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출산부터 산후조리원까지. 아기에게 바라는 것.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점점 커갈 때에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고,
준비를 나름대로 잘 했다고 생각했으나..
육아와 관련된 것은 그 어떤 것을 예상하던, 그것 이상이 되는 것 같다.
와이프가 출산 후 2주 동안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퇴근 후 와이프를 보러 가거나 집에서 해야 할 들을 하기 시작했다.
집안 청소, 요즘 필수 아기 맘마템(브레짜, 유팡, 브르르) 청소 및 세팅 등..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을 때는 와이프를 보러 산후조리원에 가서
와이프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했다.
출산 이후 몸의 변화랄지, 모유 수유에 대한 고민이랄지 등등.
잘 모르는 분야다 보니 조리원에도 물어보고, 검색도 해보면서 우리의 경로를 정해나갔다.
조리원에서는 아침, 오후로 2시간씩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자동실’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안아주고, 맘마 먹여주고, 재워보는 실습 시간 같은 개념이다.
어떻게 안아줘야 아기가 편한지는 아예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 작은 생명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긴장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고 고작 몇십 분 안아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땀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조리원 선생님들이 하나하나 알려주시는 것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아기를 편안하게 안게 되고, 달래보고, 재우게 되었다.
평일 저녁에 퇴근하고 가면 내 몸도 녹초가 된 상태라.. 딱히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와이프와의 대화를 하고 와이프를 달래러 가는 셈이었고,
주말에는 신생아를 돌보는 기본 지식이나 부모가 됨으로써 가져야 하는 것들에 대한 강의도 들어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아기를 가지기 전까지, 말로만 들어왔던 산후조리원은
아기를 출산한 산모가 정말 말 그대로 푹 쉬고 나오는 곳인 줄 알았다.
그래서 출산으로 인해 힘들었던 몸을 회복하고 나오는 곳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내는 가슴에 모유가 돌기 시작하면서 유축을 하지 않으면 통증과 열이 심했고
유축을 3시간마다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나면 아기와 함께 해야 하는 모자동실 시간이 이어졌고
그 외에는 밥시간이 되면 모유수유 하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막상 쉰다는 느낌보다는, 엄마로서 최소한의 해야 할 것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이미 이때부터 잠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육체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줄 알았으나
막상 그런 시간이 다가오자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일들이 늦게 끝나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아내를 보러 갈 수도 없으니
저녁 먹으면서 소주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고 잠들기 바빴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녁 먹으면서 소주 한잔을 곁들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여유로운 생활이었는가. 싶다..
조리원을 퇴소하면서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육아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동안 장모님께서 집안을 한번 더 정리해 주시고 반찬, 국거리 등을 많이 해주셨다.
냉장고가 가득가득 해질 정도였다.
아기를 돌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할 테니 뎁혀서 바로 먹을 수 있게 매주 준비를 해주셨다.
밥을 준비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기를 돌보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다고 아기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기를 돌보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었고
아내와 나는 그 모든 것이 서툴렀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하면 뭔가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랄까..
그렇게 하나씩 경험하면서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신생아인 아기를 돌보면서 모든 것이 신비로웠고 경이로웠다.
눈, 코, 입, 이마, 뒤통수, 귀 모양,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정말 모든 것들을 아무리 만져봐도 신기했고, 잠에 드는 아기, 깨서 우는 아기, 분유를 먹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단 한 순간도 신기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성장하면서도, 그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같이 신기해한다.
나는 이 작은 생명이 커감에 따라 살아갈 인생이 조금이나마 순탄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고 싶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이런 생각이 매일매일 새삼스레 든다.
아기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말자.
내가 살아오며 부족했던 점을 아기의 인생에 투영해서 나도 모르게 바라고, 요구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다고 들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아기에게 투영시켜, 그 욕망을 아기를 통해 이루고자 한다고.
나도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려 한다.
이 아기가 어떤 성향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 이루고자 했던 것은 내 인생에서 내가 이뤄냈어야 하는 것이지,
이 아기가 이뤄내야 할 것이 아니다.
이 아기는 성장하면서 겪은 모든 경험들을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고,
나는 그때 옆에서 최대한 이 아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겨우 신생아 돌보면서 너무 앞서간 생각일까?
오늘도 아기가 잠든 밤시간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