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수 Apr 21. 2020

불안장애와 다시 마주한 2020년

약 복용 중단, 또 재복용... 괜찮은 듯하던 어느 날, 날벼락처럼

지난 2016년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deckey1985/27)라는 글을 처음 브런치에 썼습니다. 그에 앞서 2015년 연말부터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기 시작했고, 당장 삶이 무너질 것만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매일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적인 감정이 일상에 파도처럼 밀려왔고,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우연히 들르게 된 정신과 병원에서 현재까지 3년 넘게 상담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내 고민과 잡념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필요한 경우 약을 복용하기도 했어요.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끊지 않고 처방받은 대로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주로 먹었고, 한때 증상이 심해져 불면증까지 더해졌을 땐 수면제도 복용하곤 했습니다.


브런치에 쓴 다른 글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우울증에 빠진 후 저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 보통은 술이나 담배 또는 섹스 같은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고들 하던데요. 제 경우에는 술과 담배는 몸에 맞지 않아서 하질 못하고... 깡마른 몸매와 작은 체구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스스로 심리적인 늪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는 한 셈이네요.


약 복용량을 늘렸다가 다시 줄이기도 하면서,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내 우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대략이나마 돌아볼 수 있었고, 불안장애로 인해 딛고 있던 땅바닥이 꺼지는 듯한 느낌에서 점차 벗어나게 됐습니다.


2019년에는 점차 증상들이 완화됐고, 마침내 모든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된 날도 왔습니다. 그 날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죠. 선생님과 상담받은 후, 처방된 약을 개인 정신과 병원 창구에서 받는 게 병원을 나오기 전의 일이었는데요. 약을 받는 과정이 사라졌으니 참으로 홀가분했습니다.


내가 있는 방 안의 공기가 모두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막히던 순간, 이유 모를 불안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지도 못하던 밤을 다시 떠올리자마자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1~2월, 다시 불안장애가 찾아왔어요. 이젠 다시 마주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숨을 쉬기 힘들고,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이 찾아와 제자리에 앉거나 누워 있기 힘들어졌습니다. 다시 잠을 자기도 어려워지자, 상담이 예약된 날이 오기도 전에 다시 병원 문턱을 넘어야 했습니다.


병원에 처음 간 날, 그리고 이듬해 우울증 증상이 심해지던 날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내 증상을 얘기하던 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초... 다시 마주하게 된 불안장애 때문에 병원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내가 있는 방 안의 공기가 모두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막히던 순간, 이유 모를 불안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지도 못하던 밤을 다시 떠올리자마자 울음이 터졌습니다.


예전 불안장애가 심했을 때의 증상처럼, 내가 딛고 있던 바닥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 '침대에 눕는 순간' 다시 찾아왔습니다. 내가 등을 대고 누운 바닥이 꺼져 추락하는 느낌에 잠을 잘 수가 없게 됐습니다. 선생님 앞에서 "이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젠 괜찮았는데"라고 되뇌며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이 기억나네요.



3월까지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한 달가량 다시 복용했습니다. 이전에 복용한 약이라 쉽게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고, 다행히 일상에 큰 사건이나 변화가 없어서인지 증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간 다시 약을 먹으면서, 그리고 선생님과 상담 후 다시 복용을 중단하면서 든 생각은 '지난 3년 동안 우울-불안과 싸우는 과정이 지난했지만, 다시 벌어진 불안장애는 전처럼 두렵지 않았다'는 겁니다. 감기와 달리, 불안과 우울은 내 일상에서 그리 쉽게 '씻은 듯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 불안과 우울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상담-약물로 끌어올릴 수 있고, 이젠 그럴 의지와 용기가 어느 정도는 생겼습니다. 예전처럼 우울과 불안이 나를 깊은 곳까지 끌고 내려가지 못하도록 맞설 힘은 생겼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평생 이렇게 약을 복용하며 지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약도 상담도 모두 끝내고, 아예 '깨끗하게 낫게 된 상태'를 떠올려보곤 하지만, 어쩌면 우울은 어릴 적부터 제 주위를 맴돌았던 것이라 앞으로도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복용을 중단했더라도, 언젠가 제가 다시 무너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울과 불안이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내 방문을 두드리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감정의 찌꺼기가 가득 찬 진흙탕에 넘어지더라도,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는 법은 배웠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 앓고 3년째 겨울, 항우울제 그만 먹게 됐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