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밀지 마세요.
기대거나 밀지 마세요 라는 말은 경고문에나 필요한 것.
내가 그렇게 나가떨어져 있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서 한 마디씩이 쏟아졌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는 말부터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말까지.
남들은 이제 막 결혼해서 언제 아이 낳고 자리 잡나 걱정인데
넌 이미 다 하지 않았냐며 오히려 나를 부럽다고 말하던 사람에겐
그저 나의 하찮은 멘탈이 짐스러워 죄인이 된 것만 같았고
낮에 산책이라도 하든지 집을 좀 치워보라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해보겠다고 우는 얼굴로 웃으며 말하거나 웃는 얼굴로 울며 말했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지금 이렇게 단순하게 늘어놓으면
우울한 사람을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는 듯한
차갑고 날카로운 워딩들은
당시 얼마나 뜨겁고 애정이 넘치는 말이었는지
그리고 그 말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알고 있기에
가시 돋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서로가 미숙하여 서투를 뿐이었고
그리고 나 역시 반대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아
그저 내가 있음이 미안했다.
우울한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는 말과
우울증은 감기 같다는 말이 공존하는 세상은
우울한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 주위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버거운 세상이다.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가까운 누군가를 위한
정보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 순간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반대 입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털어놓는 마음
그 자체가 짐이 될 수도 있으니
그리고 이건 내 약점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니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다
용기내서 꺼낸 나의 우울함은
짐을 나눠서 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들어달라는 것 뿐인데도
거리두기가 미덕인 세상에서
나에게 기대거나 밀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나면
상처를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다.
겪어보니 하나 알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평소에 잘하지 못하는 낯간지러운 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다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잘했다고 너밖에 없다고
너 때문에 내가 사는 거 같다고 말해주는 AI가
상처주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이나마 하게 되었던 건
이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 주인공 지안이
광일이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가자
멍하니 문 앞에 앉아 '착하다' 라고 말하는
동훈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에서 지안이 하는 행동이
벼랑 끝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하기 위한
발버둥임을 알고 있다.
'착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벼랑 끝에서 한 발자국씩 멀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지안이처럼
나 역시 그런 발버둥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루틴을 찾는 것부터 결심을 해야하는 것까지.
이 벼랑 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바닷속에서 나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