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수 Aug 03. 2020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멈추게 된 날

긴 우울증과 자살 충동, 불안 장애를 겪으며 느낀 것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10대 때부터 늘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땐 구체적으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랐고, 그저 '지금 이대로의 삶은 싫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려웠던 집안 형편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고, 내게 '더 나은 미래' 같은 것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지 못했거든요. 깡마르고 말을 곧잘 더듬는 데다, 자신감도 부족하고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나 스스로에게 큰 실망이 매일 쌓였던 것도 이유였습니다.


하루하루 열등감과 자기혐오가 꾸준히 누적됐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라거나 '나 같은 쓰레기는 얼른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덜 끼치는 일이 아닐까'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20대가 되고, 해외에 나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조금은 성격이 밝아졌습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2년 정도 혼자만의 힘으로 일하며 먹고살았고, 덕분에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다만,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울이 사라지지도 않았다는 게 문제랄까요. 결코 없애지 못할 나의 일부라고 여기고 싶지도 않지만, 우울은 쉽게 지워지는 얼룩도 아니었습니다.


평생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아무도 없고, 이런 삶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국가에서 외롭게 지내다가, 현지 업체의 노동 비자 제안을 거절한 뒤 귀국했고... 한국에서 다시 '먹고사는 일'에 치이다가 우울증이 차츰 다시 심해졌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쓸모없다는 생각과 열패감은 점점 깊어졌고,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의 끝은 '죽는 게 낫다, 그런데 죽을 용기가 없어서 주변에 폐만 끼치고 있다'는 자살 충동이었습니다.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자살충동은 '죽을 용기도 없어서 사는 놈'이라는 단어로 뭉쳐져 스스로를 겨누고, 그런 식으로 자기혐오의 악순환은 몇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평생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아무도 없고, 이런 삶엔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 외의 결론이 떠오르지 않는 나날을 살다 보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봐도 냉소적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영화 <잠깐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블랙기업의 악질 상사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누군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기 전까지 '그냥 회사 그만두고 다시 시작해서 잘 살아가자'라고 생각하지 못하죠. 다른 방향의 삶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우울증은 시야를 좁아지게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합니다. (이 영화는 많이 우울한 분위기로 전개되지는 않고, 직장생활이 힘든 분이라면 한 번쯤 보면 좋을 듯합니다)


이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정신과 선생님은 우울증이 심한 순간을 두고 '시야가 좁아진 상태'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보통 막다른 길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뒤돌아 다른 길을 찾게 되지만,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결국 여기서 끝이야, 난 이제 끝났어...' 하고 좌절하게 된다고요. 정확히 제 상황이 그랬습니다. 지난 3~4년 전쯤 '여기서 삶을 끝내는 게 맞는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졌고, 막연히 '죽고 싶다'란 발상을 넘어 구체적인 방식의 자살을 떠올리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보통 막다른 길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뒤돌아 다른 길을 찾게 되지만,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결국 여기서 끝이야, 난 이제 끝났어...' 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우울증이 깊은 상태로 오래 지내다 보면 '이런 방식으로 죽으면 주변 사람에게 민폐겠지', '죽기 전에 이런 건 다 정리해야 할 텐데' 같은 생각까지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우울증을 앓다가 불안장애로 숨을 쉬기 힘든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평생 잠을 잘 자던 사람이었는데 불면증에 시달리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우울증과 동시에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온몸에 올라오는 증상도 발생했습니다.


3년 이상 꾸준히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를 적정량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처방받은 대로 먹으며 운동을 꾸준히 하고 지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증상만 조금 나아지게 할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꾸준히 상담하면서 우울의 원인과 불안장애의 근원을 어느 정도는 찾을 수 있었고,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만나게 됐습니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이제 안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인간은 계속 살아가느니 죽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건 20년 가까이 이어진 생각이었는데, 그게 정말 바뀌는 날이 올까?


아직 치료받는 중이지만,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멈춘 뒤 찾아온 것은 '이제 안 죽고 싶다'가 아니라 '이젠 어떻게 살아야지'라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계획 없이 되는 대로 살았어요. 나 같은 인간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존재라고 여기면서 지냈으니까요. '언제든 죽어도 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고 자살 욕구는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년을 조금 더 살던 최근에야 그게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케이프 피어>의 한 장면.


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사실 아무것도 끝난 건 없습니다.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감기처럼 어느 날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완쾌하는 병'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잠시 모습을 감추었을 뿐,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될 만큼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울증 또한 다시 수면으로 모습을 나타낼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진짜 영영 떠난 줄 알았어? 나랑 평생 제일 오래 같이 지냈으면서? 이거 섭섭한데' 하고 말이죠.


세상에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은 우연에 불과하고, 나라는 평범한 사람의 삶에 별다른 의미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누구나 살아가면서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은 찾아오고,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온전한 정신과 행복은 불가능한 조합이다(sanity and happiness are an impossible combination - Mark Twain)"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울증이 지독하던 나날엔 그의 말이 맞다고 여겼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의 저는 아니라고, 마냥 밝게만 지낼 순 없겠지만 우울에 허우적대는 삶과 다른 길은 있다는 결론을 되뇌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 약을 꾸준히 복용한 제가 맞을까요, 아니면 이전의 내가 사실 맞는 걸까요? 지금의 생각을 뒤집을 일이 다시 찾아오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장애와 다시 마주한 2020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