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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Nov 03. 2020

우울증을 앓는 이에게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먼 훗날의 일보다는, 언제든 열어젖힐 수 있는 문에 더 가깝다

심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건, 아득하고 먼 미래에야 찾아올 법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열어젖힐 수 있는 작은 문에 더 가깝다. 그래서 우울증과 싸우는 일은 때로 더 괴로운 것이 되곤 한다.


심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건, 아득하고 먼 미래에야 찾아올 법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열어젖힐 수 있는 작은 문에 더 가깝다.

한 사람의 마음을 작은 건물이나 집에 비유하자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에게는 ‘자살’이라는 문이 늘 보이는 곳에 있는 상황과 같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보이는 집 어느 구석에, 문 손잡이가 잠기지 않은 채로 닫혀만 있다는 걸 나만 알고 있는 상황 같다고 할까.


'지금 당장 이 문을 열어젖히고 한 걸음만 디디면, 고작 그럴 정도의 용기만 낸다면 이렇게 괴롭지 않아도 될 텐데. 그게 차라리 더 빠르고 간단한 일인데, 내가 미련하게 버티느라 주위에 폐만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자살 욕구를, 그런 생각이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은 형태를 띠고 점점 더 선명해진다. 나름의 색채와 무게감을 갖기 시작하고 표면은 매끄러운지, 혹은 나이테가 그려진 원목 재질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띄고서 내 시야에 가까워진다. 그때부터는 '아니야, 이런 생각은 일시적인 거야'라고 되뇌어봤자 끝내 내가 지고야 마는 싸움이 되어버린다. 이미 한참 전부터 내 눈 앞에 드리워진 걸, '이젠 존재하지 않던 상태로 지금이라도 돌이키고 싶다'라고 해서 그제야 없던 걸로 쳐버릴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몇 년간 정신과에서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하면서, 내 우울의 근원이 무엇이고 어떤 상황에서 심해지는지 깨닫고 돌아볼 수 있었다. 최근 어느 날인가는 20년 정도 안고 살아가던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매우 옅어져서, 모든 약 복용을 중단하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항불안제와 수면제를 결국 다시 처방받고 있긴 하지만...


하지만 상태가 매우 나아지던 때에도, 그러다 ‘이제 많이 호전됐다’ 싶어 선생님과 상담 후에 약 복용을 멈추던 시기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작은 문 손잡이가 사라지진 않았고, 쉽사리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치료를 시작한 후로 나는 그 문이 내 마음 한편에 존재한다는 걸 끊임없이 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한 번 열게 되면 다시 닫고 나올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내가 원해서 거기 있던 게 아니었으니, 그리 쉽게 사라질 리도 없다. 어느 날 우울증이 심해져서 감정의 밑바닥까지 끌려내려가면, 어느샌가 그 문은 내 앞에 와 있다. 그 문 역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때면, 그래서 손잡이를 돌리고 그 너머 허공으로 추락하는 상상을 하루 종일 떨쳐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더 절망스러워지곤 한다.


다만 치료를 시작한 후로 나는 그 문이 내 마음 한편에 존재한다는 걸 끊임없이 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한 번 열게 되면 다시 닫고 나올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그것보단 몇 달 혹은 몇 년이고 계속 문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싸우는 일에 가깝다. '콜록콜록' 기침을 며칠 하다가 끝나는 일이 아니라, 우두커니 서서 나를 지켜보는 무언가를 언제까지고 기약 없이 모른 척하며 지내야 하는 셈이랄까.


그저 이 싸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우울증을 앓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그 문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고, 다른 문을 열면 누군가와 함께할 수도 있다고.


정신과의 문턱을 넘는 일이 버겁다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세요. 정신과 상담실 문을 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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