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족한 수면, 산후 우울증까지.
100일만 고생해. 처음에는 힘들거야
아기를 가지게 되면서 주변에 천천히 소식을 알렸다. 주변에서는 아기 소식에 반가워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집에 아기가 있는 지인에게 소식을 전하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한 번씩 덧붙이는 말이 있다.
“아가 너무 귀엽고 이쁘겠다, 딱 100일만 고생해. 100일만 힘들면 괜찮아져”
이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아기가 세상에 나오고 나면 말 그대로 잠을 못 자는가 보구나. 생각했다.
아기를 맞이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각오랄까, 대비랄까..
그 무엇을 예상하든 모든 것이 그 이상이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동영상도 본 적이 있는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아기가 원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울음소리를 우리가 캐치할 수 있을까? 말이 되나?
이랬는데.. 아기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50일 차,
지금은 대충 아기가 우는 시기와 타이밍 보고 울음소리의 정도에 따라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까지 다 파악이 된다.
조금 자신감이 생길만하니까 또 다른 패턴이 생긴다.
요 며칠, 아기가 이유 없이 울 때가 있다.
이때는 울기 시작하면 강성울음이 되는데,
‘나의 요구사항을 어서 해결해 달란 말이야!’
라고 말하듯 엄청나게 울부짖는다.
이런 순간들이 당황스럽기만 했고, 내가 놓친 것이 없는지 머리를 굴려본다.
밥시간도 아니고, 기저귀도 갈아줬고, 재워달라고 칭얼대는 건 아닌 것 같고..
알고 보니 신생아 급성장 시기라서 아기가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하는 동안 아기는 신체의 변화에 힘들어하며 우는 것이었다.
이때의 강성울음을 달래는 것은 정말 힘들다. 발버둥 치면서 울기도 하고..
다소 꽉 끌어안아주면서 아기에게 계속 괜찮다, 사랑한다, 말을 해준다.
그렇게 발버둥 치는 아기를 힘껏 끌어안아주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느샌가 편안하게 잠이 드는 아기를 보게 된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미션 클리어하는 기분이다.. 작은 경험치를 쌓았다.
문제는 이런 순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너무 자주 온다는 것이다.
부족한 수면 시간
아내와는 수면 시간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교대하면서 아기를 보고 있다.
내가 아기를 보는 시간은 퇴근 후 저녁 7~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새벽 6시~7시이고,
아내는 새벽 1시 반~2시경에 나와서 밤새 아기를 돌본다.
아침 6시가 조금 지나면 내가 일어나서 아기를 한 시간 정도 돌보고, 그때 아내는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씻고 물도 한잔 마시며 한숨 돌린다.
새벽 시간 동안 아기가 잠을 자주면 아내도 이때 같이 잘 수 있는데, 새벽 내내 잠을 못 자는 날들이 많다.
그런 날에는 아내는 이미 녹초가 되어있다. 아침에 30분이라도 쪽잠을 자게 하고 내가 아기를 조금 더 돌보며 출근을 늦춘다.
오전 8시 30분 즈음에 산후도우미 분께서 오신다.
이때부터 아내는 아기를 맡기고 오전에 1시간, 오후에 1시간 정도 잠을 보충한다.
결국 우리가 연속적으로 잘 수 있는 평균 수면 시간은 보통 4시간 정도가 되는 것 같고 틈틈이 쪽잠으로 보충한다.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이 떨어지자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어졌다.
특히 새벽에 잠을 못 자는 아내는 더욱 심하다.
산후도우미 분이 오셨을 때 잠을 자려고 해도 아기가 강성울음으로 울어버리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결국 잠을 보충하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하자, 당신이 최고야., 너무 이뻐, 너무 멋있어.”
이런 말을 쉬지 않고 해주고 있다. 약간 세뇌시킬 정도로..ㅋㅋ
이렇게 서로 멘탈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정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나 같은 경우에는 현장에서 시공을 하는 직업이라 출근 후 잠시나마 쉬는 시간도 딱히 없고, 낮잠을 잔다거나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는 편이다. 말 그대로 출근부터 퇴근까지 계속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저녁 시간에 아기를 재우고 같이 쪽잠을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녹초가 되어 있지만, 아내를 보면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내 역시 집에서 아기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녹초가 되어있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성실하게 하면서 엄마와 아빠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산후우울증, 새벽에 아내를 혼자 두는 것은 위험하다.
남편은 출근해야 하니까 밤잠을 보장받아야 한다. 는 말을 남자들 사이에서 많이 들었다.
“남편이 잠을 못 자면 출근을 어떻게 해? 당연히 잠은 자야지~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애기 봐야지~”
이런 얘기들.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육체적으로 고된 직업이라 잠이 부족하면 많이 힘들다.
아내도 나의 수면시간을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위기가 왔다.
산후 우울증.
아내가 새벽에 아기를 보면서 많이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아기 분유 먹이고 트림 시키고 잠재우고, 이 사이클을 하고 나면 본인도 바로 자야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잠이 다 깨게 되고 잠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어두컴컴한 집에서 혼자 있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싸오고
‘내가 이런 순간들을 매일같이 겪어야 하나?,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머리로는 이래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다다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잠시뿐이었지만 나는 아무리 잠시였다고 한들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더 이상 아내를 방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체력이 버틸 수 있는 최대한 늦은 시간까지 아기를 보고 교대하기로 한 것이고, 아내에게도 혼자가 아님을, 내가 항상 곁에 있음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를 많이 전해 듣는데, 만약 남편이 아기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새벽 시간을 남편이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나는 내가 새벽을 담당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말로만 들었던 산후우울증에 대해서 아내 입을 통해 직접 듣게 되니 얼마나 무섭던지
지금은 아내와 현재 수면패턴을 유지하면서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음.. 관리할 체력이 남아나질 않긴 하지만.
그리고 아내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아기를 돌보는데 집중하고 있다.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참 고맙고 대견하다.
체력을 배터리로 비유하자면 방전되기 직전에 15% 까지 충전하고
다시 방전 직전까지 쓰다가 20%까지 충전하고.
딱 이런 기분이다.ㅋㅋㅋ
산부인과 소아과 전문 교수들의 인터뷰 내용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아기 생후 50일 정도가 부모가 가장 힘들어 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 이유가 바로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기 때문이라고..ㅋㅋ
이 모든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다.
밥 먹고 나서, 혹은 놀아줄 때 기분이 좋을 때 한번 ‘씨익’ 웃어주는 때가 있는데,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정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잘해주고 있구나. 우리 애기가 괜찮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웃게 되고 아내도 웃게 된다.
요즘에는 아기가 웃어주는 시간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어서 그럴 때마다 아내와 함께 힐링하는 기분이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클리어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생각해 본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와 내가 크게 아프지 않고,
무엇보다도 아기도 아프지 않고 밥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아기를 돌보면서 힘든데, 아기를 돌보면서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