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나를 살린, 나의 구원자.
내가 겪은 종류의 깊은 골짜기를 지날 때에 주변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그 어려움이 얼마나 더 할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나에겐 엄마가 있었다.
멍하니 벽만 보며 시간만 보내는 나를 구해내려
그 옆에 엄마만 보는 손자를 구해내려
내 인생 가장 큰 의미인 그녀는 나를 위해 주1일 휴무일을 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가 오는 하루하루, 엄마의 기운을 조금씩 모아서
나는 지친 몸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밖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엄마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마음일지 모르겠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다면 미안함에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는 글을 쓰겠노라며 무언가 하는 내게
결과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무언가 하는 그 자체가 좋다고 말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얼마나 큰 불효를 했는지
얼마나 깊은 수렁에서
얼마나 아찔한 벼랑에서
그녀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던 건지 지레 짐작할 뿐이다.
내 남은 생을 좋은 딸로 효도만 하고 산다 해도
그동안 속 썩인 것을 갚을 수 있을까 말까 싶은데
나는 요즘도 여전히 엄마의 걱정거리 1순위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생각해본다.
만약 나에게 다음 생을 주어진다면
나는 꼭 다시 엄마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때 나는 잔병치레가 하나도 없이 고분고분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얌전하고 세상 순한 딸로 태어나 평생을 효도만 하는 딸로 살고 싶다.
그녀에게 자식 키우는 재미만을 안겨주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이번 생에 못 한 효도까지 다 하는 그런 딸로 온전히 살고 싶다.
물론 지금도 마음은 효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확신에 가득 찬 약속을 할 수 없기에.
늘 그녀에게 부족한 나를 알기에.
미숙하기 짝이 없는 나 자신을 탓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