이라고 해야할지.
근태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고 책상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에서
재택근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가항력적인 변화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단점을 논할 시간없이 무조건 적응해야했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코로나 이전 재택근무라는 개념은 전무했다.
그러나 난 꼭 재택근무를 해야만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덜컥 기관에 맡기기엔 아이보다 내가 더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기획자의 포지션으론 드물지만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의 공고를 기다렸고 정말 다행히 내 전공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웹기획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는 상상도 할수없는 일이었고 원천징수 3.3%, 이름만이 거창한 프리랜서.
용역계약으로 일은 시작되었다.
일을 하기로 한 순간 이후로 일은 수도없이 쏟아져내렸다.
하지만 난 단 한번 싫다 혹은 어렵다 라는 말을 못하고 다 해내고 있었다.
거기다 낮엔 아이를 보고, 밤엔 일을 했다.
낮에 아이가 칭얼거리면 아이를 업고 노트북을 두드렸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러하다.
난 일을 할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그에 취해 내 몇년치 건강을 끌어다 썼다.
흔히 재택근무라고 하면 가지는 편견이 있다.
집에서 일하니 편할 것이라는.
하지만 가장 큰 맹점은 집이 곧 일터이자, 일터가 곧 집이라는 것이다.
그로인해 일과 가정이 분리되지 않고 업무용 노트북은 내내 켜져있다.
더욱 과로에 쉽게 노출되고 스트레스에 노출될수 있음에도 집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기 쉬운 것들.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본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우린 왜 지레짐작으로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걸려 재택근무를 편하게 일을 한다 착각하는 것일까.
난 이런 의문 내지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되려 재택근무니까 짧아지는 종료기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 자신을 내가 낮추었다.
아침 출근길의 북적거림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난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 북적거림으로 뛰어들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재택근무를 겪어본 이들이 많아지고나서야 정말 재택근무가 좋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모른다.
모든 일이 그렇다.
그래도 당시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 어떤 상황에도 그저 일을 할수 있는 기회가 있어 행복했다.
한겨울 새벽 5-6시 서울의 일출을 확인하고 잠에 겨우 들고선 3시간 남짓 잘 수 있었지만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에게도 엄마가 중요한 그 시기, 엄마에게도 아이가 중요한 그 시기.
내 마음 한켠 떨쳐내지 못한 사회인으로의 내가 살아숨쉬는 그 시간이 난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